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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0. 2023

9센티미터 구두

20대에 호기롭게 산 9센티미터 구두는 신발장 맨 위에 있다.

언젠가는 다이어트를 해서 예쁜 원피스를 입고 저 구두를 신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이에 따라 열정은 식고,

자연스럽게 신발장 속에 불편한 구두를 넣어두고 잊어버렸다.     


그 구두를 다시 꺼내어본 건 30대 중반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이나 모든 것을 해내고 싶었다.

내 몸은 예전과 같지 않고

기존에 비해 둔탁했으며

젊은 친구들에 비해 해이해졌다.

그것이 나의 한계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열망에 사로잡혀 나를 불태웠다.

부족한 나를 탓하며, 

도달하지 못한 나를 원망하며,

그것이 나를 위한 일임을 믿고

우직하게 거적때기를 끌고 갔다가 결국 몸이 망가졌다.     


이곳저곳이 탈이 나기 시작하자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나는,

스스로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 과정 중,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한 미련들이, 

좌절감이 되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억지로 끌어올린 과거의 영광을 다시 내려놓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못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새롭게 계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모질게 대했던 나에게,

스스로 미안했다고 악수를 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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