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 제 말투인가요, 서비스 말투인가요?
많은 글들이 UX라이팅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에피소드에 대해 다뤘다면, 나는 잊혀진 가이드라인을 '다시 쓰는' 일을 회고하며 '살아있는' UX라이팅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UX라이터로 입사했을 당시, 우리 회사에는 이미 UX라이팅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업데이트가 3년 전이었고, 담당자들이 모두 부재했던 상황이라 가이드라인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서비스의 기능도 다양해졌고, 텍스트는 화면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침표나 느낌표 하나조차 일관되지 않았고, 나 역시 문장을 다듬을 때 이 말투가 서비스의 보이스톤인지, 아니면 그냥 내 말투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같은 서비스 안에서 한 화면에서는 친구처럼 말하다가, 한 화면에서는 생판 남처럼 이야기한다면 그 서비스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잊혀져 가던 가이드라인을 다시 꺼내보기로 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 작업은 '0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다.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기준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를 위해 우리 서비스 내의 다양한 화면을 꼼꼼히 살펴보았고, 나보다 오랜 시간 서비스를 맡아온 PM과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했다. 흥미롭게도, 담당 서비스는 달랐지만 모두가 떠올리는 우리 서비스의 페르소나는 꽤 유사했다. 그래서 오히려 보이스톤을 정의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 경험을 기반으로, 혹시나 UX라이팅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개편하기 위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반드시 실무자 인터뷰를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직접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감각, 사용자에 대한 관점을 알아야 현실적인 가이드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서비스의 보이스톤을 최상단에 두고, 그 아래에 문장부호, 표기법, 공용어 등을 배치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문장 하나하나는 결국 보이스톤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 서비스는 ‘고객’ 대신 ‘사용자’, ‘가게’ 대신 ‘매장’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런 공용어를 정리해 실시간 검색이 가능한 사전 형태로 만들었다.
표기법도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항목은 국립국어원 기준을 따르되, 모바일 환경에 맞지 않는 일부 항목은 우리 서비스만의 기준을 따르기로 했다. ‘100만 원’처럼 단위 명사를 띄어 쓰면 불필요한 줄 바꿈이 생기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어떤 부분을 타협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다른 서비스의 화면과 타사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했지만, 결국엔 우리 서비스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화면 예시들과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기준을 정했다. 이 과정에서 기준을 명확히 잡으며 훨씬 정돈된 느낌을 만들고자 했다.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UX라이터는 '전문가'가 아니라 '개인'이 된다. 설득에 대한 이유나 기준이 없다면, 그건 그저 의견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기준이 생기고, 문장에 대한 논리도 확실해진다. 실제로 가이드라인이 업데이트된 이후로 라이팅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좋은 라이팅 가이드라인은 무엇일까? 나는 UX라이터가 없어도 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라 말할 것이다. UX라이터는 보통 조직 내에 한두 명이기 때문에, 모든 화면에 관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UX라이터라는 사람을 거치지 않아도, 가이드라인만을 통해 실무자들이 일관된 보이스톤으로 화면을 작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UX라이터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무엇일까? 그렇게 힘들게 만든 가이드라인이 그렇게 잊혀지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한번 만들고 끝나는 문서가 아니다. 가이드는 사용되어야 비로소 그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디자인 툴로 사용되는 피그마로 가이드를 제작했고, PM과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1차, 전사 대상으로 2차 공유회를 열었다. '왜 이 가이드를 만들었는지',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설명하며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서비스는 끊임없이 바뀌고, 생각보다 많은 실무자들이 라이팅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실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가이드라인의 '사용성'을 높이는 것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라이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이드라인은 자주 꺼내보고, 자주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기준이 된다.
가이드라인을 만들 당시, 이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본 수많은 선배들의 글을 보며 도움을 받았다. 혹시나 UX라이팅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무엇부터 시작할지 몰라 헤매고 있다면, 이 글이 초안을 잡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