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 읽기부터 하자
"아이가 태어나고 화가 많아졌어요. 그전에는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남편과도 많이 싸우게 되고요. 분명 힘들어서 화내는데 화내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육아는 단순 업무가 아니다. 부부와 아이가 함께하는 인간관계다. 엄마가 자꾸 화를 내면 관계가 틀어져 육아는 더 힘들어진다. 엄마도 다정하게 대하고 싶은데 내 맘과 다르게 또 욱하고 만다.
아이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야 육아가 편해진다. 가족은 매일 만나며 일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다.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내 행복의 첫걸음이다. 아이와 남편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되면 사이가 나빠지기 마련이다. 그럴 땐 내가 아무리 내 시간을 즐겁게 보낸다고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 그 어떤 것도 근본적으로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상처 준 것 같고,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아이에게 화를 내 봤자 결국 나만 손해다.
남편이 아이와 다른 점은 내가 화를 냈을 때 상대방도 지지 않고 화를 내어 싸움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부부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 싸우는 시간 동안만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내 눈앞에서 사라지더라도 마음에는 분노가 계속된다. 싸운 상황을 되새김질하며 일상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육아 전우를 잃는 것은 정말 큰 마이너스다. 남편과 협력적인 육아를 하기 위해서 남편과 잘 지내는 것이 필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화를 낸다. ‘육아’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팀원과 삐그덕 거리자 그제야 ‘아, 내가 괜히 짜증내서 이 사단을 만들었구나’ 싶어 후회가 몰려온다. 남편과 싸워 봤자 결국 또 나만 손해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이미 엄마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아이는 나보다 약자이기 때문에 쉽게 화 내게 된다. 화내기 어려운 상대인 부모님, 남편, 이웃집 엄마 등에게는 화가 나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대신 만만한 아이가 내가 화를 내도 되는 대상이 된다. 마침 아이는 말을 (지지리도) 안 들으며 화를 낼 계기와 구실을 제공한다. 참다 참다 폭발을 한 엄마는 결국 마음이 안 좋아진다.
혼을 낸다는 게 화를 냈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화를 많이 냈기 때문에.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윽박지르고 한 대 때리며 상처를 줬기 때문에.
화낸 후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다시는 아이에게 화를 안 내야지 다짐한다. 그런데 무슨 금붕어도 아니고 하루도 안 가서 또 욱하게 된다.
안다. 모두가 안다. 화내면 안 좋다는 거, 내가 별로인 사람이 된다는 거, 욱하는 엄마에게서 아이가 상처받는다는 거, 부부 싸움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거. 엄마도 화내기 싫다. 그런데 자꾸만 화가 난다.
왜 그럴까?
엄마가 안 괜찮아서 그렇다.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자신의 마음부터 헤아려야 하는데, 그걸 안 해서다. 엄마가 자신의 마음속 감정을 잘 살피지 못하고 있어서다. 나 자신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얽혀 결국 엄한 데서 화로 뭉뚱그려져 폭발한다.
회피하거나 억압된 감정은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모든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감정 자체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하기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 감정들은 나를 보호해주기도 한다. 감정을 그때그때 잘 알아차려서 공감하고 해소해야 뒷 탈이 없다.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객관화해서 알아야 한다.
엄마의 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숨겨진 감정이 따로 있다. <엄마의 화코칭> 책에서는 우리가 ‘화’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 뒤에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감정이 따로 있다고 한다.
- 피곤함: 종일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피곤함이 쌓인 저녁 시간에 엄마들은 자주 폭발한다.
- 초조함: 특히 아침에 어린이집 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는 아이를 재촉하며 버럭 한다.
- 걱정과 불안: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으면 걱정과 불안으로 소리를 지르게 된다. 위험한 짓을 했을 때도 걱정으로 되려 크게 화를 낸다.
- 아쉬움, 서운함: 예를 들어 남편을 위해 정성을 들여 밥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회식이라는 말에 화를 내게 된다. 진짜 마음은 단란한 저녁식사를 못하게 되어 내심 아쉽고 서운한 것이다.
