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민 Dec 24. 2021

절대권력의 산타클로스

산타 할아버지의 부재를 한탄하며

 크리스마스의 상징 산타클로스. 우리 기억 속의 산타는 항상 인자하고 너그러우며 호탕한 웃음을 지닌 따뜻한 할아버지다. 하지만 덥수룩하지만 새하얀 수염과 정겹게도 불룩 나온 배의 이면에는 산타의 엄청난 권력이 존재하고 있다. 이 글은 권력가로서의 산타의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주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산타 할아버지


 성탄절 산타 할아버지는 제한적인 시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준다. 그러나 산타는 전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공항을 들리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출입국 심사를 받지도 않는다. 아니, 산타에게 여권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산타는 국가 주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최고 권력'으로 어떤 국가의 영토 안에서는 해당 국가가 유일한 최고 권력으로서의 주권을 지닌다. 치외법권 같은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타는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국경의 장벽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산타는 전 세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한다. 이는 일반 개인으로서는 꿈꿀 수조차 없는 엄청난 권력이다. 만약, 일반 개인이 산타처럼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여행을 한다면(물리적으로 가능한가는 고려하지 않는다), 지구를 반 바퀴도 돌기 전에 국경침입을 이유로 격추당했을 것이다.


2. 산타 할아버지만의 확실한 보상과 제재 수단


 정치학에서 권력이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누군가가 이행하도록 하는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강한 권력자일지라도, 어떤 보상이나 제재 없이 말로만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강한 권력자에게는 그에 필요한 강력한 수단이 있다. 대개 권력가는 특권이나 특혜, 사면 등을 통한 보상, 그리고 명령이나 법에 따른 처벌, 사회적 비난 등을 통한 제재 수단들을 피통치자에게 효과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이러한 보상과 제재 수단이 항상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정치체가 비대해질수록 적절한 수단을 찾기 어렵다. 예를 들면, 국내 정치 차원에서는 각 국가의 주권 아래 강제력을 행사하여 법치를 이뤄나갈 수 있다. 하지만 국제 정치 차원에서는 강제력을 지닌 최고 권력이 부재하여 어떠한 행위를 이행하도록 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국제 정치체로서의 UN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정조차 적절한 강제이행 수단이 없어 효과를 보지 못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의 강력한 권력가 산타 할아버지는 전 세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함에도, 확실한 보상과 제재 수단을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산타가 권력을 통해 이끌고자 하는 행위는 '아이들로 하여금 울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타는 선물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통해 우는 행동을 억제한다. 보상으로서의 선물은 제재 수단으로서도 기능하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선물을 받기에 나만 선물을 못 받는 것은 나에게서 선물을 뺏어가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단을 통해 산타 할아버지는 매년 아이들이 울지 않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3. 산타 할아버지의 '빅브라더'를 능가하는 정보력


 놀랍게도 우리의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전 세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다 알고 계실 수 있는가? 조지 오월의  《1984》 속 '빅브라더'조차 텔레스크의 사각지대까지는 감시하지 못하였는데, 아이가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착한지 나쁜지를 모두 알 수 있는 산타의 정보력은 '빅브라더'를 넘어선다.


 인간 권력자들은 이러한 산타의 정보력을 굉장히 탐낼 것이다. 많은 권력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착한지 나쁜지를 알고자 하며 이를 위해 실제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스노든 게이트(CIA가 PRISM 프로젝트를 통해 외국 정치인이나 민간인의 통신, 이메일 등을 감청한 것을 CIA 출신 스노든이 폭로한 사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국과 같은 강력한 정부도 '빅브라더'의 실현을 꿈꾸고 실제에 옮기고 있다. 꼭 민간인 불법감찰이 아니더라도, 권력은 국가 안보를 위하여, 방역을 위하여, 또는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하여 우리의 개인 정보 이용권한을 넘겨받고 있다. 어쩌면 권력이 꿈꾸는 정보력의 이상은 산타의 정보력과 다르지 않다.


4. 산타 할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소프트파워


 누군가는 산타 할아버지의 정보력을 의심한다. 자기는 분명 울었는데도, 착한 아이가 아니었는데도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심하지 말라. 우리의 자비로운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조차 사랑의 이름으로 선물을 나누어주신 것이다. 선물을 받기 위해 울음을 참으려고 했다는 사실조차 먼저 알고 이해해주신 것이며, 선물을 통해 더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것이다.


 이러한 산타의 포용력은 인간으로서는 쉽게 발휘하기 힘든 능력이다. 단순히 엄청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강력한 소프트파워(군사력과 같은 물리적 힘을 의미하는 하드파워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명령이 아닌 자발적 동의에 의한 힘을 의미)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타 정당'의 금로수 씨가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겠다'라는 공약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금로수 시장은 당선 이후 우는 아이에게도 선물을 주는 포용력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책 발표와 동시에 배신자라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며, 차라리 울지 않은 어른에게 선물을 주라는 주장도 나올 것이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선물의 운송을 맡은 루돌프 협회의 파업을 불사하는 반대 행동으로 사랑의 힘을 사용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 어떤 반대에도 부딪치지 않고 사랑의 힘으로 포용력 있는 정책을 펼치는 산타의 소프트파워는 인간계와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사실 산타는 없다.

 그렇다면 아무 때나 마음껏 울어도 되는 것일까.

 선물이 없으니 굳이 착한 아이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나쁜 아이가 성장한 나쁜 어른의 사회 속에 살아야 할까.


 그러나 산타 할아버지가 없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그 길은 험난할 것이다. 우리는 산타처럼 주권을 무시하며 지구 전역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산타만큼 확실한 보상과 제재 수단을 갖고 있지도 않다. 또한, 우리는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존중하며 정보를 조심스레 수집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랑의 힘을 발휘할 때조차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이렇게 보니 울지 않는 목표는 달성 불가능해 보이는가? 걱정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산타에게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정치다. 산타는 분명 강력한 권력을 지녔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 타협•설득•토론하지 않는 비정치적 동물이다. 우리는 비록 매 순간 흔들림의 연속을 겪지만, 정치적 동물로서 목표를 향해 정치적으로 한 발, 두 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타의 부재를 탓하지 말자. 어차피 우리의 위대한 산타 할아버지조차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라는 협박을 매년 반복하고 있지 않나. 인간은 인간으로서,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의 일을 하면 된다.


 메리 크리스마스

작가의 이전글 부스트샷, 그냥 맞는 게 맞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