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스탠드 조명 옆, 귓가에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한 여자가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 캐리어에 넣는다. 장롱 문을 열어 옷걸이의 걸린 옷들을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을 털 듯, 세차게 흔들어서 흘러나오는 옷들을 흐트러진 채로 꾹꾹 눌러 담는다.
택시의 헤드라이터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네모 반뜻한 은색 캐리어의 손잡이를 끌자 바닥에 널브러진 옷에 낀 바퀴가 돌지 않는다. 짜증이 오른 여자는 캐리어를 힘으로 들다시피 방문 밖으로 나온다. 거실을 가로지어 보이는 부엌, 싱크대 위 고리에 걸린 빨갛고 파란 머그잔 두 개를 손에 들고 캐리어를 끌다. 현관에 다다라서야 바퀴에 끼인 채 바닥을 쓸고 다니던 흰색 티셔츠가 빠져 나온다.
-Where to, Sir? (어디로 모실까요?)
-Please take me to the airport. (공항으로 가주세요.)
마당 잔디 위, 흔들 의자를 비추던 헤드라이터가 집 밖으로 빠져 나간다. 황량하고 한산한 고속도로 위에 택시 한 대가 시속 120km로 지나간다.
13시간 35분 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착륙시간을 알리는 전광판 불빛이 깜박인다. 초췌한 단발머리 여자는 은색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택시에 오른다.
택시는 올림픽대로를 타고 이태원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