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한 방울, 기억의 온도

흩어지는 시간 속, 잊혀지지 않는 향기

by 가글

첫 번째 기억, 잿빛 콘크리트 위

2010년 5월의 어느 날, 서울 시청 광장 앞 잿빛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있었다. 섭씨 28도의 햇살은 쨍하게 내리쬐었고,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낡은 청바지와 흰 티셔츠 차림이었고, 옆에는 캔커피 한 캔이 놓여 있었다. 그때, 우연히 길거리 노점에서 팔던 향수를 시향했다.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향이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오래된 책장을 펼친 듯한 냄새였고, 그 옆에는 쌉쌀한 초콜릿 향이 섞여 있는 듯했다. 주변의 차량 소음과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그 향기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때 향수 고르는 방법 완전 정리를 처음 읽었다. 묘하게 끌렸던 건, 향수가 단순히 좋은 냄새를 풍기는 물건이 아니라, 특정한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라는 점이었다.


“이 향수, 무슨 냄새야?” 옆에 있던 친구가 캔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모르겠어. 그냥… 뭔가 묘한 기분 들어.” 나는 대답했다. 그 묘한 기분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이었다.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즐겨 쓰시던 파우더 향 같기도 하고,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던 낡은 책 냄새 같기도 했다. 어쩌면 향수는,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되살리는 마법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시청 광장 앞을 지나쳤다. 잿빛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며, 그날 맡았던 향기를 떠올렸다. 시간이 흘러, 그 향수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향수는, 단순한 물질적 존재를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감정의 저장소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래된 편지 수준으로, 그 향기를 맡으면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잊혀졌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묘한 슬픔과 동시에 따스한 위로를 받는다.





두 번째 기억, 회색빛 방 안에서

2015년 겨울, 낡은 아파트의 회색빛 방 안에서 나는 향수를 골랐다. 창밖은 섭씨 3도까지 곤두박질친 날씨였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좁은 방 안에는 책상과 침대, 그리고 낡은 옷장만이 놓여 있었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양한 향수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어떤 향이 나에게 어울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퍼스널컬러 진단처럼,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일이 처음엔 왜 그리 막막했는지 모른다.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때, 나는 향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완벽한 향수를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 사이에서 갈등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골라?” 엄마가 방에 들어와 물었다. “어떤 향이 좋을지 모르겠어. 나한테 어울리는 향수가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엄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네가 좋아하는 꽃 향기를 한번 골라보렴. 네 얼굴에 해가 비칠 때처럼, 밝고 화사한 향기가 네게 잘 어울릴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의 말은,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열망을 일깨워주었다. 어쩌면 향수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냄새는 어렴풋한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나를 다시 정의하는 일종의 주문과 같았다.


결국, 나는 장미와 라일락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향수를 골랐다. 그 향기는, 춥고 어두웠던 방 안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향수를 뿌리고 나서,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향수는, 단순히 좋은 냄새를 풍기는 물건이 아니라, 나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마법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 수준으로, 향기는 내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세 번째 기억, 쨍한 햇살 아래

2020년 여름, 바닷가 근처 작은 가게 앞에서 나는 향수를 샀다. 섭씨 32도의 뜨거운 햇살은 피부를 따갑게 달구었고, 바다 냄새와 함께 짭짤한 소금기가 입안에 맴돌았다. 나는 오래된 청바지와 흰 티셔츠 차림이었고, 옆에는 아이스크림 한 개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연히 그 가게 앞에서 멈춰 서게 되었고, 매장 안에서 풍겨 나오는 독특한 향기에 이끌렸다. 그 향기는 시원하면서도 상쾌했고, 동시에 쌉쌀한 나무 향이 섞여 있는 듯했다. 쨍한 햇살과 시원한 바닷바람, 그리고 독특한 향기의 조화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나중에 맥주효모 샴푸 효과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향기는, 단순한 감각적 경험을 넘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향수, 어디서 났어?”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이 가게에서 샀어. 냄새가 너무 좋지 않아?” 나는 대답했다. 여자아이는 향수를 킁킁거리며, “응, 진짜 좋다. 바다에 있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향수가 가진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향수는, 단순히 냄새를 전달하는 물건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주는 매개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소리의 울림처럼, 향기도 마음속 깊은 곳에 파동을 일으킨다.


나는 그 향수를 뿌리고, 바닷가를 따라 산책했다. 쨍한 햇살과 시원한 바닷바람, 그리고 독특한 향기의 조화는, 내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향수는, 단순한 물질적 존재를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감정의 정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래된 사진 수준으로, 그 향기를 맡으면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잊혀졌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묘한 행복감과 동시에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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