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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Oct 18. 2023

아이와 남편에게 화가 잦아졌다면

나쁜엄마가 아니라 안괜찮은 엄마

<육아도 인간관계>


아이와 남편에게 자주 화를 내는 것도 육아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이다. 아이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야 육아가 편해진다. 가족은 매일 만나며 일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다.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내 행복의 첫걸음이다. 아이와 남편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되면 당연히 사이가 나빠지기 마련이다. 틀어진 관계 속에서는 내가 아무리 내 시간을 즐겁게 보낸다고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 그 어떤 것도 근본적으로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남편이 아이와 다른 점은 내가 화를 냈을 때 상대방도 지지 않고 화를 내어 싸움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부부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 싸우는 시간 동안만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내 눈앞에서 사라지더라도 마음에는 분노가 계속된다. 싸운 상황을 되새김질하며 일상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육아 전우를 잃는 것은 정말 큰 마이너스다. ‘육아’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팀원과 삐그덕 거리자 그제서야 ‘아, 내가 괜히 짜증내서 이 사단을 만들었구나’ 싶어 후회가 몰려온다.



잦은 화는 나 스스로도 힘들지만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도 힘들게 만든다. 남이야 사실 안보면 그만이지만, 아이와 남편은 아무리 안맞아도 계속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한다. 내 인생에 동행을 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건 맞지만, 가족에게 화를 내니까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악마가 한번 불쑥 출현하기 시작하면, 그 악마는 점점 더 자주, 더 크게 나타나서 활개를 친다. 확실히 화는 내면 낼수록 더 잦아지고 습관화된다. 화가 나는 과정도, 화를 내는 과정도, 화 낸 후 자괴감이 드는 과정도. 모두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에너지를 소모한다. 반대로 화는 안내면 안낼수록, 안난다. 처음 몇번 만 고비를 잘 넘기면 어렵지도 않다. 화에 대해서 조금만 이해하게 되어도 어느정도 줄일 수 있다.






<화 낸 후 죄책감이 드는 이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면 왜 그렇게 마음이 안좋을까. 사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이미 엄마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아이는 나보다 약자이기 때문에 쉽게 화 내게 되기 때문이다. 화내기 어려운 상대인 부모님, 남편, 이웃집 엄마 등 에게는 화가 나더라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어른인 타인에게는 분명 조심하게 되는데 반해 만만한 아이는 내가 화를 내도 되는 대상이 된다. 물론 엄마들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마침 아이는 말을 (지지리도) 안 들으며 화를 낼 계기를 제공한다. 아이의 행동이 도화선이 되어 참다 참다 폭발을 한 엄마는 결국 후회를 하게 된다.


혼을 낸다는게 화를 냈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화냈기 때문에.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윽박지르며 상처를 줬기때문에.


혼내는 것은 훈육과 비슷한 개념이다. 잘못을 한 것을 바로잡아주는 것. 훈육의 기본은 짧게, 단호하게 안돼는 것을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만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잘못을 구실로 삼아 엄마들은 아이 자체를 비난하기도 하고, 막말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게 된다. 화를 내다보면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기 때문에 후회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쌓인 스트레스와 감정을 아이에게 화풀이했다는 점이 괴롭다. 육아를 통해 내가 상처받았고, 그 상처를 아이에게 돌려주게 된 셈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결국 화를 조절하지 못한 자신을 엄마 자격 없는 사람으로 자괴감 느끼며 스스로 낙인찍어 버린다.   


나는 분명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내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잘해주려다가, 좋은 엄마 되려다가 결국 화내는 엄마가 되는 것이다. 결국은 내 욕심이 아이를 힘들게 했고, 내 욕심으로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또 멘탈이 털리며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육아, 너무 힘들어서 참다참다 화가 난다. 내 아이지만 마음 대로 안되고, 속 터지는 일이 계속 일어난다. 기분 좋게 외출해서 잘 놀다가 집에 가자는 한마디에 악을 쓰며 드러눕기라도 하면 결국 무력으로 들쳐 안고 궁디 팡팡 두드리며 화내는 엄마가 되어버린다. 아이를 위한 규칙이나 해야할 일들이 좌절되었을 때도 좋은 엄마가 되려다 반대로 화내는 엄마가 되어버린다. 내 기대 속의 육아와 현실 육아의 괴리로 화가나기도 한다. 그런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말안듣는 아이에게 짜증이 나고 결국은 “왜 이렇게 말을 안들어!” 하며 성질을 내게 된다. 화낸 후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다시는 아이에게 화를 안내야지 다짐한다. 그런데 무슨 금붕어도 아니고 하루도 안가서 또 욱하게 된다. 무한 반복이다. 그렇게 육아는 또 고통이 된다.



안다. 모두가 안다. 화내면 안 좋다는거, 내가 별로인 사람이 된다는거, 욱하는 엄마에게서 아이가 상처받는다는거, 부부 싸움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거. 엄마도 화내기 싫다. 육아하면서 성질만 안나도 모든 것이 평화로울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니 처녀시절 성격 좋았던 내 모습이 그립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하며 육아를 통해 알게 된 자신의 작은 그릇에 대한 실망감도 든다. 그런데도 자꾸만 화가 난다. 왜그럴까?






<엄마의 숨겨진 감정>


‘화’가 자꾸 난다면 안 괜찮다는 신호다. 몸이든 마음이든 엄마가 너무 지친 것이다. 감정의 측면에서 본다면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자신의 마음부터 헤아려야 하는데, 그걸 안해서다. 나 자신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얽혀 결국 엄한데서 화로 뭉뚱그려져 폭발한다. 엄마가 자신의 마음 속 감정만 잘 살펴도 화라는 감정은 수그러든다.


