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Oct 26. 2023

79층 호텔 라운지에는 어떤 사람들이 올까?

어제는 화장실 청소를, 오늘은 호텔에서 샴페인 한 잔을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날입니다. 혹시나 해서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만 기다리던 날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는 지금,

롯데 시그니엘

79층 라운지에 있습니다.


7시 45분에 객실에서 나와서 8시에 마감하는 샴페인을 두 잔 따라놓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무조건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말이에요.





이럴 줄 알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져왔습니다.


여정을 정리하면서 쓰는 글도 좋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장감이 있달까요?


생전 이런 곳에 올 줄 몰랐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끝까지 살아봐야 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행운들이 저를 찾아올까요?




호사스럽기 짝이 없는 이번 호캉스는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롯데 시그니엘 호텔입니다. 신랑이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었고, 도련님이 피 같은 연차를 며칠이나 써서 숙박권을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남동생이 둘이여도 이런 선물은 받은 적은 없습니다. 둘의 사이가 대단한 걸 오늘 또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79층 라운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79층 시그니엘 라운지


혼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핸드폰 하는 사람 두 명, 모녀지간 두 팀, 부부 두 팀, 그리고 수다쟁이 외국인들이 한 무리 있습니다. 컴퓨터 사용이 가능한 공간에는 언제부터 마셨는지 샴페인 잔이 수북합니다.


다들 어떻게 여기에 묶고 있는지 평범한 저로서는 감히 상상이 잘 되지 않아요. 좋은 옷을 꺼내 입고 화장까지 하고 왔건만 아무래도 호텔 로비에서 이런저런 서비스를 받으면서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휘황찬란한 가방들도 구경하기 바빴고요. 유모차도 끌어야 하고 아무리 침착해보려 해도 정신없었습니다.




79층 호텔 로비 창밖으로 구름이 보인다.


이런 곳에 운 좋게 올 때면 아마 누구나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할 겁니다. 처음 온 티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잖아요. 하지만 그건 저의 작은 바람일 뿐이겠지요?




어제의 화장실 청소를 하던 나와, 고급 호텔에서 서비스를 받는 나는 분명 똑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제는 화장실 배수구를 청소했고 오늘은 호텔 라운지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습니다.


우러러보던 높은 빌딩들, 번쩍번쩍한 아파트들은 오늘 96층에 있는 방에서 내려다보면 한참 밑에 있습니다. 자동차는 하나의 빨간 불빛과 노란불빛이 되어 오고 갑니다.


하지만 다른 환경에 놓였을 뿐 나 자신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은 언제나 같다는 걸 깨닫는 것입니다. 고급 서비스를 받는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지저분한 일을 한다고 못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마음속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동동이는 자기가 지금 어디에 와서 무얼 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항상 자기 자신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이불은 항상 이렇게 꼭 쥐고 다니고요.


 

호텔에 와서도 로보카 폴리 이야기를 틀어놓고 변신을 합니다. 여행을 와서 그런지 얍! 얍! 하는 기합소리도 더 신이 납니다. 덕분에 엄마 아빠의 호텔 BGM은 로보카 폴리가 되었네요.




호텔 라운지에서는 딱 30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잘 논다고 실컷 있다 오라는 말에 좋아하고 있을 무렵 신랑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동동이가 갑자기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고 합니다. 샴페인 두 잔 중에 딱 한잔만 겨우 비워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얼굴이 벌게져서 돌아오니 동동이가 엄마가 없어진 줄 알고 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잠시 떠났던 그 시간 동안 아빠는 소방차였고 자기는 소방관이어서 불을 끄고 다녔다고 하네요.


그렇게 하룻밤이 저물었습니다.




지금은 집에 돌아와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틀 동안 황송한 서비스를 받으니 집에 돌아올 때는 약간 멍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집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 집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생리할 때면 감정이 널을 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