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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25. 2022

만년 부장들

친하지는 않지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던 부장님이 계셨다.


같이 아침마다 일본어 그룹 수업도 들었던 적도 있고,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 어느 팀 소속의 부장님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팀도 바뀌고 회사도 바뀌어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였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으셨다는 걸,

그분이 희망퇴직을 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듣는 순간 알았다.     


언제부턴가 연말이 지나면 만년 부장님들이 두세 명씩 사라지신다.

중역이 되기에는 윗 라인이 없고,

어디선가 속하지 못할 높은 직급이라 만년 부장님들은 조금씩 업무에서 떠밀려가시다가 조용히 그만두신다.    

 

그렇다고 만년 부장님들이라고 해서 나이가 많은 건 아니다.

대부분 40대 중반쯤에 부장직을 달아서 50대 초반이 된 사람들이다.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쯤 되는 자녀를 둔,

아직도 가장의 무게 때문에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본인을 외면한 회사 근처를 기웃거리신다.


그렇다 보니 회사를 그만둔 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시거나 부동산 중개소 사장님이 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회사의 협력사나 대리점의 부장으로 가신다.     


몇 년 전 대리점에서 만난 부장님의 협소한 책상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나의 동료들에게 지시하시던 부장님이 나에게 커피를 타서 고객사처럼 대접하시는 것이 불편해서 금세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 또한 몇 년 뒤,

부장님과 같은 자리에 서서 내 후배를 맞이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상상,

그 시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예전에 만났던 법인차량 세차 사장님이 기억이 났다.     


계약직 시절 만났던 50세쯤 보이는 세차 사장님은 입담이 좋으셨다.     

세차 세제로 얼룩진 옷과 단정하지 못한 머리, 온몸에서 났던 땀과 뒤섞인 냄새들,

사장님은 늘 파란색 다마스를 끌고 세차하시러 오시곤 했다.    

 

가격 차이 때문에 다른 업체로 변경하던 마지막 날,     

사장님이 나에게 오래 다니라고, 회사가 쫓아내도 무조건 오래 다니라고 당부하셨다.

본인이 이 회사 다른 계열사에서 신입사원부터 시작해서 과장 때 회사를 그만두었다며,

호기롭게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결국 이런 일을 하고 있다며 웃으셨다.     


그때, 매일 회사에 다니고,

매달 정기적으로 월급이 들어온다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경건한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아부를 상사에게 하고 후회하고

회식 자리에서 과한 술을 마시며 몸이 망가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때 사장님의 씁쓸한 얼굴을 떠올리며,

회사를 향한 분을 삭이고 멍하니 모니터를 보며 버티고 있다.  

   

점점 정년까지 일하는 건 꿈에 가깝다.


퇴사라는 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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