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좋은 부모’라는 이상적인 생각
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느끼는 죄책감이 ‘나는 모성애가 없는 엄마인가?’이다. 실제로 아이가 아프면 아이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아픈 아이를 돌보며 힘들어할 나 자신이 먼저 더 걱정되었다. 아이 둘 다 돌 전에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아이의 적응이 걱정되기 보다도 내가 숨 쉴 시간이 생긴 것에 훨씬 더 기쁨을 느꼈다. 각종 육아채널에서 절대 아이의 밥을 영상을 보여주면서 먹이지 말라고 하는 것을 봤음에도, 나는 내가 편하자고 만화를 보여주며 넋이 빠진 아이의 입에 밥을 쑤셔 넣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모성애 없는 엄마로 볼 까봐 마음 한 켠이 늘 찜찜하다. ‘엄마는 모성애가 있어야 한다’는 그 사회적인 시선이 괜히 나를 괴롭힌다. 모성이 있다면 엄마는 항상 아이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며,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 말도 못 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직장에 복귀를 하면 “애가 엄마 때문에 고생하네”라는 말을 들으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쁜 엄마가 되는 것 같아진다. 애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길래 이렇게 자주 아프니?”라는 말을 듣는다. 엄마는 뭘 해도 죄인이다. (웃긴 건 아빠들한테는 아무도 그런 말을 안 한다. 그런 말을 듣는 건 항상 엄마이다.)
‘모성애’라는 세 글자가 세상에서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 자격지심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 단어가 참 듣기 싫다. 그 단어를 잠깐만 떠올려도 불편하다. 엄마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완벽에 가까운 잣대로 엄마들을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니까. 그냥 아이를 사랑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편안하게 느끼고 싶은데, 모성애라는 말에 자꾸 강요당하는 기분이다.
나도 엄마는 처음인데 엄마는 당연하게 다 잘해야 될 것만 같고, 혹시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모든 책임이 엄마에게 향해버린다. 이미 너덜너덜 나가떨어질 것같이 열심히 육아를 해도 말이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리기라도 하면 아이를 잘 못 키운 것 같아 괴로워진다. 아이가 불안한 건 엄마가 불안하기 때문이란다. 기승전 아이의 행동은 무조건 엄마로 귀결된다. ‘아이가 잘 못 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엄마들의 마음을 늘 편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아이가 걱정돼서 이기도 하지만, 내가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매일 피똥 싸고 있다. 그런데 그 좋은 부모는 언제 도달하는 거지? 될 수 있기는 하는 건가? 좋은 부모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이며, 왜 자꾸 ‘나는 좋은 부모인가’라는 질문 앞에 초라해지고 있을까.
좋은 부모는 말 그대로 우리가 되고 싶은 ‘이상’ 일 뿐이다. 이상이기에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이상이기에 현실적으로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닿을 수 없는 천상계의 목표치를 설정해 놓고 ‘나는 역시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어’하며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니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은 할 수 있더라도, 되지 못했다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라는 욕심이 엄마를 괴롭힌다. 내 모든 행동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스스로 별로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엄마로서의 자존감이 계속 하락하게 되며, 내가 어떤 육아를 해도 결국은 이상적인 그 개념 때문에 만족하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내가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더라도, 아이의 입장은 또 다를 수가 있다. 내 생각과 내 방식대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만족했다 치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포인트와 다르다면 그것은 진짜로 좋은 부모가 된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그러니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초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퇴근하고 진이 다 빠져서 집에 돌아온 워킹맘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애들을 저녁시간 내내 티비나 틀어주고 방치해 놨다고 해서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아’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애들은 오히려 행복한 날이 되었을 것이다.)
전업맘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라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치킨이나 시켜주고 종일 누워있다고 해서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아’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애들은 오히려 신나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 프롤로그에서 ‘행복한 육아는 판타지’라고 했다. 마찬가지다. ‘좋은 엄마’, ‘완벽한 부모’도 판타지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인데 그런 것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사실 베테랑 엄마, 익숙한 엄마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 왜냐면 아이가 자라남과 함께 엄마는 계속 처음을 겪으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신생아 엄마도 처음, 아이가 자라면서 2살 엄마도 처음, 3살 엄마도 처음, 4살 엄마도 처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도 학부모는 또 처음이다.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나면, 두 명은 또 처음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 임을 인정하면 편하다. 그것은 그냥 인간 본성이다. 내가 나쁜 엄마여서도 아니고, 모성애가 없는 엄마여서도 아니다. 슈퍼우먼처럼 행동하려다 스트레스받아 폭발하지 말고 내가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사랑하면 된다. 덜 사랑해주고 싶은 날은 덜 사랑해 줘도 괜찮다. 너무 시달릴 때는 아이가 안 예뻐 보이는 날도 종종 있는 게 당연한 거다.
나를 자꾸 작아지게 만드는 좋은 엄마와 모성애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그런 개념이 없더라도 엄마는 존재 만으로 충분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에게 당당하게 말하자.
“엄마도 처음이라 그래.”
“나는 할 만큼 했어.”
“이 정도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