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버스정류장

1. 윤수는 현을, 준성은 윤수를 기억한다.

by 나무

남산타워 아래, 남사평 역으로 가는 길목, 몹시 지친 여자는 이태원 빌라촌 골목길을 은색 캐리어를 끌며 헤맨다. 왼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다 찾은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 함을 기점으로 오른쪽 3번째 건물 앞에 멈춘다. 건물에 오르기 전에 흘긋 본 우편사서함에는 누군가가 빈자리 흔적을 지운 탓에 아무것도 없다. 3층이 전부인 빌라 꼭대기 층,은색 캐리어를 끌고 올라간다. 2년전에 죽은 탓에 버려진 화분이 뒹구는 익숙한 공간, 문을 열쇠로 비틀어서 열어젖혔다. 불룩 튀어나온 철 덩어리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여기를 떠난 지 1년 반, 한 여자는 현관에다가 캐리어를 던지고 슬리퍼를 신고 거실 안을 살핀다. 거미줄과 먼지가 보이자 목에서 컬컬한 냄새가 삼켜진다.

거실 바닥에 사람 발자국 만한 먼지들의 쓸림, 누군가 왔다간 흔적이 있다. 소파 위에 오른 낯선 검정 스포츠 가방과 양쪽으로 메는 가방을 살펴본다. 가방 지퍼를 열자 자동면도기와 칫솔, 커다란 추리닝 바지, 남성용으로 짐작할 만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윤수는 김현을 생각한다. 오래된 연인, 수의 20대의 처음과 끝에 다다르는 사람이자 친오빠처럼 각별한 현을 떠올린다. 윤수의 덜렁이는 심장은 현이 이 집에 돌아 올 가능성을 잊어버린다. 덜커덩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 열쇠가 비틀리면서 혈관이 수축되어 머리로 가는 산소를 가로막는다. 문이 열리고 현이 들어온다.

윤수는 그의 앞으로 달려가서 다시 눈을 비빈다.


-누나? 윤수 누나 맞죠?


먼지로 가득한 거실에 햇빛이 산란되어 낯선 남자의 눈과 입술만을 뿌옇게 비춘다. 윤수는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난다. 이태원은 강간, 마약, 사기, 범죄가 들끓는 곳, 며칠 전에도 방화로 의심되는 불이 났고 옛날에도 강간 미수범들이 먹잇감을 찾아 빌라촌을 뒤진다는 애기가 담 넘어 흘러 들어오곤 했다. 윤수의 눈앞에 20대 건장한 낯선 남자가 윤수를 아는 척 한다. 윤수는 겁에 질러 방 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잠근다.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는 발자취가 지면으로 전달되고 방문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던 윤수가 핸드폰과 캐리어를 현관에 두고 온 사실을 기억한다. 낯선 남자의 발걸음이 문 앞에 멈춘다.


-수 누나 저에요. 준성이요.


윤수는 기억을 되돌려 본다. 아버지의 친구의 아들, 자신과는 3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던 고3 겨울방학 때의 윤수는 준성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너가 여기 왜 왔어?


윤수는 방문 너머의 준성이라는 사람에게 질문한다.


-가출했습니다. 아버지가 요리 배우는 걸 반대하 셔서요.


준성의 아버지, 아버지의 친구, 윤수가 홀로 서울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태원 빌라를 구입하고 다달이 적지 않는 현금을 윤수의 명의 통장으로 넣어 주신 분. 윤수가 서울 생활에 부족함 없도록 한 달에 한 번씩 전화 주시던 준성의 아버지 덕분에 윤수는 미국 유학도 갈 수 있었다. 윤수는 준성의 아버지 음성으로 전해 들은 준성을 안다.


-반대한다고 집에를 안가? 아버지를 설득시키든지 해서 허락을 받아야지. 이렇게 나온다고 아저씨가 찬성하는 건 아니잖아.


수의 떨리는 손길이 질타하는 목소리로 흡수된다.


-집에는 못 갑니다. 유명한 요리사 돼서 허락받아야죠. 그래서 프랑스 르꼬르동블루에 갈 겁니다. 입학이 8월이라 돈도 모으고 불어 배우려고 여기 왔습니다. 누나 문 열어 주면 안 돼요? 제가 설명할게요.


윤수는 서서히 문고리를 돌린 후, 문을 살짝 열고 눈만 빠끔히 내밀어 준성을 본다. 윤수의 머리가 그의 어깨에 닿을 듯한 키와 벌어진 어깨, 9년 전 울고 있는 윤수를 달래던 중학생은 남자 어른이 되어 있었다.


