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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신 Dec 02. 2023

위대하고 아름다운 꿈

[단편소설]

        

 M이 말했다.

 인류의 미래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갈 거라고. 다중행성 종이 되거나, 한 행성에 국한된 채로 남아 있다가 결국 멸종하거나.

 그리고 또 말했다.

 자기가 죽기 전에 인류가 화성에 착륙하지 않는다면 매우 실망할 거라고. 

 어느 하루 잠잠할 날이 없는 M의 행적이 나의 평화를 깬다. 재수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이런 말을 마구 지껄이는 M의 나이는 52세. 내 나이의 딱 두 배다. M에 대한 짜증은 잠시 접어둔 채 핸들에 부착된 휴대폰으로 다음 배달 장소를 검색한다. 점심시간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나는 배달원이다. 분초를 다투며 달리느라 위험하지만, 그런대로 할 만하다. 일하기 싫으면 쉬어도 된다는 점이 좋아서 배달원이 되었다(조금만 벌면 되니까). 나도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 직장이라는 안정된 틀 속에서 살고 싶었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안 되는 걸 어쩌라고?

 언제부턴가 나는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 게 좋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은 탓이었다. 지구를 지킨다거나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거대 담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목표였다. M처럼 위대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지 못하는 내 처지가 비참하다거나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각자 타고난 그릇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작은 일에 만족하며 사는 삶이 어때서. 삶이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일 뿐인데. 나는 M처럼 위대해지고 싶지 않았다. 위대한 일은 위대한 사람이 해야 한다. 나는 보통보다 조금 못한 능력을 갖춘 사람일 뿐이었다.

 꼰대들이 나와 내 세대를 씹는다. 요즘 것들은 눈앞의 이익밖에 모른다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배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욕한다. 편한 일만 찾을 뿐만 아니라 책임감이 없다고 욕한다. 그런데 스크린도어나 소스 반죽기에 끼어서 죽은 애들은 모두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죽기 싫다. 그래서 죽자고 달리며 배달하지 않는다. 늦게 가져왔다는 지청구를 듣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정규직이 되어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면 책임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라고.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된 마당에. 마지막 배달이 끝났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전까지 나는 자유다.

 다 했어? 

 종인이 묻는다. 

 하나 남았어. 

 나도.

 집에서 밥 먹자. 도시락은 내가 가져갈게. 먼저 도착하면 방이나 좀 치워 둬.

 나는 집을 향해 방향을 바꾼다.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훨씬 편리한 이동 수단이다. 횡단보도를 타고 길을 건너기도 하고 역주행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저 멀리 종인과 내가 사는 원룸 건물이 보인다. 건평은 좁은데 높이는 높아서 연필을 세워놓은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다. 주차장에 종인의 오토바이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방을 치워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종인보다 먼저 집에서 나왔다. 종인과 나는 라이더라는 직업도 같고 정규직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는 점도 같다.

 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작은 일이 내게 행복감을 준다. 나는 식탁에 유부 샌드위치를 내려놓는다. 음식을 꺼내고, 컵에 물을 따르고, 수저를 놓는데 종인이 들어왔다. 종인은 한 번도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화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닐까 하고 내 마음대로 짐작만 한다. 위대하지는 않지만 나름 아름다운 그 꿈을 종인은 왜 드러내지 않을까. 종인은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서양화를 전공한 종인은 초등학교 방과 후 스쿨에서 그림을 가르쳤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자 일자리를 잃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탄다.

 신메뉴네.

 종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응, 샌드위치 집에서 새로 개발했더라. 맛이 괜찮아.

 네모난 유부초밥? 아, 유부 피에 절반만 초밥을 채우고 위에는 참치, 김치 볶음, 치즈 등 각종 토핑을 채웠구나. 맛있다. 아이디어 좋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왜? 먹는 장사하려고.

 아니, 음식 배달을 하다 보니 진짜 창조적인 일은 요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어.

 직업을 바꿔보든가.

 나는 밥을 좋아하고 종인은 빵을 좋아한다. 유부초밥인지 유부 샌드위치인지 모를 이 메뉴는 우리 둘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씹히는 식감은 밥인데 토핑이나 맛은 샌드위치에 가깝다. 배달을 하다 보니 음식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나 창업을 꿈꾼 적은 없다. 대박난 집도 있지만 문 닫는 가게가 하나둘이 아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겨우 인건비 빠지는 정도라고 한다.

