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버스정류장

5. 살인 사건에 휘말리다.

by 나무

날카로운 소리에 놀란 윤수는 눈을 번쩍 뜬다. 둔탁한 무언가가 도마를 내리 찍는 기척, 잭이 어젯밤 침대 위에서 뒹굴었던 동양인 여자를 죽이고 칼로 시체를 토막 낸다. 몸에서 팔을 분리하고 다리를 톱질하듯이 칼을 놀린다. 목을 자르기 위해 칼을 머리 위까지 들었다가 아래로 힘껏 내리 꽂는다. 공포 영화의 말미처럼 시체는 산산 조각이 나고 내장은 검은색 봉투에 담겨, 캐리어에 넣고 지퍼를 올린 후 끌고 가는 장면이, 온몸의 신경세포가 촉각을 세우면서 눈꺼풀을 누르던 잠이 달아났다. 뒤꿈치를 든 발걸음으로 부엌에 다다르자 프라이팬을 돌리는 준성의 등이 보인다. 준성의 등에서 현이 생각났다. 현이 설거지를 할 때 몰래 다가가서 안았던 촉각이 맴돈다. 준성이 뒤통수로 말을 건다.

-누나, 일어났어요?

-어.

프라이팬에 계란 두 개를 깬 준성 옆에서 윤수는 커피 메이커로 커피를 내린다. 빨간색과 파란색 머그컵에다가 커피를 담으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윤수를 준성이 바라본다. 윤수는 두 개의 머그컵을 식탁 위에 올린다. 준성이 계란 프라이를 하나씩 밥 위에 올린다. 네모난 스팸햄을 뜨거운 물에 데친 다음 계란 옷을 입혀 노릇하게 익힌다. 준성이 냄비에서 국자로 푼 북엇국을 내민다.

-속은 괜찮으세요?

-응.

말은 준성에게 하면서 윤수는 두 손으로 머그잔을 잡고 현관문을 응시한다. 준성은 윤수 손에서 파란색 머그잔의 빼앗아 커피를 벌컥거리며 쉼 없이 마신다. 윤수는 놀라며 준성이 든 파란색 머그컵에 손을 뻗자, 준성이 큰 키로 고개를 돌리며 제압해 버린다.

-안돼. 그건 현이 꺼야.

준성은 다 마신 후, 찬물이 든 물 컵을 다 마신다. 윤수는 준성을 노려보자 준성이 능청스럽게 웃는다.

-누나가 해준 커피는 맛있네요. 잘 먹었습니다. 누나도 얼른 북엇국 드세요.

준성이 윤수의 숟가락의 손잡이를 내밀며 권하자 윤수는 마지못해 숟가락을 잡는다. 준성은 정수기에 다시 찬물을 받아 마신다. 윤수의 눈가의 물기가 촉촉하다.

-현이 줄려고 일부러 현이 좋아하는 커피 집에서 사 왔는데

윤수가 눈물 한 방울을 뺨으로 흘러내리자 준성은 당황한다.

-누나 미안해요. 다시는 안 마실게요. 울지 마요.

윤수가 서럽게 큰소리로 울자 준성은 휴지를 가져와서 윤수에게 건넨다.

-진짜 미안해요. 머그컵에 손 안 될게요.

윤수는 한 동안 목 놓아 울었다.


준성이 설거지를 하고 여운이 가시지 않은 윤수는 거실 소파에서 앉아서 훌쩍이고 있다. 준성은 설거지를 마치자 윤수에게 다가간다.

-괜찮으세요?

윤수는 준성을 쳐다보다가 다시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준성이 윤수와 마주 보며 거실 테이블 위에 앉는다.

-미안해요. 죄송해요 누나.

준성의 손이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자, 윤수는 진정되었는지 울음을 삼킨다.

-토요일이라 저 빵집 안 가요. 사과의 뜻으로 점심에 맛있는 것 사겠습니다.

윤수는 현관문을 바라본다. 현이 그래서 못 오는구나, 토요일에는 회사를 안 가니깐, 일주일 동안 피곤했던 업무를 벗어나 쉴 수 있으니깐, 오늘은 안 오겠구나, 전화도 안 오겠구나. 기대를 접는다.

준성이 빨갛게 부은 윤수의 눈가에 손을 덴다.

-울지 마요. 마음 아프게, 다음에는 절대 안 울릴게요. 만약 울일 있으면 저 앞에서만 울어야 해요.

