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감싸는' 것에 대하여

토스 메이커스 컨퍼런스 25에서 UX라이터가 발견한 것들

by 난로

컨퍼런스 참여에 적극적인 회사 덕에 입사 후 여러 컨퍼런스들을 다닐 수 있었다. 최근에는 토스의 컨퍼런스를 다녀왔다. 핀테크 업계에서 UX라이터로 일하는 내게는 업계 선배 격인 토스가 어떻게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있는지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다양한 세션이 있었지만, 두 개의 세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혜림님의 "수백만 명이 쓰는 제품을 갈아엎는 법"과 김희수님의 "외국인 사용성,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두 발표 모두 '언어'를 다뤘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쉬운 단어만이 답은 아니다

혜림님의 발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쉬운 표현'에 대한 접근법이었다. 주식 정보 화면을 개선하면서 그분이 마주한 문제는 이랬다. 사용자들은 "정보가 부족하다"라고 했지만, 정보를 더 넣으니 이번에는 "너무 어렵다"는 VOC가 쏟아졌다. 투자 지식이 있는 사용자와 없는 사용자가 같은 화면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혜림님이 찾은 해답이 바로 '감싸기'였다.


부채비율, 유동비율 이름만 들어도 어렵죠. 근데 이걸 왜 볼까요? 이거는 회사가 안정적인지 보기 위해서 봅니다.


용어 자체를 쉽게 풀어쓰는 대신, '안정성'이라는 상위 개념으로 감쌌다. 주식 초보도 "아, 이게 안정성에 대한 얘기구나" 하고 관심을 갖게 되고, 전문가들은 여전히 필요한 지표를 정확히 찾을 수 있게 된 거다. 이 접근법이 왜 중요한지 나는 너무 잘 안다. UX라이터로서 가장 자주 받는 요청이 "이 단어 좀 쉽게 바꿔주세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치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특히 금융 서비스에서는 정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딜레마가 항상 존재한다. 혜림님의 사례를 보면서, 나 역시 단어 하나를 바꾸기 전에 "사용자가 이 정보를 통해 정말 알고 싶은 게 뭐지?"를 더 깊이 고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번역을 넘어선 현지화

희수님은 작년에 신설된 토스의 외국인 전담 팀에서 일하며, 이미 45만 명이 사용하고 있던 토스의 외국인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례를 공유해 주셨다. 프로젝트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언어였다. 외국인 사용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화면을 만나면 스크린샷을 찍어 번역 앱에 돌리고, 결과를 확인한 후 다시 토스로 돌아와서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아무리 간단한 절차라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번역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토스에서 친근함의 표현으로 사용하던 "김토스 님"이라는 호칭을 영어로 직역하면 어색해진다. 그래서 영어 문화권에서는 "YOU"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해 어휘집에 포함시켰다.

AI 번역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런 문화적 뉘앙스와 서비스 맥락을 이해하는 건 여전히 인간 라이터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은 AI가, 현지화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UX라이터 채용공고에서 'Localization' 관련 업무를 자주 보게 되는데, 이 세션을 들으면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순한 번역을 넘어선 진짜 현지화의 가치를 시장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팅 문화가 자리 잡은 조직


두 발표를 들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토스 내에서 UX라이팅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잘 자리 잡혀 있다는 점이었다. 디자이너들이 자연스럽게 '쉬운 표현'을 고민하고, UX라이팅 팀과 협업해서 영어 라이팅 프린시플을 만드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부러웠다.

혼자 있는 직군으로 일하는 나로서는, 이런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목표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빨간펜 선생님이 아닌, 사용자 경험 전체의 맥락을 보고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 그것이 우리 직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가설을 넘어 현실로


희수님 발표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가설과 현실의 차이를 발견한 사례들이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 사용자의 이탈이 높았던 1원 인증 구간에서 처음에는 "외국인이라서 1원 인증이 낯설 거야"라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실제로 인터뷰해 보니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계좌 개설 경험이 있어서 이런 인증 개념을 알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1원 인증 번호를 확인하려면 다른 은행 앱을 통해 입금 내역을 확인해야 하는데, 실제 사용성 테스트에서 한 외국인 사용자가 갑자기 앱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켜는 것이었다. 그분은 뱅킹 서비스를 PC로 이용해서 확인하려면 PC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앱 내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계좌 비밀번호 인증 방법을 추가했고, 최종 가입 성공률이 25%나 상승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사용자는 이럴 것이다"라고 가정한다. 나 역시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사용자 인터뷰보다는 기존 데이터나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짜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작은 변화, 큰 임팩트


두 세션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건 '작은 개선이 만드는 큰 변화'였다. 이름 입력 필드를 나누는 것만으로 회원가입 성공률이 3.6% 증가하고, 언어 지원만으로 전환율이 6% 상승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UX라이터로서 내가 쓰는 한 문장, 한 단어가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느낌표 하나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는 사용자 관점에서 나와야 한다.


마치며


컨퍼런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본 건, 결국 좋은 UX라이팅은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사용자가 정말 알고 싶은 게 뭔지, 어떤 상황에서 이 화면을 보고 있는지, 어떤 감정으로 이 버튼을 누르는지. 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읽는 것.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늘 다짐했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사용자를 향한 마음을 담아서, 사용자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며 글을 써 내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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