이외에도 속상함, 억울함, 낮아진 자존감, 우울함, 질투, 약 오름, 분함, 불쾌감 등의 다양한 감정이 화로 표현될 것이다. 엄마는 피곤해서 화내고, 초조해서 화내고, 걱정돼서 화내고, 서운해서 화낸다. 자주 화내는 엄마는 여러 이유들로 지치고 아프고 힘든 엄마이다. 보살핌과 관심이 더 필요한 것뿐, 나쁜 엄마여서가 아니니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분명 이렇게 자주 화내지 않았다.
그동안은 반성이 아니라 자신을 비난만 하고 그쳤기 때문에 더 나아지지 않았던 거다. 자책과 후회는 자신을 더욱 괴롭게 만들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자신의 진짜 감정과 화를 낸 이유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자.
나는 아이와 남편에게 화를 낼 때 머릿속에서 내가 말하는 게 들린다.
‘아, 내가 지금 빨리 애들 재우고 드라마 보고 싶은 욕심에 초조해서 화내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남편에게 포옹을 받고 싶은데 남편이 폰만 봐서 서운함에 짜증 내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아이가 음료수를 쏟은 것에 예민하구나.’
‘아, 내가 지금 아이가 아픈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 억울하구나.’
감정을 객관화하지 않으면 그 소용돌이 속에 영문도 모른 채 휩쓸리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파악해도 분노는 그렇게 쉽게 치솟지 않는다. 화내지 않고도 말할 수 있게 된다. 아이를 잘 돌보려 하기 전에 한발 물러서서 엄마 자신의 마음부터 읽어보자. 그래야 아이와 남편에게 괜한 화를 내고 자괴감에 빠지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감정 객관화가 잘되면, 타인의 감정 객관화도 잘 이루어진다. 아이나 남편이 화낼 때 그 속의 진짜 감정과 이유가 금방 객관화가 되면서 화가 잘 안 난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진흙탕 싸움으로 크게 번지지 않는다. )
엄마는 철저히 감정 노동자이다. 화를 내긴 해도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조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않다. 아직은 아이가 엄마의 마음까지 헤아려줄 수는 없다. 감정조절과 표현에 대해 아직 서툴다. 나는 종종 내가 아이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어렸을 때도 집에만 오면 엄마한테 온갖 짜증을 다 냈었다. 엄마가 제일 만만해서, 엄마가 제일 편해서, 엄마가 받아줄 걸 아니까. 엄마에게 분출하고 나면 한결 괜찮아졌다.
엄마라는 사람은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보듬어 주게 된다. 그러면서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안게 된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아이가 조금만 짜증 내도 쉽게 욱하게 된다. 아이는 그 나이대의 본능대로 행동할 뿐인데도 말 드릅게 안 듣는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남편이 뭘 해도 거슬리고 불만스럽다. 마음에 해소되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로 꽉 차서 여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육아를 하면서 화를 안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이와 남편은 절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엄마라면 결국 무슨 일로든 화가 나게 된다. 그래도 화의 횟수를 줄일 수 있고, 화의 정도를 줄일 수 있고, 화를 조절할 수 있다. 그 방법은 엄마의 마음을 먼저 읽는 것. 엄마의 화 속에 숨겨진 감정들을 찾아서 이해해 주고 해소시켜주자. 엄마는 스스로에게 늘 물어야 한다. 내 마음이 지금 괜찮은지.
아이와 남편에게 화내고 후회하는 일만 줄어도 육아는 훨씬 편해진다. 화 내 봤자 돌아오는 건 더 큰 화다. 엄마가 화내기 시작하면 아이도 화내고 남편도 화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엄마 자격 운운하며 내 자존감을 갉아먹지 말자.
대신 내 마음부터 잘 챙기자. 피곤한 건지, 불안한 건지, 서운한 건지, 우울한 건지 늘 잘 살펴보자. 엄마의 마음이 괜찮으면 엄마의 목소리와 말투부터 다르게 나간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에는 사랑이 묻어있다. 아이들과 남편도 느낀다. 따뜻한 엄마 앞에서는 가족들 모두가 훨씬 마음이 누그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