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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안녕, 안녕, 안녕



엄마, 이제 마지막 글이야.


글을 쓰는 동안 참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 스스로에게 다독이는 말들. 그리고 댓글로 토닥여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아마 글을 쓰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겠지.


한 때 집을 나가는 게 꿈이었고, 아빠를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엄마도.


그런데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집에서 오래된 사진 뭉치를 꺼냈을 때, 처음에는 내 사진을 보고 놀랬었어.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웠을까 하고. 그다음은 엄마의 사진을 보고 놀랬지. 어쩜 이렇게 어렸을까 나의 엄마는.


사진관에서 인화한 대로 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사진들. 그 사진들을 가지고 잠깐의 시간여행을 떠났어.


그곳에서 엄마는 아직 수줍은 소녀였고 처음 엄마가 되어 뭘 할지 모르는 얼떨떨한 표정이었어. 마치 예전의 나처럼 말이야.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의 진짜 모습은 항상 그대로라고 생각해. 50대의 엄마도, 갓 결혼을 한 20대의 엄마도 안에 있는 중요한 무언가는 같은 사람인 거야.


장난스럽게 잘 웃고 개구쟁이인 어떤 영혼.


20살의 엄마를 만난다면 같이 손잡고 어디론가 놀러 가고 싶어. 들판을 마음껏 달리고 깔깔거리며 이야기하고 싶어. 진짜 친구가 되고 싶어.


우리는 시간을 가로질러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몰라.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 준 것들이 때로는 너무나 불합리해 보여서 나는 왜 나로 태어난 것이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었어. 그렇게 던져준 길을 걸었어. 한 걸음씩 차곡차곡. 도망칠 수도 없이 꼼짝없이 걸어야 할 길이었어.


꼭 그래야만 했을까.

꼭 그 길을 걸어야만 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놓아줄 수밖에. 이제 와서 놓아주지 않으면 어쩌겠어. 훨훨 날아가기를. 모든 기억들이 바람에 실려가기를.




지난번에 집에 갔을 땐, 엄마와 아빠가 우연히 찍힌 사진을 한 장 발견했어. 4H 모임에서 만난 20대의 엄마와 아빠. 커피를 타는 엄마와 먼 곳을 바라보는 아빠.



그대로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인연. 저 사이에 붉은 끈이라도 묶여 있었을까?





엄마,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야.


사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사진에서 끝나.


오늘의 이야기도 사라지겠지. 지금 이 순간도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되겠지. 사진마저 사라지고 나면 아마 우리의 이야기는 바람 속에서나 들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슬퍼하진 마.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졌고 어디든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되었을 테니까.


바람은 아마 오랫동안 거기에 있을 거야.








* '안녕, 나의 애순씨' 연재를 마감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따뜻한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요. 오늘도 따뜻하시고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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