 언젠가 네가 나를 먹여 살리겠다고 했잖아. 그때 엄청 감동받았어. 

 입 안 가득 들어찬 유부초밥을 씹느라 볼을 씰룩이며 종인이 말했다.

 먹여 살린다고 하지 않았어. 먹여 살릴 수도 있다고 했지.

 그 말이 그 말 아냐?

 다르지. 만일의 경우 그럴 수도 있다는 말과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건 다르잖아.

 내가 만일의 경우라는 이면을 고려하지 않은 셈이네.

 왜? 속은 것 같아? 나는 네가 좋은 그림을 그릴 때까지 밀어주고 싶었어. 형을 밀어준 테오 같이. 이건 진심이야.

 테오는 또 어떻게 알아?

 영화를 봤어. 제목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흐보다 동생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어. 고흐가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다가 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그 사람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어. 나도 누군가의 거름이 되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아.

 그래? 나는 그런 생각 한 적 없는데?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일을 하나, 그런 생각만 했지. 내가 그림 그리는 거 엄마 아버지 모두 반대했어. 정 하고 싶으면 자동차 디자인하는 그런 거 하라고 하셨어. 그런데 나는 기계나 부품을 그리는 것보다 풍경을 그리는 게 훨 좋아.

 바다 그림 많더라.

 나는 이상하게 바다가 좋아. 전생에 물고기였나? 하여간 일 년 열두 달 바다만 그리고 싶어. 바다가 보이는 큰 창문이 있는 집에 살면서 비 오는 바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해 뜨는 바다, 해 지는 바다, 그 모든 바다를 그리고 싶다니까. 그런데 둘이 눕기도 벅찬 방에서 살잖아. 하루하루 희망을 잃어가는 느낌이야.

 네 바다는 말이야 보고 있으면 슬퍼져. 파란색이 슬픔을 나타내나?

 아닌데. 파란색은 신뢰, 진보, 평화 이런 의민데?

 그런데 너는 늘 보라색을 섞잖아. 순수한 파랑보다 침착하고 장엄하긴 하지만 뭔가 후퇴하는 느낌이야. 보라색이 섞인 너의 바다와 하늘은 환상적이긴 하나 평화롭지도 않고 발전적이지도 않아. 그래서 슬픈가 봐.

그럴지도 모르지. 나아가고 싶지만 항상 후퇴만 했으니까.

 희망을 잃어가서 그런가? 아니면 멋진 바다를 못 보아서 그런가? 쫌만 기다려. 내가 네 꿈을 이루어 주지. 통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멋진 방을 마련해 주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신없다. 종인이와 나에겐 미래가 없다. 정규직도 아니고 혁신적인 창업자도 아니니까. 우리가 희망을 품지 못하는 게 꼰대들 때문이라고 믿는다. 꼰대들이 젊었을 때는 자리만 지키면 되었다고 한다. 가만히 엎드려 있기만 하면 호봉이 올랐다고 한다. 사무실에 앉아서 주식 시세 난을 들여다보고, 부동산 시세를 살피다 퇴근하면 저절로 월급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월급을 모아서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누릴 건 다 누린 그들이 나와 종인에게 책임감을 가지라며 난리를 친다. 아, 정말 싫다. 미래를 허락하지 않은 꼰대들이 몸서리치게 싫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억대 연봉자 100만 명 시대에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고. 맞다. 억대 연봉자가 100만 명이라고 보도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정규직이다. IMF 사태 이전 모든 꼰대들이 속했다는 정규직. 지금은 대한민국 근로자의 절반만 정규직이다. 임금 근로자가 인구의 절반을 넘는데 둘 중 하나만 정규직이다. 정규직에 속할 확률 50%, 속하지 못할 확률 50%. 절반의 확률이라면 꽤 높은 것 같지만 아빠 찬스도 없고, 엄마 찬스도 없고, 공부를 아주 잘하지도 못했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내게는 진입 불가능한 확률이다. 나는 몇 번 이력서를 내 보다가 이내 포기했다. 꼰대들이여 내가 M처럼 위대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말기를.     

