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부장님은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 물으셨다.
“거기 괜찮은 데야?”
이직한다는 말이 의심쩍다는 건지, 거기에도 괜찮은 회사가 있냐고 반문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회사생활을 오래 한 부장님이 퇴사하는 직원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숱하게 봤을 게 분명하다. 아마도 서울에서 일부러 지방으로 내려가는 놈은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 중에서 ‘공화국’이 들어가는 단어는 내가 아는 선에서는 ‘삼성 공화국’과 ‘서울 공화국’이 유이하다. 전자든 후자든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붙었을 게 틀림없다. 서울 생활의 고단함은 내가 구태여 보태지 않아도 이미 겪어본 이들은 진즉에 알고 있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족을 붙이자면, 당시 다니는 직장의 경우 야근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보통 늦어도 일곱 시면 퇴근했다. 문제는 회사와 집 사이 거리였다. 입사 초기에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동네에서 자취를 했다. 그러다 성남으로 이사를 갔다. 서울에서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은 한, 회사 근처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이들은 드물다. 결국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는데,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나 지하철에서 짐짝처럼 포개져야 했다. 출근만 했는데 피곤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면 단지 출퇴근하는 게 힘들어서 이직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아니다. 꿈의 직장이었으면, 즉 플랜 A였으면 분명히 서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다니던 직장이 별로였다는 말도 아니다. 두 번째 직장은 대형 병원이었는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병원이었다. 다만 내게 플랜 A가 아니었을 뿐이다. 덧붙이면 플랜 B로 택한 직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플랜 A인 PD로 서울에서 일하고 있었으면, 대전으로 이직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 생활을 버리고 대전으로 이직하자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다. 지방에선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에 다녀온 후의 결정이었다. 메이요클리닉은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 있지 않다.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 로체스터에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기꺼이 찾아오고, 존스홉킨스 대학병원과 함께 미국 병원 랭킹 1위를 다툰다. 회사가 어디 있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대전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대화를 더 많이 나누게 됐다. 퇴근 후에는 책을 읽거나 드로잉을 한다. 몇 년간 말로만 되풀이했던 운동도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엔 일명 지옥철에서 보내지 않아도 된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집값 덕분에 회사 가까운 곳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간을 번 게 아니다. 수년간 당연하게 여겼던, 그래서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저녁 시간을 되찾았다. 그러자 지인들은 저녁 있는 삶이라며 부러워했다.
저녁 있는 삶만 즐기는 건 아니다. 회사에서도 나름 충실히 일했다.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가 시키지 않는 일도 하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여러 교육 프로그램도 부러 찾아다녔다. 그러던 차에 내가 일하는 회사가 정부에서 홍보 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온라인 홍보 용역 업체를 선정하는 평가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보직이 없는 평직원에게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은 셈이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류시화 시인은 행복과 나란히 걷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플랜 A만 고집했으면 누리지 못했을 삶이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각자 그리는 행복한 삶도 다르다. 문제는 플랜 A를 이루지 못했다고, 과거에 매몰되어 오늘을 부정하는 태도다. 이건 오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렇게 플랜 A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