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구성원들 간에 준수하고 있는 규범이라는 게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그 질서를 지킴으로써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한다고 믿는 편이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약자를 보호하고 이웃 간에 신의를 지키며,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누구하고나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규범이라는 게 지역에 따라 다르고 각 가정마다 상이했습니다.
같은 문화권이라도 각자가 살아온 환경에 따라,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지리적 특색에 따라,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도덕 가치관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각 나라의 문화와 집단 가치관에 따라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윤리적 질서 역시 상이했습니다.
나라마다 죄가 되는 범죄가 있고 아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나라에선 어떤 법을 어기면 죄가 되고 또 다른 나라에서는 그 법을 어긴다고 해서 죄가 성립되지 않는 사례처럼 말이죠.
어떤 나라에서는 일상적으로 수용되는 행동이 또 다른 나라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범법행위로 죄악시되기도 하잖아요.
종교 윤리가 강한 나라에서,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인권 유린이라고 판단되는 것들이 당연한 지켜야 할 사회정의처럼 적용되고 있는 것도 흔하게 확인할 수 있듯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집 안에서 부모님이 정한 규율이 있었는데 다른 집에서는 그런 규율 자체가 없었고 당연히 그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체벌을 받거나, 나쁜 아이로 단정되어지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를 향한 부모님의 높은 눈높이와 상식 수준을 넘어서는 기대치가 저를 나쁜 아이로 만든 거죠.
한 개인에게 선험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악의 본성이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사회 환경이 그 사람을 악으로 규정한 거죠.
결국 한 개인에 대한 선과 악의 구분은 왠지 그 개인이 처한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각 집단의 문화와 관습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화되고 달라지는 선악에 대한 기준을 보편적 규범,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통념, 도덕규범에 부합하는 삶이 반드시 올바르고 정직한 삶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어도 제 입장에서는 각 사회마다 지켜야 할 규범인 도덕과 윤리가 선악을 판별하는 보편적 준거가 될 수 없는 것 같다는 거죠.
그리고 도덕 가치와 윤리규범을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그들의 말이 다 맞는 게 아니었어요. 정작 그들 자신도 남들에게 가르친 대로 살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같이 본인들이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어요.
또 이런 경우도 있죠. 교조적인 도덕규범이나 사회통념이 실제 다양하게 변주되는 삶의 가변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숱하게 목도했죠.
하나의 고정된 원칙이 시시각각 바뀌는 인간의 욕망과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고자 하는 욕구를 도리어 불필요하게 억압하는 족쇄로서 작용한 결과를 많이 봐 온 거죠.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착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 아니었던 경험이 적지 않게 있어요.
내가 생각해 왔던 선이 오히려 악의 본모습으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고 내가 미워했던 악이 알고 보니 선의 본질을 감추고 악으로 오인받는 경우도 있었죠.
공통적으로 그들이 억울하게 모함을 받는 데는, 교조적인 도덕 가치와 근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윤리 규범을 내면화한 사람들이 형성한 전체주의적 힘이 그들 개인의 삶을 구속하며 억압한 결과였죠
이러다 보니 이 사회가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하는 도덕과 윤리라는 것, 무엇보다 그 질서를 절대 선으로 규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들이 선이라고 하면 무조건 참이고 따라가야 할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근본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집단 규율로부터 낙오되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도태될 거라는 두려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하나의 '위협'으로 느끼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그들이 규정한 선을 따르게 만드는 근본 동력이지는 않을까 의심이 들어요.
도덕 가치와 윤리규범이 선이기 때문에 지켜지는 게 아니라 절대 선이라고 믿는 구성원 전체의 꿈쩍하지 않는 암묵적 힘이, 집단의 팽팽하게 결속된 약속이 약소한 개인을 절대적으로 압도하며 순응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는 거죠.
나를 언제든지 사회에서 매장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도덕과 윤리라는 표피를 뒤집어쓴 또 다른 집단화된 권력 말이죠.
알다시피 힘의 논리라는 것은 내면에 공포와 두려움을 야기함으로써 개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원리잖아요. 한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애초의 우리가 바란 도덕과 윤리라는 가치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는 거죠.
결국 이 윤리라는 질서, 절대 도덕률이라고 생각했던 가치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감시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는 혼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회는 너와 나, 우리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질서가 요구됩니다. 천성과 기질이 같지 않고 각자가 처한 환경과 배경도 다 다르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충돌의 여지가 있습니다. 당연히 상호 간, 공동체의 질서가 별 탈 없이 유지되기 위해 규범과 규칙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그 규범과 규칙이 도덕과 윤리라는 이름의 강압적 힘으로, 한 개인을 압도하는 전체주의적 신념으로 변질될 때 그건 이미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우리를 억압하고 가두는 냉혹한 감옥일 뿐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