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전봇대에 매달린 너와 나
똑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린다. 단발 머리 끝자락이 부스스하게 뻗친 채, 추리닝을 입은 차림으로 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잠긴 방문을 연다. 눈앞에 정장을 입은 현이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서있다. 중후한 현의 목소리가 수에게 들린다.
-언제 왔어?
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현이 맞다. 수는 두 팔을 뻗어 현의 가슴팍에 안기며 눈물을 어리다.
-어제 왔어요. 오빠 보고 싶었어요.
현의 가슴팍에 안긴 수를 애정 없는 눈길로 떼어 내고 손목에 찬 시계를 본다.
-벌써 출근 시간이네. 다음에 또 올게.
수는 현의 팔을 잡는다.
-언제요? 언제 와요? 오늘 저녁에 와요?
현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자 수는 주저앉아서 현의 다리를 붙잡는다.
-그럼 언제 와요?
현은 수에게 묶인 다리를 빼낸다. 마치 옷에 더러운 오물이 묻은 것처럼 손으로 바지춤을 털어낸다.
-때가 되면 올게.
현이 현관문에서 수가 선물한 구두를 신고 쇼핑백을 들고 나간다. 수는 땅바닥에 앉은 채로 현의 뒷모습을 그린다. 수는 방 안 침대에 눕는다.
-누나 일어나요.
준성은 윤수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누나 밥 다 됐어요.
윤수는 현이 신발 신는 뒷모습을 그린다. 침대 밖으로 몸을 일으킨 후, 준성의 팔꿈치를 스치며 현관 앞에 선다. 있어야 할 현의 검정 구두가 보이지 않는다. 준성이 윤수를 따라 거실로 나온다.
-누나, 밥은 저쪽에 있어요.
눈동자가 풀린 윤수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지, 뒤를 돌아서 준성을 스치듯이 지나친 후,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눕는다. 준성은 윤수가 잠든 것을 본 뒤 식탁에 앉는다. 흘끗 앞을 보며 온기가 남은 된장찌개를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식사를 마친 준성은 윤수의 밥그릇의 밥을 압력솥에 넣는다. 준성이 현관문을 나선 뒤에도 윤수는 깊은 수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오후 2시쯤 윤수의 침대 위로 오른 강한 남쪽 햇살에 눈살을 찌푸린다. 퉁퉁 부어버린 눈을 비비며 책상 위에 올려진 머그컵 2개를 유심히 바라본다가, 질겁하며 방에서 뛰어 나와 부엌 선반에 있는 커피메이커에 물을 채운다. 서랍을 뒤지던 윤수는 원두와 거름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갑을 든 채 현관문을 연다. 집 문을 잠근 후, 계단 손잡이를 잡고 내려가다 백인 남자를 본다. 마치 피렌체에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상 같은 날카로운 얼굴, 금색 머리에 눈알이 파랗고 피부가 A4 용지와 맞먹을 정도로 하얀 남자, 옆에 팔짱 낀 동양인 여자가 코맹맹이 소리와 입술을 내민다.
-허니~ 알라뷰~
동양인 여자는 일본 여자 인지 한국 여자 인지 분별되지 않지만 고유의 엑센트 억양과 R 발음 때문에 한국 여자라고 추측이 든다. 계단을 내려오던 윤수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백인 남자와 동양인 여자는 윤수를 올려다본다.
-옷이 저게 뭐야.
윤수는 당혹함에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머리 상태를 만진다. 어제 된장국을 먹다가 흘린 추리닝 바지에 머리는 폭탄을 맞은 상태다. 뒤를 돌아서 허겁지겁 3층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백인 남자의 영어가 들린다.
-Are you nuts? She was wearing mismatched shoes(미친 거 아니야, 신발이 짝짝이야.)
윤수는 계단을 올라가던 발을 멈추자 한쪽 발에는 윤수의 단화가 다른 쪽 발에는 화장실에서 싣는 슬리퍼가 걸려 있었다.
윤수는 당혹스러운 손으로 열쇠를 간신히 구멍에 넣고 돌린다. 집 안의 온기로 반팔에 노출된 팔꿈치에 닭살들이 쏟아져 나온다. 윤수는 신발을 정리 후 거실을 지나칠 때,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꾸륵 꾸르르~ 꾸륵 꾸르르~
부엌에 커피메이커에서 뜨겁게 데워진 물이 빈 원두 통을 지나 투명 글라스에 담기는 소리였다. 커피메이커 스위치를 내리고 전원 코드를 뽑았다. 눈앞이 깜깜해진 윤수는 한참을 이마를 짚고 어지러워한다.
윤수는 옷을 갈아입은 후, 신발을 맞추어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2층에 다다를 쯤 백인 남자가 캐리어를 들고 문을 열며 나온다. 윤수는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가자, 백인 남자는 윤수를 보지 못하고 빌라 밖으로 나간다. 윤수는 백인 남자가 계단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계단 손잡이 사이로 훔쳐본다.
