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루틴 #자신감 #꿈
글을 다시 쓴 지 6개월째다. 스스로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겁이 난다.
우선, 놀라는 이유는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도록 한 일이 없어서다. 어려서부터 엉덩이가 무겁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고 했는데 나는 어마어마한 중력을 이기고 일어났다가 눕기 일쑤였다. 성인이 되어서 자기 계발이랍시고 영어, 코딩, 민법 등을 공부했는데 모두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 내가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계산해 보니 월평균 10여 편을 썼다. 사흘에 한 편 꼴로 쓴 셈이다.
겁이 나는 까닭은 부담이 되어서다. 얼마 전에 출판사 분들과 미팅을 했다. 내 글의 좋은 점과 발전시킬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하는 일이 허공의 외침으로 그치지 않고 메아리로 되돌아온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 그날의 만남이 추진력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리 되지 못했다. 마치 허리에 납덩어리 벨트를 맨 것처럼 앞으로 발을 내딛는 게 힘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탓에 글이 잘 써지지 않은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오래전 기자일 때는 공을 치는 날이 많았다. 매일 취재처를 돌고 사수에게 전화로 보고를 해야 했는데, 전화를 받는 쪽의 말이 전화를 거는 쪽보다 길었다. 딱히 내 쪽에서 보고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오기가 났는데 일은 만화 영화처럼 결심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일에는 술처럼 무르익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는 그걸 알지 못했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첫 문장을 힘겹게 받아 적고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 날이었다. 머리를 식힐 겸 유튜브 썸네일을 책장 넘기듯 훑어보다가 강원국 작가님 강연에 시선이 고정됐다. 썸네일에는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기는 법’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었다. 나는 열에 여덟 아홉 번 꼴로 ‘~하는 법’이나 ‘~하는 이유’ 따위의 제목에 쉽게 끌린다. 강연은 스님들의 즉문즉답처럼 간결하고 명쾌했다. 강원국 작가님은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 글에 관심이 없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을 갑갑하게 한 체증이 아래로 쑥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그간 잘 써야 한다는, 잘 쓴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 걸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했다.
수습기자 딱지를 떼고 오래되지 않아 사표를 냈다. 보도 부장님은 후임을 뽑을 때까지 다녀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어차피 이직할 데나 할 일이 있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어서 그러기로 했다. 그 후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날그날 아이템이 없어도 잘 써지지 않아도 삑사리가 나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는데 오히려 일이 잘 풀렸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던 아이템이 저절로 생겼고, 기사를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부장님은 계속 다니라고 했다. 그때는 퇴사를 번복하면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릴 게 두려웠다. 이제야 창피한 건 잠깐이고 남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부장님도 사수도 옆 팀 사람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용기를 냈으면 그분들은 기껏해야 “쟤 왜 저래.”라거나 “싱거운 놈이네.”라고 내뱉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각자 일에 집중했을 게 틀림없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니까.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나뿐이다. 내 글은 수십 번씩 읽지만 남의 글은 한 번 읽고 말기 십상이다. 심지어 그 한 번도 대충 읽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조금 더 뻔뻔해져도 된다. 얼굴에 가면을 쓴 것처럼 용기를 내도 된다. 사람들은 내 글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오늘도 졸고를 염치없이 올린다. 물론 내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은 언제나 환영이다. 저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대하듯 감사한 마음으로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