 위대한 M이 말했다. 지구를 버려야 한다고. 지구를 버리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종족이 멸종할 거라고. M은 스스럼없이 인류의 멸종이 가깝다고 떠들어댄다. 멸종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건 공포다. M의 꿈은 내게 불안감을 준다. 그리고 강요한다. 지구 탈출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너는 루저라고. M이 출시한 10일짜리 왕복 우주여행 경비는 5,500만 달러(700억 원)다. 700억이라는 돈은 내가 루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M이 자기가 죽기 전에 반드시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단언했기에 M의 나이의 딱 절반인 나는 지구 멸망의 순간과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 

 지구도 별이니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렵다. 대 멸망의 순간을 보게 될까 봐. 지구가 핏빛으로 변할까 봐. 핏빛으로 물든 세상을 볼 자신이 없다. 내가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하다. 멸망의 순간이 오면 나는 다른 모든 생명보다 먼저 죽겠다는 꿈을 꾼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꿈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았던 존재라 하더라도 피 흘리며 죽어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이렇게 결심하고 나니 머릿속이 맑아진다. M이 개발한 우주선을 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화성으로 이사하는 비용이 얼마가 될지 아직 모른다. 생각은 물론이고 상상조차 한 적 없는 돈을 달라고 하겠지. M이 원하는 건 결국 돈일 테니까. M은 죽을 때 자신이 번 돈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블랙홀이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별이 생기고 사라지는 영상을 보면서도 결코 꾸지 못했던 꿈. 지구를 떠나는 꿈. 어쩌라고? 평범에도 못 미치는 부족한 나인데. 

 그래서 나는 M의 꿈만큼 위대하지는 않지만 내 작은 꿈을 사랑하기로 했다. 꿈이 작을수록 행복에 이르는 길도 가까워진다. 돈이 없으니 어차피 M의 우주선을 못 탈 테지만 못 타는 것과 안 타는 것은 다르다. 안 타는 건 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타지 않기로 한다. 내 결정에 만족한다. 조금 행복해진다. M의 말은 부자들에게만 강박을 줄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화성으로 가야 하나 하는 고민 따위와 함께.

 오늘 백화점 앞에서 밤새울 거야.

 커피를 마시며 내가 말했다.

 새 운동화 나오는 날이구나. 너를 이해하기 힘들어. 

 종인이 말한다.

 나는 너를 이해하는데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너는 여전히 좋은 그림을 그리고야 말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내게는 그런 꿈이 없으니까. 이해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나는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것만 탐내기로 했어. 

 베란다에는 종인이 그리다 만 그림이 있다. 문을 열면 송진 향이 섞인 물감 냄새가 방 안까지 들어온다. 나는 자연적이면서 화학적인 그 냄새를 좋아한다. 냄새가 종인의 꿈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꿈이란 꾸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깨야 하니까.

 집은 못 사도 운동화 한 켤레는 살 수 있잖아. 상자를 열 때의 두근거림과 발을 꼬옥 감싸는 느낌이 좋아. 가슴이 설레거든.

 백화점이 문을 열자마자 달려들어 가려고 밤샌다는 거지? 

 알면서 왜 물어.

 종인이 뭐라고 하건 말건, 요즘 젊은것들은 큰일이라고 꼰대들이 욕을 하건 말건 나는 백화점 앞에서 밤을 지새울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이 많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 전날 밤부터 백화점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고생스럽긴 하지만 박스를 풀고, 운동화를 꺼내고, 끈을 매는 순간의 짜릿함이면 충분하다. 더 큰 무엇을 원하지 않는다.

 작년에는 점퍼를 샀다. 명품 점퍼를 입고 음식 배달을 하러 간다. 식당 주인도, 음식을 받는 손님도 내 점퍼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지만 상관없다. 이게 바로 가치 소비다. 나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주는 소비를 한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명품 커피 한 잔을 위해 거액을 지출하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만 행복하면 된다. 나만의 작은 행복을 오롯이 누리고 싶다.

 M의 행복과 내 행복의 질과 양이 다르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M은 하루 17시간 이상 일한다고 했다. 24시간 회사에서 먹고 자며 일한 적도 있다고 한다. 관광을 간 적도 없고, 여동생 결혼식에도 얼굴만 보이고 바로 돌아왔다고 했다. 자가용 비행기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자가용 비행기가 무슨 소용인가. 작은 정도 나누지 못하는데. 사람을 더 바쁘고 더 피곤하게 만들 뿐인 것을.

