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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Dec 11. 2023

각자의 화낼 사정

주말내내 부산에서 열리는 마우스 북페어에 참여했다.

남편이 흔쾌히 허락해주었고

나는 기쁘면서도 마냥 기쁠수는 없었다.

'혼자서 애둘을 보겠다고?? 힘들텐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친정엄마라도 부를까 했는데

남편은 장모님 먼길 오시는게 더 마음 불편하다면서

알아서 한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토요일 아침8시쯤 집을 나서 저녁 8시쯤 돌아왔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듯,

웃으며 반겨주었다.

 남편이 젤 먼저 하는 말.

"오늘 윤우 엉덩이 많이 때렸어."


나는 속으로 아들이 걱정 되는게 아니라

남편이 더 걱정 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니까 더 마음이 쓰였다.

키즈카페에서 3시간을 놀고 겨우 돌아와서

잠시 쉬는 사이, 새핸드크림을 다 짜서

방과 머리에 범벅이 되있었다고 했다.


알지알지. 절대 한눈 못파는거.

잠시라도 눈떼면 바로 사고 치는거.

외출 후 바닥난 체력으로 그걸 수습하려면

화가나는거.


나는 일요일에도 아침 8시쯤 나섰고

북페어 중간 쯤 남편에게 동영상이 하나 카톡으로 왔다.

아이들의 육탄전이었다.

공원에 공놀이 하러 갔는데

주고 받으며 같이 노는게 아직 어려운 둘째가

자꾸 공을 독차지 하려고 해서

결국은 누나와 공하나를 두고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웃기고 짠하고 ~~

오늘은 얼른 집에 돌아가야겠다 싶었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오늘도 화를 많이 냈다고 했다.

오늘은 잠깐도 아빠를 놔두질 못하고

계속 상호작용하며 놀아달라고 떼쓰는 첫째에게.


알지알지.

애둘을 혼자서 하루종일 보는게 얼마나 피곤한데.

잠깐 쉬려고 해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투정과 징징거림을 듣다 듣다보면

결국 화가 나는거.


우리는 오00 선생님은 분명 애를 혼자 오롯이 안키워본 사람일거라 말했고,

오00 선생님의 이론대로 육아를 하거나 화를 안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도 엄마들이 애들한테 왜 화내는지 알겠다고 했고

나도 엄마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화를 낼 수 밖에 없어질거라 말했다. 화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엄마가 있을 뿐.  


남편은 온가족 저녁식사로 짜파게티를 끓여주며

바깥일 하고 온사람 많이 먹으라고 해줬다.

우리는 이번 주말 내내 역할을 체인지 하며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사실은 밖에서 에너지를 다 쏟고 집에오니

빨리 누워 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방전된 상태로 겨우 애들 재울 준비를 하고

휴대폰이나 만지작 거리다 잠들어버렸다.

육퇴 후 나만의 시간따위 애 재우면서 하루가 끝나버려

생산적인 일은 더이상 도무지 할 수 가 없었다.

눈뜨자마자 다시 일터로 가는 남편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이 어질러진 집,

월요일 아침 모두가 집에서 나가고  

오전 내내 설거지 빨래 청소 정리정돈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 상황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이래라 저래라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

각자의 힘든 사정이 있고, 각자의 화낼 사정이 있을 뿐.


화내지 않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을 SNS에서 본다고

굳이 자괴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집은 애들이 잠을 잘 잔다거나, 위험한 짓을 유별나게 안한다거나, 혼자서 잘 논다거나, 외동 일 수도 있고, 성향이 순할 수도 있고, 도와줄 이가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외식이나 배달의 비용이 부담스러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주방일에 써야할 수도 있고, 결국 맞벌이를 해야만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덜 건강할 수도 있고, 부모가 덜 건강할 수도 있고.  

아이의 기질 부터 경제적, 체력적 상황 까지 다 다른데 이상적이지 않은 어찌보면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는

되는대로 식의 우리집 육아 상황에 스스로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는 것.  

남의 조언을 참고 정도는 할 수 있어도 현실의 나와 비교하며 굳이 마음에 새길 필요는 없다는 것.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구도 나를 비판할 수 없고

나도 누군가를 비판할 수 없다.

또한 나조차 나를 비난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육아를 하는 부부사이에도

각자의 고충이 있을 건데

서로 자기가 힘든것만 내세우며 싸울 필요가 없다.

조금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의 수고스러움을 인정해주고

서로를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토닥토닥 해주는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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