회피하거나 억압된 감정은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모든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감정 자체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하기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 감정들은 나를 보호해주기도 한다. 감정을 그때그때 잘 알아차려서 해소해야 뒷 탈이 없다.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객관화해서 알아야 한다.



엄마의 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숨겨진 감정이 따로 있다. <엄마의 화코칭>책에서는 우리가 ‘화’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 뒤에는 다양한 감정이 따로 있다고 한다.


- 피곤함: 종일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피곤함이 쌓인 저녁 시간에 엄마들은 자주 폭발한다.

- 초조함: 특히 아침에 어린이집 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는 아이를 재촉하며 버럭한다.  

- 걱정과 불안: 아이가 밥을 잘 안먹으면 걱정과 불안으로 혼을 내게 된다. 위험한 짓을 했을 때도 걱정으로 되려 크게 화를 낸다.

- 아쉬움, 서운함: 남편을 위해 정성을 들여 밥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회식이라는 말에 화를 내게 된다. 진짜 마음은 단란한 저녁식사를 못하게 되어 내심 아쉽고 서운한 것이다. 또한 독박육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화를 내게 한다.


이외에도 속상함, 억울함, 낮아진 자존감, 우울함, 질투, 약오름, 분함, 불쾌감 등의 다양한 감정이 화로 표현될 것이다. 엄마는 피곤해서 화내고, 초조해서 화내고, 걱정되서 화내고, 서운해서 화낸다. 자주 화내는 엄마는 여러 이유들로 지치고 아프고 힘든 엄마이다. 보살핌과 관심이 더 필요한 것뿐, 나쁜 엄마여서가 아니니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분명 이렇게 자주 화내지 않았다.


앞으로는 자신의 감정과 화가 난 이유, 화가 난 상황을 제대로 돌아보자. 상황을 곱씹으며 내가 왜 화를 냈었는지 그 진짜 감정과 이유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되풀이되지 않는다. 화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자신을 비난만 하고 그쳤기 때문이다. 자책과 후회는 자신을 더욱 괴롭게만 만들 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아이와 남편에게 화를 낼 때 머릿속에서 내가 말하는게 들린다.

‘아, 내가 지금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아이가 음료수를 쏟은 것에 예민하구나.’

‘아, 내가 지금 빨리 애들 재우고 내시간 갖고싶은 욕심에 초조해서 화내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남편에게 포옹을 받고 싶은데 남편이 폰만 봐서 서운함에 짜증내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아이가 아픈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억울하구나.’


감정을 객관화하지 않으면 그 소용돌이 속에 영문도 모른 채 휩쓸리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해주기만 해도 분노는 그렇게 쉽게 치솟지 않는다. 자기 감정 객관화가 잘되면, 타인의 감정 객관화도 잘 이루어진다. 아이나 남편이 화낼 때 그 속의 진짜 감정과 이유가 금방 객관화가 되면서 화가 잘 안난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괜한 싸움으로 번질 일도 없다.     






<엄마는 감정노동자>


엄마는 철저히 감정 노동자이다. 화를 내긴 해도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며 다짐도 해보고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조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않다. 아직은 아이가 엄마의 마음까지 헤아려줄 수는 없다. 감정조절과 표현에 대해 아직 서툰 아이는 결국 엄마에게 쏟아내게 된다. 나는 종종 내가 아이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어른인 내가 똑같이 아이에게 쏟아낼 수는 없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렸을 때 집에만 오면 엄마한테 온갖 있었던 이야기를 토해내기도 하고 짜증도 냈었다. 엄마가 제일 만만해서, 엄마가 제일 편해서, 엄마가 받아줄 걸 아니까. 엄마에게 분출하고 나면 한결 괜찮아졌다.

엄마라는 사람은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보듬어 주게 된다. 그러면서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안게 된다. 육아의 고충을 남편에게 아무리 털어놓아도 온전히 이해받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안괜찮은 엄마가 되어버린다. 아이가 조금만 짜증내도 쉽게 화를 낸다. 아이는 그 나이대의 본능대로 행동할 뿐인데도 말 안듣는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남편이 뭘 해도 거슬리고 불만이 생긴다. 엄마 마음에 해소되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이 꽉 차서 여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육아를 하면서 화를 안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엄마에게 징징거리거나 떼를 쓰며 표현하기에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또한 아이와 남편은 절대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엄마라면 결국 무슨 일로든 화가 나게 된다. 그래도 화의 횟수를 줄일 수 있고, 화의 정도를 줄일 수 있고, 화를 조절할 수 있다. 그 방법은 엄마의 마음을 먼저 돌보는 것. 엄마는 스스로에게 늘 물어야 한다. 나 지금 정말 괜찮은지.


아이와 남편에게 화내고 후회하는 일만 줄어도 육아는 덜 고통스럽다. 화를 내봤자 돌아오는건 더 큰 화다. 엄마가 화내기 시작하면 아이도 화내고 남편도 화낸다.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엄마 자격 운운하며 내 자존감을 갉아먹지 말자. 대신 내 마음부터 잘 챙기자. 피곤한건지, 불안한건지, 서운한건지, 우울한건지 늘 잘 살펴보자. 엄마가 괜찮으면 목소리와 말투부터 다르게 나간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에는 사랑이 묻어있다. 아이들과 남편도 느낀다. 따뜻한 엄마 앞에서는 훨씬 마음이 누그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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