 M의 행태를 비웃으면서도 나는 가끔 M의 말을 생각한다.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이미 우주왕복선을 만들었고, 몇몇 사람에게 우주여행을 시켜줌으로써 자신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증명했다.

 종인아, 우리 화성에 갈까? 바다를 그리는 대신 화성을 그리면 안 될까? 

 뜬금없이 무슨 화성?

 화성에 가야 한대. 지구가 곧 멸망할 거래.

 노스트라다무스가 2023년에 7개월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 뒤에 엄청난 환난이 온다고 했다더니 그 말을 믿는 거야?

 노스트라다무스가 아니라 M을 믿는 거야. 태양계에서 생명체가 다중행성 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화성인데 2026년 첫 이주를 할 거라잖아. 3년도 채 안 남았어.

 나는 그냥 지구와 함께 멸망할 거야. 핏빛으로 물든 지구를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싶지 않아.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고 싶지 않아. 너는 그러고 싶니?

 나도 그래.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살아남고 싶기도 하고, 함께 사라지고 싶기도 해.

 그러고 보니 우리 여행 한 번 못 갔네. 마스크 쓰고 살다 시간이 다 지났네. 지금부터 여행 계획 세워볼까?

 돈이 없어. 오토바이 사고, 점퍼 사고, 신발 사고, 명품 커피 마시느라 빈 깡통이야.

 오늘 밤새는 거부터 하지 마. 그거부터 시작해. 

 음, 음. 글쎄.

 종인이 나를 설득한 것도 내가 설득당한 것도 처음이었다.

 종인과 내가 함께 여행을 간다? 해외로, 멀리, 아주 멀리? 돈이 있으면 어디든 못 가랴.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M이 이해되었다. 종인과 내 꿈을 확장하면 M의 꿈이 된다. 종인과 나는 지구 어느 곳. M은 지구 밖 화성. 거리의 차이가 있을 뿐 M과 나와 종인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M처럼 위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이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마침내, 드디어, 나도 꿈꾸는 사람의 대열에 합류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돈. 그래서 나는 백화점 앞에서 아침을 맞이하지 않았다.

 M은 어린 시절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다고 했다. 게임을 많이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나도 빨리 돈을 벌기로 한다. 종인과 함께 먼 나라로 떠나기 위해. 계절이 네 번 바뀌었고 우리는 제법 많은 돈을 모았다. 화성에는 못 가겠지만 지구 어디론가로 떠날 수 있을 만큼.     

 그날은 비가 내렸다. 바람도 많이 불었다. 오토바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빗방울이 나를 향해 몰려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저녁 배달을 마치고 집에 갔을 때 종인은 없었다. 왜 이렇게 늦지?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스마트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낯선 번호였다. 남자가 종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종인이 많이 다쳤다고 말했다. 나와 통화한 기록이 가장 많아서 내게 전화했다고 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마지막 전철을 타고 병원으로 갔다.

 종인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하얀 붕대에 온몸이 싸여 있어서 마치 미라 같았다. 종인은 눈을 감고 있었고 종인에게 연결된 기계에서만 삐삐 소리가 났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꺼이꺼이 울고 싶었지만, 중환자실이란 장소는 통곡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곧 여행을 떠나려고 했는데…. 매일 어디로 갈지 고심했는데…. 여행지를 검색하고 계획을 짜면서 많이 웃었는데…. 그런데 너는 이렇게 누워 있구나.

 좌회전하는 종인을 들이받은 사람은 스포츠카를 몰던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였다. M이 이주하려는 화성에도 교통사고가 있을까. 그곳에서는 불의의 사고나 죽음 없이 살 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런 일들이 궁금했다. 종인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계절이 여러 개 지나갔다. 힘든 재활 과정을 거쳤으나 종인은 예전처럼 활기차고 씩씩하게 걷지 못했다. 종인이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른 곳이 아타카마 사막이었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지구상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곳. 종인에게는 충분한 돈이 있었다.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받은 돈. 가해자는 합의금으로 기꺼이 큰돈을 지불했다. 그녀가 몰던 자동찻값에는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었지만.