빌라 옆에 또 다른 빌라들이 즐비한 골목길, 빌라의 대문을 열자 전봇대에 걸린 검은 전선이 사방을 잇고 있다. 옆집 빌라에서 나온 뚱뚱한 흑인 아저씨가 검은 선글라스로 눈의 초점을 가리고, 오른쪽 골목길에서 나온 여자가 빠른 걸음을 재촉하다가 빵집 앞에서 만난 백인 남자와 뒤 돌아오는 길에 윤수와 눈이 마주친다. 팔짱을 낀 채 행복해하는 표정, 사랑에 빠진 눈동자가 옆에 있는 남자의 콧등을 할퀸다. 전봇대에 붙여진 A4 용지에는 시츄 종류인 에밀리라는 개를 찾는 문구가 적혀 있다. 5층짜리 아파트 앞을 서성이던 중동아저씨는 윤수의 뒤태에 눈길을 보낸다. 낯선이의 시선을 피해 윤수는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반대편에서 오는 초록색 마을버스가 나타나자 그도 사라지고 없다. 골목 끝자락에서 오른쪽으로 돌자 8차선 도로가 나오고 육교가 눈에 들어온다.
왼쪽 끝자락에는 남산타워의 꼭대기가 오른쪽에는 주한미군 기지가 있다. 벽돌담 위에 뾰족한 철사를 빙빙 감아,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을 격리시키고, 한국 군인들이 흰색 벽돌담을 방위한다. 남사평역에서 왼쪽으로 꺾자 이태원을 알리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커피점과 음식점과 화장품점, 곳곳에서 들리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에둘린다. 작은 모래 알갱이들로 흩뿌린 날씨가 얼굴을 부딪치자 매끄럽지 못한 윤수의 피부가 따갑게 마른다. 윤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편의점에서 원두 가루를 찾는다. 없다. 배고픔을 감추지 못하고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각각 두 손이 잡는다.
현이 이태원에 오는 날이면 수는 그와 함께 가던 커피숍이 있었다. 원두 향이 맛있고 달달한 분위기, 투명한 유리벽 모서리에 있는 기둥은 하얀 페인트칠을 했고 바닥, 의자, 식탁, 계산대, 심지어 웨이터의 의상들도 하얗다. 마치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눈이 뒤집어 쓴 것처럼, 클럽의 요란한 사운드가 가득한 이태원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순수했다. 현은 그 카페에 갈 때마다 그런 말을 했다.
‘마치 알에서 깨어나기 전, 안도감이 느껴져’
그게 무슨 말이었을까? 현은 몇 달 후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윤수는 떠나가는 현에게 하고 싶던 질문마저 할 수 없었다.
윤수는 가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도 존재 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아니면 아마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천칠백 원입니다. 저기요.
대학생쯤 보이는 20대 초반의 남자가 계산대에서 윤수에게 짜증을 내자, 윤수는 그제야 지갑을 찾는다. 지갑이 없어진 사실을 안 윤수는 알바생의 인상이 구겨지기 직전, 편의점 밖으로 나온다.
뿌옇게 황사가 눈앞을 가로막고 모래 가루가 촉감을 후빈다. ‘아 맞다. 여기는 이태원이지.’, 요즘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둥 투덜거리며 걷던 윤수는 길을 되짚어 봐도 지갑이 나오지 않자, 눈 안에 신경 세포까지 과열되기 시작했다. 빌라에 다다르자 윤수는 뛰어서 계단을 밟는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부여잡고 현관문에 다다르자 문이 열려있다. 주머니에서 땡그랑 거리는 열쇠, 새벽에 본 현의 뒷모습, 윤수는 거친 숨결을 가라앉히며 문을 연다.
드르릉~
열쇠수리공이 작은방 문을 열고, 그 옆에 준성이 서있다. 준성은 윤수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현관 앞에서 반긴다.
-문도 안 잠그고 다녀요? 엄청 위험해요. 다음에도 문 안 잠그고 밖에 나가시면 혼냅니다.
준성의 타박에 윤수는 현을 찾던 눈길을 내려놓는다. 준성은 코끝과 볼이 빨개진 윤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투박한 커다란 손으로 윤수의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춥죠. 방에 들어가서 몸 좀 녹이세요. 수리가 끝나면 제가 처리할게요.
윤수는 준성의 말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간다. 책상 위, 머그컵 옆에 놓인 지갑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지갑 안 투명한 비닐 안에는 수와 현이 처음 만났던 8년 전 사진이 달려 있다. 커다란 굉음이 끝나고 문이 열린다. 준성이 열쇠수리공에게 값을 지불하는 소리에 윤수는 눈을 감는다.
-누나, 저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어요.
준성은 신나는 듯 떠들고, 윤수는 한 모금 머금고 있던 된장국을 삼킨다.