-너가 정말 준성이 맞아?

-예.


변성기가 지난 걸쭉한 음색이 귓가를 친다. 빛에 반사되어 흐릿하게 보이는 얼굴에 어린 시절 준성의 흔적들을 찾는다. 방문 앞으로 나오자, 준성의 손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두 손을 모아 거실에 있는 소파를 가리킨다. 윤수가 소파에 앉자 잠식된 먼지가 위로 올라온다. 윤수는 헛기침을 몇 번 반복하고, 준성은 맞은편 소파에 엉거주춤하게 앉는다. 고요함, 창밖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깔깔거리는 음색이 적막 속을 파고든다. 준성이 헛기침을 두 번 한다.


-3개월만 여기 있을 예정입니다. 프랑스에 가서 9개월만 요리 배울 겁니다. 저희 아버지께는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여기는 어떻게 알았지?


윤수의 차가움이 중저음의 준성의 음성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기억나세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여기로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보냈죠. 누나도 크리스마스 때 카드를 저에게 보내 주셨고요. 아! 열쇠는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걸 가져 왔습니다. 전 누나가 미국 유학 가서 내년에 돌아온다고 들어서......, 제가 전화도 드렸는데......, 혹시 제가 보낸 멜 못 보셨나요?


당황한 준성의 동공이 흔들린다. 윤수는 며칠 전에 핸드폰 액정에 서너 번 찍힌 발신제한 번호와 어지럽혔던 침대 이불이 동시에 떠오른다. 윤수의 얼 빠진 표정을 본 준성은 슬쩍 말을 돌린다.


-여기 청소해야겠죠. 먼지가 많이 쌓였네요.


준성은 소파에서 일어나서 화장실 문과 방문을 열어 청소 도구를 찾는다. 준성은 거실을 간간이 비추던 유리창 커튼을 젖힌다. 남산타워에 그늘 진 이태원의 오후 햇살이 거실 안으로 들어온다. 유리창을 열자, 선선한 바람이 안으로 유입되어 먼지를 쓸어낸다. 준성은 자신의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윤수의 어깨를 덮는다.


-감기 걸려요.


준성의 손길이 지나간 유리창 너머에는 산에 가린 남산타워의 밑동이 보인다.


준성은 윤수 방에 있던 이불의 먼지를 터는 것을 끝으로 유리창 문을 닫는다. 준성은 짐을 풀고, 시차적 응이 안된 윤수는 고정된 채 소파에 앉아 있다.


-수 누나, 저 방 열쇠는 어디 있나요?


준성의 목소리에 윤수는 잠에서 깬 듯 눈을 비빈다.


-정말 3개월 만이야? 딱 3개월?

-예, 8월에는 한국을 떠날 겁니다. 누나는요?


준성은 공을 윤수에게 던졌다.


-나도......, 뭐.......,


준성의 눈매는 쑥스러워하면서 입은 크게 웃는다.


-누나랑 인연이 있네요. 어떻게 이렇게 다시 만나는지, 누나 못 보고 프랑스 가게 될까 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네요. 반갑습니다. 저 많이 컸죠. 중학교 때는 누나보다 키가 작았는데, 고등학교 때 무려 20센티나 컸죠.


윤수는 준성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까까머리 중학생, 윤수를 맴돌던 그 아이의 시선, 윤수가 음식을 넘기지 못하자 걱정스러워하던 그 아이의 눈망울만 기억에 남겨 있다.

윤수는 무심하게 준성의 눈동자를 한동안 응시하자 귀가 빨개진 준성은 시선을 먼 곳으로 이동한다.


-밥 먹어야죠? 제가 요리할게요.


준성은 부엌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살핀 후, 냉장고와 냉동고 문을 열더니 한숨을 내쉰다. 썰렁한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의 뚜껑 속 냄새를 맡은 후 고개를 돌린다. 준성은 잘 정돈된 가방 속에서 다른 잠바를 꺼내어 걸친 후, 현관에서 윤수의 짐을 거실로 옮기며 신발을 신고는 문 밖으로 사라진다. 윤수는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 서랍에 있는 열쇠로 작은 방 문을 연다. 먼지가 수북한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고 현이 가져가지 못한 옷 몇 벌과 책 두 권이 바닥에 놓여 있다. 윤수는 배게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조그마한 창문을 연다. 창문 너머의 쓸쓸한 기온이 케케 묵은 온도와 뒤섞인다. 창밖에 보이는 작은 빌라들 사이, 그 안에서 걸어 나오는 이방인들이 빌라의 샛길을 채운다. 저 멀리서 신이 난 듯 걸음을 재촉하는 준성의 머리꼭지가 눈에 들어온다.