 아타카마 사막은 너무 멀었다.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했다. 도민준이 원망스러웠지만 종인이 원하니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만 경유하는 표는 엄청 비쌌지만 사기로 했다. 우리는 편도 항공권만 끊었다. 돌아오는 시간도 장소도 정하지 말고 떠나자는데 완전히 합의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출발해 뉴욕을 거쳐 칠레의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산티아고에서 휴식을 취하느라 며칠 묵었다. 따가운 햇볕과 맑은 공기가 종인에게 활력을 주었다. 고기와 감자와 생맥주도 한몫했다. 그리고 칼라마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칼라마에서 자동차를 빌렸다. 슬리핑백을 비롯한 야영 준비는 서울에서 했으므로 생수와 빵, 과일을 사서 차에 실었다. 두어 시간가량 천천히 달려서 해발 2,440m에 있는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로 갔다. 오아시스 마을인 산페드로는 아타카마 사막 탐험을 위한 전진기지다.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나지막하고 붉은 집들이 다정했다. 종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손바닥만 한 광장에 서니 만년설에 덮인 활화산이 보였다.

 야, 해발 5,920m라는 높이가 실감 나냐? 백두산이 몇 미터지?

 한 2,700미터쯤 될걸.

 흠, 두 배가 넘네. 활화산이라는데 하얀색이네. 멋지다. 진작 이곳에 올 걸 그랬나? 

 너무 멀잖아. 비행기 생각만 해도 어지러워. 

 그렇긴 하지. 내일 사막에 갈까?

 아니, 네 몸을 생각해서 하루 이틀 더 쉬었다 가자. 작고 아담한 이 마을이 마음에 들어. 고기도 먹고 과일주스도 마시면서 기운 차린 다음 떠나자.

 숙소 마당에 해먹이 있었다. 난생처음 해먹에 누워 보았다. 종인이 해먹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나도 마음에 들었다. 실바람이 간간이 불어와 이마를 간질였다. 오수를 즐긴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저녁을 먹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 달의 계곡으로 자전거 트레킹을 갔던 청춘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종인의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자전거 트레킹을 했을 텐데. 하늘에는 해운대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더 많은 별이 있었다. 별들이 종인과 내게 손짓했다.

 사막에 가면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겠지?

 내가 물었다. 

 아마 그럴걸.

 종인이 나를 보며 웃었다. 얼마 만에 보는 종인의 웃음인가. 가슴이 설렜다. 

 종인아, 나는 가슴이 설레. 너는 안 그래?

 나도 그래. 조그만 이 마을이 정겨워. 모래와 흙으로 지었다는 집들의 붉은 색이 좋아. 우리나라 초가집도 황토로 지었지? 민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왜 몽땅 없애 버렸을까? 정겨운 것들이 모두 사라진 셈이잖아.

 ‘정겨운 것’이라는 말이 섬광처럼 내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이틀 뒤에 우리는 더 많은 별을 보기 위해 사막으로 출발했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오르는 동안 종인은 말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구글맵도 열리지 않아서 얼마나 깊숙이 들어왔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종인과 나는 자동차 그늘 아래서 닭고기와 빵을 먹었다.

 어두워지자 농구공만 한 붉은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나는 침낭을 펴고 종인을 앉혔다. 달은 완벽한 구를 이루고 있었다. 보름인 모양이었다. 서울에서 가끔 보던 달보다 더 크다고 느낀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달이 어째 서울보다 크다?

 그렇지? 크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수퍼문인가?

 백두산 꼭대기보다 더 높은 곳에서 달을 보는 셈이잖아. 우리가 달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크게 보이는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수많은 반사판을 사용한 것처럼 달이 황금색과 어우러진 밝은 빛을 사막 위로 균등하게 쏟아냈다. 낮에는 붉은색이었던 사막이 연어의 속살을 닮은 주황색으로 변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너무너무 적요해서 태초의 고요가 이랬을까 싶었다. 종인이 내게 기대며 물었다.

 달빛에 휘감긴 사막이 너무 평온하고 아름답지 않아? 아련하고 낭만적이야. 눈물이 날 지경이야. 사랑에 빠진 적이 없지만 사랑이 이럴 거 같아.

