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는 무대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께도, 그 그저께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8시가 넘어간다. 공원의 기타리스트는 오지 않는다. 다른 공원으로 공연 장소를 옮겼거나 개인적 사정이 생겨서 공연을 중단한 듯싶다. 혹시나 싶어서 공원을 떠나지 못하고 애꿎은 허리 돌리는 운동 기구만 반복한다. 9시가 넘어가고 하늘은 짙게 어둠이 깔린다. 가로수 전등 아래, 멀리서 두 명의 기타리스트의 윤곽이 보인다.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이에게 반가움이 느껴진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는 동갑인 친구일 가능성이 크다. 서로 반말하는 게 들리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음을 맞추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한 명이 틀리면 다른 한 명이 음을 잡아준다.
뒷자리에 앉은 파랑색 추리닝을 입은 아주머니께서는 관객석에 자주 보이신다. 큰 결심을 하셨는지 무대 옆으로 성큼성큼 내려가서 신청 곡 란에 무언가를 기재하신다. 아주머니가 다시 자리로 올라오자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 읽는다.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신청하셨습니다. 저희가 가사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같이 불러 주실 수 있으시죠?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네’라고 외친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 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 내리는 못 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랑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 버리기 못 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_김광석
아주머니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잊기 어려워 묵혀둔 감정들을 노래에 섞는다. 노래를 부르는 덤덤한 목소리가 오히려 애절했다.
대리님과 은영은 지금 제주도에서 재미있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해변가를 드라이브 하고 맛난 음식도 먹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단둘이 오롯이 있는 시간, 그리고 같은 밤을 보내겠지, 침대에 누워서 하늘에 떠 있는 별도 세어 볼 것이다.
언제나 사소한 것도 내게 묻던 대리님의 입은 점점 무거워진다. 둘이 여행 가는 것이 어떻다고 나에게 비밀로 하시는지 모르겠다. 팀장님께 3일 연차를 낸다는 소식을 듣고 별 생각 없이 대리님에게 물었다.
나: 대리님 어디 가세요?
대리님은 당황하면서 다른 곳을 본다.
대리: 그냥, 일이 좀 있어서, 3일만 쉴게
은영이도 내게 말을 아끼는 탓에 둘이 3일 동안 공석이 돼서야 나는 다른 지인을 통해 둘이 여행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괜찮을 거 같았는데, 이제는 돌아오지 못한 강을 넘었다는 느낌이다. 더 이상 대리님을 남자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확인 사살을 당한 느낌, 이제는 정말 남의 남자구나라는 생각, 둘이서 서로 살을 비비며 침대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기에, 이젠 정말 작별이다.
끝이라고 생각하니깐 마음이 서글프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나 혼자 아픈 사랑, 나 혼자 애달픈 사랑 그건, 그도 모르는 맹목적인 기다림에 불가했을 뿐......,
그와 사랑을 한다면 달콤했을 것이다. 손잡은 채 걷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같이 숨 쉬는 공간에 서로 손을 잡는 상상의 끝자락도 노래 속에 묻힌다. 이젠 정말 안녕
진심으로 이별 하고 싶다.
-저기요, 노래 신청 안 하세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 나를 가리키며 나에게 노래를 권한다. 주위를 살핀 뒤 지목의 대상자가 정말 나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말문이 막힌다.
나 : 좋아하는 노래가 없어요.
기타리스트는 어떤 노래를 할지 고민하다가 기타의 첫 음을 내리 친다. 나는 눈을 감고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