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가서 직무 전환에 성공한 사람이 쓰는 후기
링크드인을 비롯해 커피챗을 하게 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UX 쪽에서 일하고 싶은데, 대학원 가야 하나요?"였다. 이미 대학원을 지원한 상태에서 답정너(?)의 상태로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고, 이제 막 대학원을 알아보려고 하는 찰나에 커피챗을 신청하시는 경우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UX 직무를 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은데, UX 대학원에 진학해 결과적으로 직무 전환에 성공했던 내 경험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내가 UX 직무로 전환을 결심한 계기부터 간단하게 말하고자 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마케터를 꿈꿨다. 운이 좋게도 대학교도 관련 전공으로 진학해 마케터로 첫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마케팅을 해보니, 내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 일을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마케터로서의 부족한 자기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트렌드를 빠르게 읽는다는 건, 어쩌면 재능이 아니라 단지 젊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았고 내가 30대, 40대가 되어서도 이런 감각이 유지될 수 있을지 불안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이직한 회사에서 콘텐츠 마케팅과 함께 서비스 내 문구를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됐다. 그게 UX라이팅과의 첫 만남이었다.
서비스 밖에서 사용자들을 끌어당기는 문구를 고민하던 예전과 달리, 서비스 안에서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해하고 안심하며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글을 써야 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역할을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UX라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케팅에서 UX 직무로의 전환을 꿈꾸면서 가장 먼저 든 걱정은 내가 비전공자라는 사실이었다. 마케터로 일할 때만 해도 전공과 실무는 별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새로운 직무에 도전하려고 하니 막연히 전공이 내 발목을 붙잡는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나를 보며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냐고 많이 물어봤는데, 내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UX 직무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UX 직무를 하기 위해 대학원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HCI를 비롯해 관련 전공을 우대하는 경우는 많고, UX 연구원을 뽑는 회사들에게는 학사보다 석사가 더 큰 메리트이긴 하다. 하지만 UX 전체를 본다면 트렌드가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실무에서 요구하는 기술이나 감각이 너무 달라졌다. AI가 콘텐츠를 만들고, 프로토타입을 짜는 시대에 '학위'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과거엔 UX 대학원을 졸업하면 취업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졸업과 동시에 다시 실무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주변을 보면 대학원을 졸업하고서도 학부생과 마찬가지로 인턴, 포트폴리오 준비 등 별도의 취업 준비를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를 이제 막 졸업한 신입이라면 오히려 실무 경험을 쌓아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거나 산학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사용자 인터뷰나 서베이를 진행할 일은 종종 있다. 하지만 내가 맡고 있는 서비스나 제품 없이 사용자의 경험을 연구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실제로 서비스를 만드는 팀 안에 들어가 실제 사용자 데이터를 보고, 반복적으로 피드백을 반영하며 개선해 나가는 경험은 대학원에서 쉽게 얻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시간 동안 하나의 서비스를 직접 맡으며 실제 사용자와 부딪히는 경험이 UX 실무자에게는 훨씬 의미 있는 성장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자면 나는 대학원 진학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에게 대학원 2년은 단순히 직무를 바꾸는 과정이라기보단 공부하고,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던 주제를 깊게 공부하며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사 밖의 생활을 경험하면서,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비롯해 회사 생활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회사를 벗어나 좀 더 날것의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역시나 어딜 가도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대학원에서 가장 힘든 건 경제적 부담도 연구도 아닌 사람 관계였다. 하지만 2년 간의 시간을 통해 어떤 빌런에도 덤덤(?)해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힘든 일도 정말 많았지만 운이 좋게도 졸업 직후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은 그 시간을 조금은 따뜻하게 회고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누군가에게 2년은 너무 긴 시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 동안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하나라도 실제로 해보는 경험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잠시 멈추어 방향을 고민하고 싶거나 현업에 뛰어들기 전에 생각의 깊이를 먼저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시간이 나름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고민한다면, 단순히 취업만을 위해서는 추천하지 않는다. 단순히 취업 여부로 대학원 생활의 성공과 실패를 단정 짓기에는 할애하는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년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몇 년 전의 나와 같이 UX를 하기 위해 대학원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취업만 두고 본다면 No!
인생 전체를 본다면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