윤수의 눈동자가 한 바퀴 돌아 준성을 바라본다. 준성에 눈에는 자신의 모습이 검은 눈동자에 담긴 윤수의 얼굴이 보인다. 준성은 아린 가슴을 쓸어내린다.

준성이 방에 들어간 사이에 윤수는 텔레비전을 본다. 뉴스에는 이태원에서 주한미군 비비탄 총격 사건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앞에서 민간인에게 공기총을 난사한 사건은 두 명의 미군이 각자 상대방에게 죄를 떠넘기면서 이야기가 커지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초록색 바탕에 흰색으로 쓰여 있는 이태원 3번 출구가 클로즈업되어서 잡힌다. 윤수는 침울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끈다.

준성은 윤수에게 다가간다.

-오전에 잭이 저희 집에 와도 될까요? 누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제 방에서 불어 발음 연습만 하려고요. 쉬~ 발음이 좀 어렵네요.

윤수는 잭이라는 이름에 표정이 굳는다.

-잭이 우리 집에 온다고? 2층에 사는 백인?

-예 그분 맞아요.

-안돼!

윤수는 큰소리로 외친다. 준성은 잠시 망설이듯 미간을 긁적거린다.

-그럼 커피숍에 나가서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준성이 등을 돌리자 윤수는 황급히 소파에서 일어선다.

-그게 아니라, 위험해, 잭이 위험하다고, 어제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가는 걸 봤어. 그 사람 분명 살인마야. 그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

준성은 웃는다.

-누나가 제 걱정도 해주네요. 근데 잭이 왜 살인마예요? 영어 강사고 좋은 대학도 나오고 3개 국어도 하고요. 저한테는 늘 친절한데요.

-잭이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나올 때 방이 어지럽고 바닥에 붉은 핏자국이 있었어.

준성이 잠시 고민을 한다.

-사람 많은 커피숍에서 만날 건데 무슨 일이 있으려고요. 약속은 했으니, 한번 만나고 생각하겠습니다. 지금 불어가 너무 어렵네요.

준성이 한쪽 팔을 들어 힘을 주어 근육을 보여준다. 윤수는 잭의 희번득한 미소를 지으며, 큰 칼로 준성의 목을 내리치는 상상을 하니 섬뜩하다. 준성은 방에서 외투와 불어책, 펜을 가지고 나온다.

-저 다녀올게요.

준성이 나가자 윤수는 방에 들어가서 외투를 든다. 준성이 1층에서 잭을 만나서 같이 걸어가는 장면을 계단 사이 창문에서 보고 서둘러 내려간다. 준성과 잭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 얼굴을 보며 웃는다. 윤수는 옷에 달린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뒤따라간다. 준성과 잭이 큰 도로변에 한 커피숍에 자리를 잡자, 윤수도 황급히 들어가서 얼굴을 가린다. 거리를 떨어져 있지만 이른 아침에 사람이 없어 공기를 타고 간간이 그들의 음성이 넘나들어 도착한다.

-아, 브, 쓰, 끄, 드, 으, 프

준성이 발음을 하나씩 읽자 잭이 고개를 젓는다.

-에프는 두 입술이 만나면 No, 밑 입술 물고, 프~

잭이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프~’라는 발음을 반복해서 들러주자 준성이 따라서 한다.

-OK, Next

준성이 다시 하나씩 발음한다.

-쥬, 아슈~

-No, No, 아 쉬~, 슈 No, 바람소리만 쉬~

잭이 다시 ‘쉬~’라고 하는데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아들에게 ‘쉬~해야지’ 하는 음성을 반복해서 낸다.

-OK, Next

-이, 쥬

-No, No 쥬이를 quick 하게

준성은 계속 ‘쥬이’를 반복한다. 따뜻한 열기를 훈훈하게 데우는 커피숍에 있으려니 윤수의 눈꺼풀이 무겁게 짓누른다. 얼마나 지났는지 윤수를 흔드는 손길에 눈을 뜬다. 앞에는 20대 초중반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윤수에게 커피를 건넨다.

-손님, 이거 아메리카노인데요.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생얼에 머리는 정돈되지 않고 집에서 굴러 입던 옷에 외투만 걸치는 몰골, 윤수는 호주머니를 뒤진다. 윤수는 지갑과 핸드폰을 놓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많이 만든 거라 버리는 거예요. 그냥 드셔도 돼요.

