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번아웃
결혼하고 아이만 낳으면 누구나 부모가 되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부모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는 묵살당하고, 부모가 되는 행복과 기쁨에 대해서만 비추어진다. 부모의 희생 같은건 애초에 당연한 것처럼. ’남들 다 하는건데 나만 유난스러운건가?’ 하며 속앓이를 하기도 한다. 힘든 것을 마음껏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엄마의 역할은 끝이 없다. 아이의 신체적인 면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면도 끊임없이 돌보아야 한다.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헤아려 줘야 하고, 잠재능력을 끄집어 내줘야 한다. 아이가 한명보다 많다면 각 아이의 기질과 특성에 맞추어 대해야 되니 정말 정신없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육아는 내가 죽어야 끝이 난다.”라고 했는데, 웃프게도 맞는 말이다. 아이 하나를 낳는 순간부터 우리는 평생 매여 있어야 한다. 엄마의 역할은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다 커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때조차도 애가 쓰인다. 친정 엄마는 애 둘 엄마가 된 나를 아직도 걱정해준다. 나도 엄마지만 엄마가 아직 필요하다.
작은 물컵을 잠깐 들고 있는 것은 힘들지 않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 계속해서 들고 있다면, 작은 물컵의 무게가 점점 크게 느껴져 온몸이 경직되고 저리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육아도 마찬가지로 만성스트레스로 힘들다. 엄마는 작고 사소해보이는 일로 끊임없이 시달린다. 집 치울 스트레스 부터 시작해서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안 좋은 일을 늘 걱정하고, 아이의 발달과 교육에 대해서도 잘하고 있는지 불안하다. 남편과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어렵다. 할 일에 치여 몸도 마음도 푹 쉬는 시간이 없으니 스트레스를 해소할 여유도 부족하다.
육아는 장거리 마라톤이다. 시작부터 페이스조절 못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금방 지쳐 나가 떨어져버린다. 아이 낳기 전에 그 설렘, 아이에게 듬뿍 사랑해주고 싶던 마음이 오래오래 지속되려면 열심히 하지 않아야 한다. 엄마에게 가장 편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잘하려고 최선을 다하다가 내 맘처럼 잘되지 않을 때의 좌절감은 결국 엄마를 괴롭게 만든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결국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될 것이다. 힘을 주는게 아니라 힘을 빼야 더 유연하게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래 할 수 있다.
엄마가 다 해야 한다는 생각, 아이에게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 나보다 아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 노력했는데 모두 헛수고 같다는 생각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만성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엄마의 번아웃을 초래한다. 엄마 역할을 열심히 할수록 육아번아웃은 더 쉽게 온다.
1970년대 허버트 프로이덴버거와 크리스티나 매슬라크 두 심리학자는 ‘번아웃’을 초기에 연구한 사람들이었다. 동시대에 두사람은 번아웃에 대해 각각 다른 연구를 진행했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허버트 프로이덴버거: 번아웃의 원인을 개별적인 것으로 봄. 애쓰고 정성을 많이 쏟은 사람이 기진맥진 해진 것. 의욕이 매우 강한 사람일수록, 더 헌신한 사람일수록 좌절과 낙담, 소진되는 느낌에 취약해짐. 자신이 쏟은 노력이 아무런 결과도 맺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그러해짐.
-크리스티나 매슬라크: 번아웃의 원인을 개인적 요소뿐 아니라 특정 직업 조건에서도 기인한다고 봄. ‘돌보는 직종’은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함. 다른 사람을 돕는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경향이 압도적으로 높음을 증명함.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마는 이 두 학자가 말한 것이 모두 해당된다. 아이들을 돌보는 직종이면서, 잘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번아웃이 온 엄마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무기력해진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짜증이 솟구친다. 갑작스럽게 분노가 폭발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쓰기도 한다. 작은 일도 버거워서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아이를 방임하기도 한다. 너무 잘 하려다가 더 큰 부작용을 떠안는 꼴이다. 아니, 꼭 잘하려고 하지 않았더라도 과중한 엄마의 역할에 피로가 계속 쌓이면 번아웃이 올 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 엄마의 특성상 번아웃이 와도 아이들을 진짜 방임하기는 쉽지 않다. 장난감을 집어 던져 분노를 표출할 지언정, 지쳐 쓰러져도 눈물을 흘리며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보호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스스로가 보호하고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크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엄마들은 최선을 다해 항상 아이보다 자신을 먼저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육아번아웃이 왔을 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나에게는 큰 산처럼 느껴졌다. 두 아이가 밥을 먹으며 흘리는 것이 차마 보기가 힘들어 ‘밥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손 한번 씻으려다 시작된 물장난이 결국은 목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기저귀 갈고 옷 갈아 입히고 하며 도망가는 아이와 실랑이하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아이가 우는 소리에 머리가 아팠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바이러스성 질환에 취약해져서 툭하면 장염에 잘 걸렸다.
한번만 일어나는 일이면 괜찮다. 하루만 일어나는 일이면 괜찮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365일 내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 작은 일이 큰 스트레스가 되어 번아웃을 부를 수 있다.
번아웃이 오지 않으면 제일 좋겠지만, 다행히 번아웃 증후군은 왔다고 해서 계속되지는 않는다. 벗어나고자 하면 끝이 있다. 번아웃이 왔다면 일단 주변에 심각성을 호소하며 도움부터 요청하자. 엄마가 제일 중요하다.
육아는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노력한다고 항상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결코 엄마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아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결국 이렇게 밖에 안 되다니..’ 이런 생각이 들면서 최선을 다해서 나를 갈아 넣을수록 더 좌절하게 된다.
육아의 세계는 노력=성과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아이 마음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엄마가 헌신하고 희생한다고 해서 아이가 잘 자란다는 보장도, 아이가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다. 엄마의 생활이 육아에 너무 몰입되어 있으면 아이에게 기대치가 높아져 여러모로 결과가 좋지 않다. 고통스럽게 매여 있을지, 행복하게 매여 있을지는 내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 내 육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생각을 바꿔보자.
내가 소신있는 육아 (엄마가 편한 육아)를 하도록 도움을 준 책들을 무언가를 하면 좋다거나, 꼭 해야한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 육아서들은 내 머릿속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반대로 더 애쓰는 것이 아닌, 덜 애쓰는 것이 답이라고 해주는 책들은 나의 진짜 힘듦을 덜어주었고, 육아의 부담을 줄여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내가 숨이 쉬어지게 되고, 그에 따라 아이가 더 사랑스러워졌다.
잘하려는 엄마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해야하는 것, 해주고 싶은 것에 얽매이면 번아웃에 취약해진다.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키워보길 바란다. 아이러니 하게도 아무 생각 없이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육아가 조금 편해지면서 아이가 예뻐보인다. 그제서야 사랑스러운 아이가 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