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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IND May 06. 2022

마음의 변증법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날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날이다. 술에 찌들어 사는 동기 무리가 눈에 띈다.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마실 수 없는 나는, 술로 흘려보내는 시간의 무의미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동기 무리를 경멸한다. 그에 뒤이어서 곧바로,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집단과 섞일 노력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경멸한다. 외려 나는 그토록 경멸했던 동기 무리를 동경하게 되고, 타자와 대비되는 주체인 나는 나에게서 소외된다. 나는 길을 잃는다.


 그로부터 이삼 년도 지난 지금, 어쩌면 나는 그때의 내가, 그때의 나의 마음이, 왜 그리도 방황했는지 알 것만 같다. 그때의 나는 자기와 타자, 그리고 의식에 대해 무지했었다.


 자기의식(혹은 마음을 바라보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자기를 의식하는 의식인 걸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기의식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선 ‘자기’부터 생각해 보자. ‘자기’. 다시 말해 나, 혹은 나라는 주체는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우리는 ‘자기’를 타인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사용한다.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 곧 ‘나’가 자기이며, 나의 정체성, 즉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떠나는 여정이 곧 영웅의 일대기, 신화의 일대기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자기 정체성이란 영웅들마저도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를 의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타인과 구별되는 것이 곧 자기이다. 그렇다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과정은, 타인과 나를 분리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이 과정은 일상은 물론 모든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다. MBTI 검사를 통해서 타인과 나를 분리할 수도 있고, 출신 학교나 지역을 통해 타인과 나를 분리할 수도 있으며, 학파나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통해 타인과 나를 분리할 수도 있다. 타인에게서 멀어지면 나는 나를 의식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자기의식이다.


 그러나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인생에서 사라지듯이, 자기의식 또한 그러하다. 타인과 분리되어 자기 정체성을 획득한 자기는, 어느 순간 흐려진 자기 정체성을 잃는다. 왜일까? 영원불멸할 것만 같았던 자기 정체성은, 무슨 이유로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걸까? 이삼 년 전의 나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타인이 있기에 나 또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바로 자기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결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타인과의 분리는 곧 타인과의 의존이다. 타인이 없으면 나와 분리할 무언가가 사라지고, 따라서 누군가와 분리된 나 또한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마음의 변증법이 일어난다. 타인과 분리된 자기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자기가 오로지 타자에 의해 자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기 정체성의 견고함은 무너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이어야 한다. 아무것도 나를 타인과 구분해주지 못한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따라서 자기 정체성 획득을 위한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된다. 마음의 변증법은 끝나지 않는다. 이 여정을 끝나게 해 줄 무언가가 도대체 있는 걸까? 이삼 년 전 길을 잃었던 나는 어떻게 길을 되찾을 수 있는 걸까?


 자기 정체성의 획득과 상실은, 타자가 존재하는 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순환이다. 그러나 이 순환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자기의식이다. 타인 또한 자신과 닮은, 때로는 유동하며 때로는 고체화되는 또 다른 주체임을 인정하고, 그러한 타자에 의해 주체가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의식이 자기를 바라보게 되면, 유동 가운데에서 자신의 고유성뿐만 아니라 타자의 고유성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주체와 타자 모두의 상대성을 의식하는 의식, 타자 없이는 자기에게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의식, 바로 그 의식이 마음의 변증법을 수렁이 아닌 한 차원 높은 지평으로 이끈다.



Artist 'PJ' with Galler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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