윤수는 직원의 말을 잘라 먹고 재빠르게 옷에 달린 모자로 얼굴을 가린 후 몸을 숙인 채 커피숍 밖으로 나온다. 시간은 11시 반, 이미 둘은 자리를 뜨고 없었다.

모래가루가 들어간 눈을 비비며, 윤수가 빌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잭이 전화를 하며 내려온다.

-Did the cops come? (경찰이 온 거야?)

-Time is up! We must get off now.(시간 됐어, 우리 지금 떠나야 해.)

윤수를 스치듯이 귓가에 잭의 단어가 꽂힌다.

-a most wanted criminal(지명수배자)

윤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잭이 윤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돈다. 그의 입술에 묻은 기름이 사악하게 번쩍인다. 윤수는 몸을 돌려 재빠르게 빌라로 뛰어간다. 준성이 빌라 입구에 서있자, 윤수는 준성의 팔을 잡고 깊은 숨을 몰아쉰다.

-누나 어디 갔었어요?

-잭이, 잭이 말이야.

준성은 내리막길을 바라본다.

-잭이요? 20분 전에 헤어졌는데요. 아마 2층에 있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 잭이 지명 수배자라네

준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진짜요? 어디서 들으셨어요?

-아까 오면서 마주쳤는데, 경찰이 왔고 우리는 떠나야 하고 지명수배자라는 단어를 말하더라고. 진짜 살인범 인가 봐.

준성은 윤수의 손을 잡는다.

-걱정 마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나온 김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준성의 손에 이끌려 윤수는 왔던 길을 내려간다.

-나 무서운데 집에 가면 안 될까?

준성은 손을 꽉 쥔다.

-제가 옆에 있잖아요, 바로 요 앞에서 먹어요.

준성이 가리키는 한식 밥집에 들어간다. 아주머니가 건네준 메뉴판을 보던 준성은 메뉴판에 적힌 불고기를 가리킨다.

-불고기 2인분 주세요. 그리고 미역국도 많이 가져다주시고요.

아줌마가 미역국을 가져오자 준성은 미역국에다 밥을 말아 먹는다. 윤수는 미역국을 한 모금 떠서 입에 머금는다.

-정말 잭 위험한 사람이야. 그 사람 조심해야 해, 내가 미국에 있었을 때, 멀쩡하고 신사적인 백인 사람이 총기 들고 무차별 사람을 죽이고 사제폭탄 만들어 한꺼번에 죽인다니깐.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인들한테 열등감이 있어서 성형수술 많이 하잖아. 그래서 백인이라면 무조건 좋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니야. 사람 본성은 다 똑같아.

준성이 입안에 있는 미역국을 삼킨다.

-오늘 생일이에요.

-조심해야 해, 먹을 거에 뭐 탔을 수도 있고......, 어?

-오늘 제 생일이에요.

준성은 윤수를 흘끗 보고는 밥을 먹는다. 윤수는 준성의 머리 가마를 본다.

-생일이야? 오늘? 미리 말하지, 몰랐네.

-미안해요. 아침에,

-아니야. 오늘 오빠 못 올 거야. 그리고 보니 미역국도 못 끓어 줬네. 나 미역국 잘 끓이는데.

-괜찮아요.

윤수는 주머니를 뒤져 지갑이 없다는 걸 다시 상기시킨다. 아주머니가 불고기를 담은 냄비를 화로 가운데에 올려놓는다.

-익혀서 나온 거니깐 끓어서 먹어.

약간 반말 투에 억양이 있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화로의 불 세기 조절하는 스위치를 내리고 불을 킨다. 윤수가 어설픈 젓가락질로 큰 불고기 덩어리와 사투를 벌이는데 준성은 보고도 못 본체 한다.


윤성이 거실 소파에 벌러덩 눕는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없어요.

준성은 말이 끝나자마자 쉼 없이 바로 대답한다.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없어요.

윤수는 소파에서 일어나 지갑을 찾는다.

-혹시 내 지갑 못 봤니?

준성이 텔레비전 옆에 있는 지갑을 가리킨다.

