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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Jun 22. 2021

있기에 애매한 회사

회사를 나온 직딩


박힌 돌, 빼러 가요

다른 부서였지만 종종 함께 외근을 다녔던 A 팀장으로부터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부사장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한 A는 자기 사람들을 하나둘 불러 모으고 있었고, 난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스카우트 제의였다. 새로운 팀을 꾸리며 임시로 B 팀장을 자리에 앉혔는데 곧 잘릴 테니 그 자리에 사뿐히 앉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단, 함께 일을 하는 동안 B 팀장과 트러블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네네, 아무렴요!

입사와 동시에 A 부사장의 입김은 시작되었고 대표, 이사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도 마련해주었다. 판도는 뒤집혔다. 이에 B 팀장도 낌새를 눈치채고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일을 주지 않고 야근을 시켰다. 회의를 하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것도 공유를 하지 않으니 진행 과정을 알 턱이 없었다. B 팀장은 B 팀장대로 타 부서의 C 팀장을 동아줄마냥 꼭 붙들고 있었다. 기를 쓰고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트러블 없이 빼내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그렇게까지 하면서 남의 밥그릇을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숨어서 해야 할 일

패션 잡지에 들어가는 광고들을 제작하는 회사라고 했다. 출근을 했는데 면접을 봤던 사무실이 아닌 건너편 사무실로 안내를 했다. 역한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사무실 구석에는 어울리지 않게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고, 책상 위 A4 용지 한 장에는 사용하면 안 되는 문구들이 요약되어 있었다. 딱 그것뿐이었다. 그곳에서 혼자 조용히 패션 잡지에 들어가는 '성형외과' 광고 문구를 찍어내면 된다고 했다.


역한 화학약품 냄새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드르륵, 쿵! 드르륵, 쿵! 쉼 없이 기계가 움직이는 거 보면 실제로 어떤 약품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도 이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이 있나? 기억도 못하는 모양새였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한 나라, 한 민족입니다만

별안간 이름의 성을 무슨 한자를 쓰냐고 물었다. 어느 회사의 첫 출근, 첫 질문이었다.

나라 '정'을 쓴다고 했더니 자기도 정 씨라고, 같은 한자를 쓴다며 우리 친척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디 정 씨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필요 없단다. 같은 한자만 쓰면 모두 친척이라고 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분위기였다. 둘 뿐이어서.

그때가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해당 문구 옆에 필요한 빨간 열매 이미지를 찾고 있었다. 빨간 열매 이미지는 찾을 수가 있는데 당최 그 열매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당장 필요한 건 이미지인데, 시간이 많으니 이름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걸 뭐라고 하지? 찾고 또 찾는데 아까 그 목소리 큰 분이 다시 오셨다. 이걸 뭐라고 하죠? 물으니 체리인가? 석류인가? 하더니 사랑의 열매! 란다.


틀린 말은 아닌데.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그뿐!

 


매니지먼트,라고 했다

A는 학자였고, 작가였으며 위원이기도 했다. 그런 A의 매니지먼트라니!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할까, 너무 궁금했다. 실장(?)의 말에 의하면 사무실이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내가 있던 그 사무실에는 나랑 실장이 전부였지만 다른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많다고, 했다.

이쪽 사무실에서는 A의 이름으로 나갈 신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논리야 놀자>와 비슷한 느낌의 책이었는데 몇 권은 D작가가, 몇 권은 F작가가 쓰는 식이었다. 물론 저자 이름에는 A 만 있겠지만. 어쨌든 속속 도착하는 작가들의 글을 다듬는 게 내게 맡겨진 첫 업무였다. 디자이너에게 표지 시안이 오면 폼포드에 오려붙여 프레젠테이션용으로 만드는 작업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하루는 작년에 제작했던 정부 납품용 다이어리가 남아도니, 각 지자체에 전화를 걸어 구매 여부를 체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제발 구매 좀 해달라는, 전화를 하루에 100 통도 넘게 했다.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관련 문서를 보내면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걸 아마 일주일은 넘게 했던 것 같다. 아, 현타 온다.....

이후에 딱 한 번 A를 봤다. 종합편성 TV에서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A는 말 그대로 '말'만 했다. 프레젠테이션 작업 및 시나리오 전부를 다른 사무실에서 누군가(?) 작업하여 실장에게 넘겼다. 그걸 실장과 내가 다듬어 A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우린 그 강연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봤다.


실장은 TV 애니메이션 제작 기획안도 만들고 있었고 체험과 강연, 만남이 더해진 'A와 함께하는 OO학교' 설립도 추진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매니지먼트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더 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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