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기록에 대한 고찰
예전부터 기록 남기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때 친한친구4명이 모여 교환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중학교때도 공부방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쓰기도 하고, 맨날 보는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편지 주고받는걸 좋아했다. 고등학교때 처음사귄 남자친구와 '러브 다큐멘터리'라고 이름 붙여 커플기록장도 글로 남기고자 했다.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친한 친구 사귄것도 옛날폰으로 장문의 문자를 보내면서 시작되었고, 그 시절 싸이월드에 기록을 남기고 그 이후로는 블로그에 또 기록을 남겼다. 지금은 인스타랑 브런치, 그리고 휴대폰에 메모, 영상과 사진들이 넘친다.
좋았던 순간, 풍경, 깨달았던 것들이 그냥 지나가버리는게 싫나보다. 자꾸 사진을 찍고 싶고, 그때의 감정을 담고 싶고, 누군가에게 (허공에라도) 말하고 싶나보다.
나는 왜 자꾸 기록해서 남기고 싶어할까.
한가지 이유는 기록을 통해 무엇이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게 된다는 점이 좋아서가 아닐까 싶다.
나를 둘러싼 당연한것들이 매일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면서 조금 더 특별해진다.
매일 만나는 하늘도, 반짝이는 물빛도,
두 아이도, 고양이도, 남편도, 나도, 내 감정도.
조금 더 애정이 생기고 조금 더 고맙고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인다.
가끔 생기는 미운마음도, 삐뚫어진 화같은 감정도
글로 쓰다보면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게 되면서
그 속에 숨겨진 것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새로운 돌파구가 보이기도 한다.
또 한가지 기록의 이유는
내가 지나왔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내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노라고.
내 모든 행적에는 다 의미가 있었노라고.
뭐했다고 벌써 하루가 다가버렸지?
뭐했다고 벌써 10월달이지?
가끔씩 훅 치고 들어오는 이런 허무함에서
내가 쉽게 벗어나는 방법이
일상의 기록들을 남기는 것이다.
몸이 안좋아서 하루종일 누워있던 어제도
아무것도 안한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 맛있는 빵을 행복하게 먹었고
저녁에 해질녘 멋진 가을 하늘을 감상하며
오롯한 휴식을 취한 재충전의 날이 되는 것이다.
또한 내 기록을 통해 누군가가 도움과 영감을 받는다면
더없이 기쁜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록을 좋아하는 내 글은 어떤 글일까.
글을 엄청 재밌게 쓰는 편은 아니다.
위트가 넘치지도 않는다.
이과생이라 문학적 표현도 별로 없다.
그래도 스스로 괜찮다 싶다.
누구 말 맞다나 내가 글로 세상을 구할 것도 아닌데,
아주 멋진 글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내 글에는 특별한 강점이 없지만
글을 쓰는 나는 강점이 있다.
나의 강점은 흘러가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는 것, 경험을 좋아해서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 지구과학 교사, 애둘 엄마, 고양이 집사, 취미는 서핑, 그림책 작가, 김해라는 작고 예쁜 도시에 사는 사람. 나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이 다양한 이야기가 되어 나의 글이 된다.
남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기 보다
허접하더라도 내가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가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결국은 앞으로도 어떤식으로든
계속 기록을 남길 것 같다.
무엇이든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면 쉬워진다.
오늘도 망설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생각을
글로 써서 여기저기 올린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기록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얼마나 기적같은 일들의 연속인지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