-오~ 고마워 땡큐~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윤수가 현관문 밖으로 나서자 준성은 베란다에서 빌라 입구를 지켜본다. 잭이 빌라로 들어온다. 윤수는 낯선 동양인 여자와 들어오는 잭에게 놀라서 뒷걸음질 치며,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3층으로 올라온다. 잭은 윤수의 존재를 알아 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옆에 있는 동양인 여자와 즐거운 얘기를 나누며, 현관문의 비밀 번호를 누른다. 윤수는 한숨을 내쉰다.

준성은 윤수가 걱정되어 현관문을 여는데, 윤수는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윤수는 빌라에서 빠른 발걸음으로 빵집에 가서 케이크를 고른다. 케이크 옆에 무알콜 샴페인과 와인이 보인다. 윤수가 얼굴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카드를 내밀자, 계산원이 당황하여 빵집 주변을 살핀다. 빵집을 나서면서 수상한 사람들을 살피며, 손에는 와인 한 병과 케이크를 들고 뛴다. 고개를 숙인 윤수가 종종 걸음으로 앞서가던 뚱뚱한 흑인 아저씨를 제친다.

크게 쉼 호흡을 하고 빠른 걸음으로 2층 계단을 지나칠 때였다. 2층 문이 열리고 잭이 커다란 캐리어를 문 앞에 세운다. 아까 들어갔던 동양인 여자가 벌써 토막 살해되어 저기 안에 분리되어 포장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칼에 묻은 피를 긴 혀로 핥는 잭의 모습에, 두려운 공포에 짓눌린 발걸음이 문틈 안 잭의 집안을 살핀다. 들고 있던 케이크와 와인을 내려놓고 서둘러 캐리어의 지퍼를 연다. 아직 토막 살해당하기 전이기를, 기절한 상태면 엎고라도 뛰어 줄 심산으로, 캐리어를 여는 순간 나올 인체의 장기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 방안에서 고함이 들린다.

-a crazy bitch (미친년)

성난 잭이 윤수의 팔목을 잡고 집 안으로 당긴다. 놀란 윤수는 뒷걸음질 치지만 힘에 밀려서 그의 집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소리를 지른다. 잭이 캐리어를 집안으로 옮기고 문을 잠근다.

-You are a murderer! (당신은 살인자야!)

윤수의 말을 들은 방안에 있는 3자가 문을 열고 나온다. 아까 본 동양인 여자다.

-What is it? (무슨 일이야?)

동양인 여자는 윤수가 거실에 있자 놀라는 눈치다. 잭은 동양인 여자에게 말한다.

-She tried to open my carrier.(내 캐리어를 열어보려고 했어)

동양인 여자가 윤수를 노려보자, 윤수는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I've seen the wrong. Sorry.(잘못 봤네요. 미안해요)

윤수는 항복이라는 의미로 손바닥이 보이도록 두 손을 들자, 잭은 문을 열고 나가라는 손짓을 한다.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경찰입니다. 문 여세요.

잭이 윤수를 노려본다.

-You just get out of my house.(당장 내 집에서 꺼져)

윤수가 문을 열자 경찰들이 집안으로 들이 닥친다. 윤수가 설명할 새도 없이 잭은 경찰들에게 포위되었다. 준성은 윤수의 손목을 잡아 당겨서 가슴팍에 안는다. 경찰들이 큰 캐리어의 지퍼를 열려고 하자 윤수는 말린다.

-제가 착각했어요. 살인자 아니에요.

지퍼는 바닥끝에 닿자 캐리어 문이 열린다. 캐리어 안에는 오만원이 몇십 개의 다발로 채워져 있다. 잭은 불쾌한 감정을 들어낸다.

-It is My money. Do't touch it. Everybody get out of my house. (제 돈입니다. 건들지 마세요. 다들 제 집에서 나가요.)

경찰은 윤수에게 얼굴을 돌린다.

-전 동양인 여자분이 살인 당하신줄 알고 놀랐어요. 제가 착각했네요. 죄송합니다.

윤수는 허리를 크게 굽혀서 인사를 한다. 잭을 포박하고 있던 경찰들은 잭의 손을 놓아주고 집 밖으로 나온다.

-잠시 만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뚱보 흑인 아저씨가 한국말을 한다.

-잭이 클럽에서 마약 팔고 있어요. 여기요.

흑인 아저씨가 경찰에게 건넨 건 네모난 종이 쪼가리다. 경찰이 네모난 종이를 끝을 뜯어서 나온 흰색 가루를 살핀다. 윤수는 경찰이 잭뿐만 아니라 흑인 아저씨도 의심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때 준성이 끼어든다.