윤수는 현관에서 방으로 캐리어를 끌자, 바퀴에 묻은 오물이 길을 만든다. 쇠가 부딪치는 둔탁한 음성이 잠금장치를 풀고 지퍼를 내린다. 티셔츠는 구겨져 있고 바지는 주름져 있다. 끈적거리는 화장품 샘플들이 뒤섞여 있고 아이라이너의 뚜껑은 어디 갔는지 희색 와이셔츠에 검은 줄무늬를 그려 놓았다. 빨간색과 파란색 머그컵 두 잔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부엌에서 칼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도마와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방으로 들어온다.

윤수는 옷장에 옷을 한 벌씩 접어 넣다가 따끔 거리는 손끝을 보니 피가 동그랗게 서려있다. 눈물이 고인다. 커다란 돌멩이처럼 굳은 마음속 한편이 송곳으로 찌른 듯이 따끔거린다.


-누나 밥 다 됐습니다. 어서 와서 드세요.


윤수는 붉은 피를 휴지로 닦아내고 눈가에 얹은 물기를 손등으로 훔친다.


-누나 맛있는 된장찌개입니다~


준성의 목소리가 끝날쯤 윤수는 식탁 앞에 앉는다. 준성은 된장찌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뜨거운지 엄지, 검지 손가락이 귓불을 만진다.


-누나 맛있게 드셔야 합니다. 짜잔~


준성은 배고픈지 밥을 크게 한 숟갈 퍼서 입안에 구겨 넣어 먹는다. 윤수는 젓가락으로 밥알을 집다가 포기하고 내려놓는다. 준성은 곁눈질로 윤수의 안색을 살핀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


윤수는 고개를 젓는다.


-입맛이 없어서.


준성은 아직 씹지도 않은 밥알을 삼킨다.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먹고, 밥맛이 없으면, 물 말아서 먹고, 하여간 먹어야 살죠. 된장 국물만이라도 드셔 보세요.


준성은 밥그릇 옆에 놓인 수저를 집어 손잡이를 윤수 앞에 내민다. 윤수는 준성의 손가락을 피해 손잡이를 잡는다. 윤수가 된장찌개를 입가에 가져가는 동안 준성은 윤수의 수저 행방을 눈길로 쫒는다.


-어때요?


준성이 말을 건네자 윤수는 수저를 내려놓는다.


-맛있네.

-‘맛있네’가 뭐예요. 이럴 때는 엄청 맛있다~ 하면서 계속 먹어야죠.


준성은 채근하면서 자신의 숟가락으로 된장찌개 속 큼지막한 두부를 윤수의 밥그릇 위에 올린다.

마치 윤수가 알던 예전의 현처럼, 윤수의 음식 투정을 걱정하던 현, 밥 꼭꼭 씹어 먹으라는 당부와 함께 머리카락을 쓸어주던 그가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가 단둘이 밥을 세 번씩이나 먹는다는 게 무슨 의미 인지 알아? 서로 삶의 눈높이를 맞춰보겠다는 거지, 돌려 말하면 나 지금 너랑 사귀고 싶다는 의미인 거야.’

말을 하고도 쑥스러워하던 현의 음성이 귓가를 맴돈다.

윤수는 세수를 끝낸 뒤 화장실 불을 끄고 준성은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소매를 피며 부엌에서 나온다.


-누나, 여기 방 열쇠는 찾았어요?


윤수는 형광등을 등진 준성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 검은 눈썹에 쌍꺼풀 없는 눈, 선하게 생긴 이목구비를 살핀다.


-어, 없어.


준성은 방문 앞에서 머리를 긁적인다.


-저, 여기 사용해도 되는 거죠?


준성이 윤수를 내려다본다. 준성의 눈동자가 부딪치자 윤수는 고개를 돌린다.


-어, 그래.


준성도 애꿎은 거실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거실이 좁아서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뜨뜻한 아랫목이 최고라고 하셨거든요. 오늘은 소파에서 잘게요. 내일 열쇠 수리공을 불러야죠.


윤수가 방으로 들어가자 준성이 고개를 숙인다.


-누나 안녕히 주무세요. 그리고 아버지께 모른 척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수가 방문을 닫고 손잡이에 튀어나온 동그란 구멍을 안으로 밀어 넣자 잠금장치가 움직인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침대에 눕는다. 오랜 여정으로 깊은 꿈, 깊은 잠을 잔다. 꿈속에서 만큼은 울지 않기를......, 눈가가 촉촉이 베개 속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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