-누나, 저 불어학원 다니기로 했어요.
준성은 슬그머니 윤수의 눈치를 살핀다.
-누나는 이제 뭐해요?
윤수는 수저를 내려놓는다. 빈속에 먹은 따뜻한 된장국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에 저장된다.
-아직, 계획 없어.
준성은 할 말의 방향을 잃다가 말을 돌린다.
-해밀턴 호텔 뒷 골목 가보셨어요? 거기 음식점 엄청 많죠. 태국, 인도 등 동남아와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음식점도 많아요. 연예인이 운영하는 음식점도 있고요. 거기 한번 가보세요. 이태원에는 이태리 음식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말끝을 흐리는 준성은 윤수의 얼굴을 빤히 본다.
-누나, 누나는 예전이랑 지금이랑 똑같으세요.
9년 전 단발머리 수수했던 윤수의 얼굴을 준성은 떠올린다.
-근데 9년 전이랑 지금이랑 얼굴만 같지 않아요. 뭐랄까?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느낌이 같아요. 누군가를 잃은 느낌......,
준성은 말을 내뱉고는 숨을 들이 마신다.
-농담이에요. 농담, 느낌이 그렇다는 거죠. 그때 누나가 저희 집에 머물면서 며칠 동안 밥을 안 먹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너무 걱정돼서......, 그때도 이렇게 누나 얼굴만 빤히 쳐다봤던 기억이 있네요. 아! 눈사람 기억나세요? 제가 누나 방 창문 앞에서 커다란 눈사람 만들었더니 누나가 웃었잖아요.
준성에 말에 윤수는 기억을 되새김질한다.
-어, 그러네. 눈사람, 어린 애도 아니고 우스꽝스러웠지. 그때 너 감기 심하게 걸렸어.
윤수의 동의에 준성은 신이 나서 말을 잇는다.
-그렇죠. 누나 기억하네요. 전 누나 다 기억해요.
윤수는 준성의 눈웃음에 예전 까까머리 준성이 겹친다.
남한강이 흐르던 기억, 황학산 꼭대기가 하얗게 물들고 논에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던 여주시 산골 마을에 까까머리 준성은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있었다. 뜨끈한 아랫목에서 아버지를 졸라서 받은 최신 게임기에 여념이 없던, 중학교 2학년 준성의 집에 짐가방을 들고 윤수가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알 수 없던 표정, 우수의 젖은 눈, 아무 말없이 밥을 안 먹는 윤수는 이불을 덮어 쓴 채 누워만 지냈다.
눈이 많이 오던 어느 날, 준성이 윤수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나, 눈 와요.’
인형처럼 죽은 시체인 양 반응조차 없는 윤수의 싸늘함에 준성은 방문을 닫았다. 눈이 발목과 무릎 사이만큼 쌓인 집 마당으로 홀로 나섰다. 준성은 윤수의 방 창문 밖에서 발자국을 내며 한참을 서성이다가 두 개의 눈사람을 만들었다. 윤수의 방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준성은 집에 굴러다니는 붉은 실로 입술을 만들고 검은색 매직으로 눈과 코를 만들었다. 하나의 눈사람에는 어머니가 짜신 스웨터를 입히고 어머니가 가장 아끼시는 등산 모자를 씌었다. 다른 눈사람에게는 아버지의 양복을 입히고 넥타이를 맸다. 준성은 윤수의 커튼이 처진 창문을 두드렸다. 추운 날씨에 준성의 코가 빨갛게 익어 가는데도 윤수는 창문의 커튼을 걷지 않았다. 준성은 집으로 들어와 윤수의 방문을 두드렸다.
‘창문 밖에 누나의 엄마 아빠가 오셨어요.’
준성은 윤수가 창문의 커튼을 걷기를 몇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면서 기다렸지만 누워서 천장만 보는 윤수는 이불에서 벗어나지 조차 않았다.
몇시간이 흘렀을까? 준성을 찾는 그의 아버지의 급박한 음성에 윤수가 방문을 연다. 잠옷 차림이던 윤수는 준성의 목소리가 생각나서 집 밖 마당으로 나가윤수의 방 앞 창문으로 갔다. 양복을 입은 눈사람과 스웨터를 입은 눈사람 옆에서 준성은 잠들어 있었다. 윤수는 얼어버린 준성을 꼭 안고 일으켜서 같이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부터 윤수는 밥을 먹었고 준성은 꼬박 사흘을 누워 있었다.
-그때 죽는 줄 알았어요. 눈 오는 하늘에 별이 보였다고요.
준성이 엄살을 부리며 온몸을 부르르 떨자, 윤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누나 웃었다. 웃었죠. 전 봤어요.
윤수는 안 웃는 척, 표정을 정비하고 검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돌리자 준성의 큰손이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귀여워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빨개지는 준성의 귀를 외면한 채 윤수는 숟가락을 들고 크게 밥을 한입 베어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