-이분 말씀이 맞아요. 아까 아침에 잭과 커피숍에 갔는데, 제가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이상한 흰색 가루를 커피에 넣는 걸 봤습니다. 현재 그 커피는 커피숍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경찰관은 준성에게 갔던 시선을 흑인 아저씨로 눈을 돌린다.

-당신 이름이 뭐지?

-지미

-당신 하는 일은?

지미는 가슴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낸다.

-잭이 웨이터로 일하는 클럽 맞은 편에 있는 게이바 지배인입니다. 클럽에 갔던 저희 바 손님으로부터 받은 종이입니다. 웨이터가 몰래 손님들에게 필로폰을 투여한 뒤 재 판매하는 방법으로 돈을 챙긴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경찰관들의 눈빛이 빛난다.

-잭 경찰서까지 동행해 주시죠.

잭의 양 옆에 경찰들이 붙잡는 바람에 몸을 비트는 약간의 반항 후, 경찰차에 몸을 싣는다. 잭의 동양인 여자 친구와 지미는 잭 뒤를 따라 다음 경찰차에 오른다.

-거기 아가씨, 아가씨 남자친구분도 따라 오세요.

윤수와 준성은 경찰관의 뒤를 따라 내려간다.


경찰서 안, 잭이 손님에게 마약을 주고받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경찰서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있다. 잭의 두 손은 포박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다. 잭 맞은편, 잭을 심문하는 경찰관이 소리 지른다.

-이름이 뭐라고요?

-잭 크로우

자판을 두들기던 경찰관이 다시 묻는다.

-외국인 등록번호 말해 보세요.

-I don't know number(번호를 모르겠어요.)

-빨리 협조하세요.

윤수가 경찰관에게 말한다.

-제가 정확히 들은 건 아닌데요. 지명수배자 일지도 몰라요.

한국말이 서툴다며 영어를 쓰던 잭이 고개를 돌려 윤수를 노려보자 준성이 윤수의 손목을 잡고 의자에 앉힌다. 경찰관이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는 소리가 끝나고, 지명수배자 명단을 확인하던 경찰이 잭과 닮은 얼굴을 찾는다.

-매튜 퀘이드, 마약 판매한 경력이 있네.

잭이 놀라는 표정을 짓자 경찰관은 확신한다. 잭의 달콤한 말에 속아 클럽에서 미끼 역할을 했던 동양인 여자 친구도 잭과 함께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잭과 동양인 여자친구는 마약 성분을 투여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 조사를 위해 머리카락과 소변을 채취한 뒤 구치소에 구금 조치되었다.

경찰관이 고개를 숙여, 지미, 윤수, 준성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돌아가 보셔도 좋습니다.

잭이 발악을 하듯 악을 쓰며 소리 지른다.

-You'll see. Someday I'll get even with you.(두고 봐. 언젠가 복수할 거야)

경찰관은 문을 열고 셋을 경찰서 밖으로 내보낸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마약 조직이더라고요. 한국 내에서 행동파 역할을 했던 거 같습니다. 미국에서 송치 요청을 한 상태라 한국에서 재판이 끝나는 데로 미국으로 가서 재판을 받을 겁니다. 불법 마약 유통은 형량이 길어서 보복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도 클럽 내에서 암암리에 마약을 판매하고 있는 마약조직을 검거하려고 수사 중이었는데 감사합니다. 저희 경찰관이 집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20대 초반의 경찰관이 경찰차 시동을 건다.


경찰차는 윤수의 빌라 앞에 멈추고, 보조석에 탔던 지미와 뒷좌석에 탔던 준성과 윤수가 내린다. 경찰차의 뒤꽁무니가 사라지자 지미는 맞은편 빌라로 들어간다. 윤수가 지미에게 소리친다.

-괜찮으세요?

-I'm OK

지미가 가죽잠바 속 허리춤에 차고 있는 총을 슬쩍 보여주고 빌라 안으로 사라진다. 윤수는 준성의 몸에 기대며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른다. 아까 사놓은 케이크는 경찰관들의 발에 무참히 짓밟혀 있다. 다행히 와인은 남아 있다.

-나가서 다시 사 와야겠다.

준성이 윤수를 붙잡는다.

-괜찮아요.

-그래도 너 생일인데 케이크는 있어야지. 누나가 얼른 사가지고 올게.

