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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Aug 24. 2022

내 세례명은 마르치아노

#고민 #루틴 #성당

내 천주교 세례명을 퍽 좋아한다. 마르치아노인데 요셉이나 베드로나 바오로가 아니어서 좋았다. 내 이름 민호는 한 학년에 한두 명꼴로 있을 정도로 흔해 빠져서 그런지, 흔하지 않은 세례명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성당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례명을 자랑했다. 자신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세례명의 성인이라도 된 것 마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례명과 다른 친구들의 세례명을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샘냈다.


처음에는 수녀님 권유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가 먼저 성당에 다녔는데 수녀님이 우리 집에 들렀다가 꼬맹이였던 나를 살살 꾀어낸 것이다. 한동안 교리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았다.  영성체 날은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것은  살과 "라고 했다는데, 후대에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을 간접적으로 받아 모시는  영성체다. 겨우 아홉 살이었던 나는 빨간색 망토를 입고  손을 합장한 , 신부님이 주는 얇은 전병을 아기 새처럼 받아먹고 있다. 그날 이후 수녀님도 교리 선생님도 나를 마르치아노로 불렀다. 마르치아노라고 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이름에 받침이 없어서 부드러우면서도 치읓이 있어서 강인한 느낌을 겨서다. 외유내강을 지닌 이름이랄까.


그때에는 주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기뻐서였으면 좋았으련만 사실 나는 잿밥에 관심이 많았다.  무렵 한국 축구 대표팀이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의 무적함대와 전차군단에 맞서 당당하 맞서 싸웠고,  일을 계기로  동네에서 남자애들이 축구 시합을 벌였다.   동안 나는 평일에는 학교에서 주말에는 성당에서 축구를 했는데, 엉뚱하게도 농구를 하다 발목을 접질리는 바람에 목발 신세를 졌다. 외도를 하다 벌을 받은 모양이다.  길로 성당과 멀어졌다. 마침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이제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핑곗거리도 있었다. 어떤 일이 일상의 일부분으로 들어오려면 오래 걸리는데, 한편으로   궤도를 이탈한 일이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곱절이나 힘들다는  그땐 알지 못했다.


얼마  가슴이 답답한 나머지 점집을 찾았다. 무릎이 방바닥에 닿기도 전에 오래전 일을 속속들이 맞췄다는 체험 후기에 홀라당 넘어간 것이다. 이름 모를 신을 모시는 점집에서 나는 뜻밖에 예언을 들었다. 하필이면 전날 잠을 설친 탓에  밑에 다크서클이 생겼는데, 예언을 듣고 농도가 한층 짙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물론 점쟁이는 대책도 없이 엄청난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 점쟁이는 살려면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예언의 신빙성과 굿의 효용성 어름에서 번민했다. 전자가 맞다면 후자는 쓸모 있을 것이고, 전자가 틀리다면 후자는 쓸모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자가 맞는지 틀리는지  도리가 없었다. 이럴 때에는   쪽에 운명을 거는  낫다. 점집의 이름 모를 신보다 하느님을 모시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 그렇게 나는 25 만에 하느님을 만나러 성당에 갔다.


엄마가 지금  나이쯤 점집에  일이 있었다. 무당은 엄마에게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다.  신내림을 받을 운명이라는 말이었다. 엄마는 겁에 질렸다. 한동안 엄마는 두문불출했고 혹여라도 자신의 평온했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뀔까  두려움에 떨었다. 엄마가 한없이 작아졌을  지인이 종교를 가져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마침 외할머니가 오랫동안 절에 다닌 터라 엄마도 부처님을 믿고 따르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근처에는 절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는 성당에 처음 발을 들였다. 토속신은 알려나 모르겠다. 자신을 섬기는 자가 엉뚱하게도 손님들을 다른 종교에 보낸 사실을.


내가 찾은 동네 성당은 컨테이너 건물이었다. 성당은 화려하든 수수하든 간에, 고딕이든 로마네스크이든 간에 평화로운 고요가 깃들어 .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했고 중간중간 신자들은 기도문을 외웠다. 나는 바느질   입을 굳게 다문  이따금 아멘이라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어릴 적에는 기도문을 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처럼 줄줄 읊었는데, 세월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지운 모양이다. 어쩔  없이 책자의 기도문을 눈으로 좇았다. 기도문을     읽다 보니 말풍선처럼 궁금증이 일었다. 이를테면 예수님이 본시오 빌라도 통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박혀 돌아가셨다는 문장에서 본시오 빌라도의 정체에 호기심이 당긴 것이다. 본시오 빌라도는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로마 군인인데, 원래 라틴어 이름은 폰티우스 필라투스였다. 보통 나이를 먹으면 물음표가 마침표로 바뀌기 마련인데,  머리는 거꾸로 뒷북을 친다. 새로움과 낯섦이 싫진 않은 모양이다.


일요일 저녁마다 성당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반년이 되었다. 뭐든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는 나에게 입이 절로 벌어질 일이다. 사실 고비가 없었던  아니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텔레비전을 보고 싶었던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성당 미사에 들이는 시간을 헤아렸다. 일주일 168시간  고작 1시간이었다. 168분의 1만큼도 시간을 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미사를 거르고 나면,  길로 영영 멀어질  같았다. 25 만에 몸에 들인 습관을 지켜 나가고 싶었다. 이렇게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으면, 다음날 회사에   입으려고 옷장에 걸어 놓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얼마   세례명인 마르치아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천주교 세례명은 순교자와 수도자의 이름에서 따온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역사  마르치아노라는 인물은 여럿이었다. 그중에서  생일과 축일이 같은 인물을 만날  있었다. 그에 대해 로마 순교록이 기록한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3~4세기 무렵 로마의 군인이었다. 당시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칙령을 내렸는데, 그는 자진하여 제대했다고 한다.  일로 지방 정부에 붙잡혔고 끝내 뜻을 바꾸지 않아 참수형을 당했다. 그는 요셉이나 베드로나 바오로처럼 이름이 높지 않은 탓에 알려진 사실이라고는 순교하기 직전의 행적뿐이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해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례명이 흔하지 않다는 말은 당대에 무명에 가까웠겠지. 마르치아노는 낮은 곳에서 살았지만 높은 뜻을 지켰다.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는 이가 많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것이다. 그가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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