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곰보, 나와 함께 스리랑카로 온 동기 언니가 사는 곳 근처였다. 언니가 파견된 도시는 그리 유명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네곰보 근처의 도시라고 이야기 해줬어야 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아, 네곰보 근처구나’ 이야기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단원들은 네곰보를 가본 적이 없었다. 공항 근처의 도시여서 스쳐간 적은 있지만 따로 찾아가지는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은 여행을 이곳에서 마무리 하곤 한다. 남은 달러와 여행의 미련을 덜어 내며 스리랑카를 떠나는 곳, 그런 바닷가 마을이다. 쫙 뻗은 도로 끝에 버스스탠드가 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삐까뻔쩍한 버스스탠드의 크기에 감탄하고 주위의 복잡함에 놀라는 그곳, 그곳에서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네곰보는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바닷가 도시이다. 스리랑카는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보물섬이라고 할 정도로 사파이어, 시나몬 등의 자원이 풍부하게 난다. 안타깝게도 보물들은 이곳에 모여 식민지 국가들로 옮겨져 그들의 보물이 되었다. 이렇게 여러 나라에게 고생한 곳이기에 스리랑카지만 또 다른 곳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붓다의 나라 스리랑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교회와 성모상이 많이 있고 건물들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 역사 때문인가 외국인을 보는 그들의 눈빛이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이 멈춰서 ‘칭챙총’ 혹은 ‘치나’ 등의 단어를 내뱉었고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에 화가 났었다. 오랫동안 열려 있었기에 마음에 더 생채기가 난 것일까.
타운에서 조금 걷다보면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 ‘ST MARRY CURCH’가 나온다. 교회의 외관은 유럽여행을 보다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건물이었다. 어쩌면 내가 유럽여행에서 본 건물보다 더 오래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며 농담을 했다. 우리가 간 날은 성금요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를 하는 모습이 절에서 기도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켈라니야 사원에서 뽀야를 맞아 기도하던 이들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맨발로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중얼거리는 모습에서 절실함을 보았다. 침략자가 전해 준 사랑의 종교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수백년이 흐른 지금까지 어떤 느낌으로 남아 있을까,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교회를 빠져 나왔다.
맞은편의 어시장은 비린내가 가득했다. 들어갈까 했지만 점심이 넘은 시간이라 많은 가게들이 문 닫았을 것이라 예상하고 바닷가로 향했다. 예약한 호텔을 찾아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바다를 만나 신이 난 현지인들이 한쪽 바다를 자리 잡고 놀고 있고 그 옆에는 어부들이 일을 마무리가 하고 있었다. 3월 말의 따가운 햇살이 우리를 괴롭혔고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신을 잃기 전 다행히 숙소를 찾았다. 한여름의 더위를 모두 막아 줄 것만 같은 수영장과 시원한 실내가 인상적이었다. 숙소에 잠시 짐을 놓아두고 다시 나와 일식집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자주 먹었던 음식들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스리랑카 바닷가 앞에서 먹는 일본식 음식, 신선한 해산물에 기분이 좋아졌다. 낯선 곳에서도 입맛은 익숙한 것이 좋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바다로 향했다. 호텔 비치에는 외국인이 많았지만 일반 바다에는 현지인이 훨씬 많았다. 사람들은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그리 예쁜 바다색은 아니었지만 시원스럽게 부딪히는 섬나라의 파도가 좋았다. 그래서 계획 없이 옷을 입고 풍덩 빠졌다. 그 옆의 사람들처럼, 축축하게 젖은 옷을 입고 길을 한참 걸어야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바다에 몸을 던진 것을,
생쥐꼴이 되어 그 근처 길을 걷다 옷가게에서 옷을 샀다. 예상치 않은 쇼핑이었지만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찾아 입었다. 원피스를 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2차 물놀이를 했다. 배영을 성공해 기분이 좋았다. 이 여행이 스리랑카에서는 처음이었기에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즐거워하던 때였기도 했기 때문에 더 행복했다. 그렇게 신난 마음으로 밤거리에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거리에는 외국인들과 외국인을 상대하기 위한 현지인들만 남아 있다. 놀러 왔던 현지인들은 밀물 빠지듯 금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외국인과 함께 어슬렁 거리를 걸었다. 빨간 빛이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슬슬 어둠이 하늘을 차지해갔다. 거리에는 바들과 식당이 늘어서 있다. 태국의 ‘카오산 로드’와 같은 분위기 이지만 가게의 수나 인파를 생각하면 그 보다는 훨씬 초라하다. 골목 앞에서 본 랍스터를 파는 식당에 들어갈까 말까 길을 걸으며 고민하다. 가기로 했다.
해변 어느 곳에서나 만날 것 같은 식당, 바깥이 뻥 뚫린 공간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테이블, 그 위에는 노란 빛의 전구가 어둠을 밝히고 있다. 많은 메뉴들이 있었지만 랍스터 하나만 바라 봤다. 밥과 함께 나온 랍스터는 꽤 컸고 우리가 상상과는 달랐지만 맛있었다. 습기 찬 공기 속에서 먹는 시원한 맥주는 동남아 어딘가로 나를 데려갔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일어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을 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동남아 어딘가를 생각했다. 내가 지내고 있는 스리랑카의 도시와는 조금 다른 소란함이 있는 곳, 저녁 늦은 곳까지도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거리여서 그랬나보다. 어둑한 밤에 취기가 올라 잠에 들었다.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 할 에어컨을 틀고서,
사람들이 네곰보가 어떤 도시냐고 물어보면 스리랑카같지 않은 곳, 그래서 좋을 수도 그래서 머무를 가치가 없을 수도 있는 곳, 그래도 한번쯤은 가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