-어제저녁에 이미 사놨어요. 냉장고 안에 있어요.

-그래? 준비성 철저하네. 와인이랑 먹자.


윤수와 준성은 식탁에 앉아 고구마 케이크를 먹는다. 와인을 물 컵에 따른 후 건배한다.

-잭이 설마 어떻게 하겠어?

-조심하세요. 그래도......,

-그럼 그 커피? 커피숍에 보관해 둔 거야?

-벌써 경찰 손에 넘어 갔겠죠. 커피를 알바생에 전달하면서 경찰 오면 주라고 얘기했으니, 그리고.....,

-그리고?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당연하지. 누난데,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잖아. 정말 잊을 수 없는 생일이네.

케이크를 포크로 먹다가 윤수가 한 움큼 손으로 떼서 준성 얼굴에 묻힌다. 준성은 찜찜해하면서도 묻은 케이크를 코끝에 둔다.

-너 말이야.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꼭 어른 같아. 듬직해.

-감사합니다.

-그리고 뭐랄까나, 멋있어. 아까 경찰관들이 잭에 집에 들어온 순간 네가 내 손목 잡았을 때, 그리고 특히 요리할 때 뒷모습

준수가 얼굴을 붉힌다.

-내가 24살 때는 뭐해야 할지 몰랐거든, 부모님 소원이 명문대 들어가는 거라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막상 부모님도 안 계시고, 그냥 남들이 다니니깐 대학 다녔지, 너는 하고 싶은 것도 명확하고 프랑스에 요리 배우러 가겠다며, 아르바이트도......, 불어 공부하는 거 보면 놀랬어.

준성이 미소 짓는다.

-누나도 멋지잖아요. 미국 유학까지 다녀오시고,

윤수가 와인을 비우자 준성이 와인병을 눕혀서 컵을 채운다.

-경영학에 관심 없어. 현 때문에 따라 간 거야. 미국.

준성의 얼굴이 굳는다. 일순간의 적막이 흐른다.

-남자친구 이름이 현이예요?

윤수가 활짝 웃는다.

-응, 김현, 멋있고 근사하고 그런 사람.

준성의 뛰는 심장에 소금을 뿌린 듯 쓰리다.

-아직도 제가 동생이에요?

윤수가 컵을 들다가 다시 식탁 위에 내리고 준성을 바라보자 준성이 말을 잇는다.

-제가 남자로는 안 보여요?

윤수가 눈알을 돌린다.

-네가 남자는 남자지, 여자는 아니잖아.

준성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윤수가 준성의 굳어진 표정을 바라본다.

-혹시 취한 거야?

윤수가 준성의 컵에 와인을 따르자 준성이 한잔을 비운다.

-더 주세요. 누나

윤수는 한잔 더 컵에 와인을 따르자 준성은 한잔을 비운다.

-누나 더 주세요.

-너 취했어. 그만 먹어.

준성은 윤수의 손에 있는 와인병을 뺏어서 컵에 채운 뒤 한잔을 비운다. 윤수가 준성 손에 들어간 와인병을 뺏는다. 준성이 힘으로 와인병을 가져오자 윤수가 일어나서 두 손으로 와인 병을 잡는다.

-너 너무 많이 먹었어.

준성이 와인병을 천천히 식탁 위에 올려놓자 윤수가 잽싸게 와인병을 잡는다. 준성이 와인병 위에 오른 윤수의 손을 잡는다. 술에 취한 탓에 얼굴이 벌겋게 익은 준성의 손은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누나, 잊지 마요. 제가 누나 손잡았어요. 그것만 언제든지 기억해 줘요.

준성의 손이 의자 아래로 떨어지고 식탁 위로 몸을 굽힌다. 윤수는 준성의 의자를 빼고 몸을 일으킨다.

-여기서 자면 안 돼, 일어나.

준성의 몸이 윤수의 어깨 위로 덮친다. 윤수는 거의 끌다시피 방으로 데려가서 눕힌다. 이불도 하나 없는 준성을 방바닥에 눕힌다. 윤수는 본인의 방에 들어가 장롱을 열어 여벌의 이불을 꺼낸다. 거기 안에 현의 베개가 있다.

-현이 배게를 안 가져갔나?

현이 쓰는 베개를 가져다가 준성의 목을 기댄 후 준성의 몸 위에 현이 쓰던 이불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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