 격정적으로 불타오르는 게 사랑이라잖아. 고요한 사랑, 평온한 사랑, 이런 말 들어 봤어? 그러니 이 아름다움은 사랑에서 유래한 게 아닌 거지.

 나는 달빛을 머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막의 빛을 받아들였는지 달도 생기가 돌았다. 서울에서 보던 창백한 달이 아니었다. 신부의 면사포 같은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사랑은 책임지는 거라잖아. 그러니 아련하다느니 하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지. 나는 가정을 꾸릴 깜냥이 안 되어서 사랑을 회피했어. 그런데 지금은 아득하고 낭만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있어. 사랑이 이런 거라면 틀림없이 사랑을 하고자 했을 거야.

 종인이 사랑을 회피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나도 그래. 수많은 부채를 짊어지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늘 피하고 싶었어. 나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어떻게 아내를,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겠어.

 시야를 가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동쪽 하늘에도, 서쪽 하늘에도, 남쪽 하늘에도, 북쪽 하늘에도 별들만 가득했다. 별들은 지평선으로 갈수록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달이 점점 높이 떠올랐다. 상아색 달의 왼쪽에 선명하게 드러난 형상은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방아를 찧는 토끼였다.

 우와! 옥토끼다.

 나의 외침은 맺힌 곳 없는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계수나무는 없는 것 같아.

 종인이 말했다.

 아, 별들이 너무 많아. 별들 속에서 죽고 싶어. 

 약속이나 한 듯 종인과 내가 동시에 말했다.

 나는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필터 쪽을 손바닥에 대고 탁탁 쳤다. 밀도가 높아진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왼손을 동그랗게 오므려 불꽃을 감쌌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말이다. 습관이란 참 무서운 거구나 생각하며 하늘을 향해, 아니 달과 별을 향해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종인이 자기도 피우겠다고 말했다. 

야, 몸에 안 좋잖아.

 병신,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 

 하긴 그래.

 나는 내 담배를 종인의 입에 물려주고 한 개비를 더 꺼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종인과 내가 내뿜은 하얀 연기가 천천히 허공으로 흩어졌다. 

 달빛이 이다지도 안온한 줄 몰랐어. 흐흐흐.

 종인이 낮게 웃었다. 종인의 말처럼 달빛은 전혀 창백하지 않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담배를 깊게 아주 깊게 빨았다. 담배 한 개비가 주는 쾌감조차 서울과 달랐다. 은밀하고 달콤한 쾌감이 전신을 핥고 지나갔다. 통제하거나 간섭하는 생명체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황홀해서 몸이 떨렸다. 숨어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되다니…. 손가락이 뜨거웠다. 나는 불이 붙어 있는 꽁초를 허공으로 튕겼다. 빨갛고 조그만 불꽃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불쏘시개가 될 만한 게 없으니 정성 들여 꽁초를 비벼 끌 이유 역시 없었다. 이런 게 자유인가? 

이곳으로 오자고 한 종인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가여운 녀석. 마음 놓고 달릴 수 없게 된 녀석. 종인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가시 돋친 풀 한 포기 없는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한 게 아닐까. 광막하고, 광활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과 처음 맞닥뜨렸을 때 종인은 어떤 시가 생각난다고 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뒷걸음질로 걸었다는, 사막이 너무 외로워서 그랬다는…….’ 그리고 진짜 바보 같은 시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가 훨씬 외로웠다. 이를 악물고 외로움을 참았고, 보람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며 살았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이집 저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일 년에 두 번 백화점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뻐했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믿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말을 믿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막에 앉아 있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아서 아름다웠다. 본질이야말로 아름다움의 근원 아닐까. 생명의 흔적이 없는 사막에 어울리려면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작게, 더 작게, 아주 작게 바스러져야 사막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연애와 결혼과 출산에 섹스까지 포기하고서도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종인이와 나야말로 사막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아무것도 되지 못해서 아름다울 수 있을 터였다. 저 붉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공기가 점점 차가워졌다. 

 여기 영원히 머무를까? 

 종인이 느닷없이 물었다. 

 글쎄, 그런 걸 왜 물어?

 네가 말한 M 말이야. 그의 꿈이 생각나서. 화성에 가야 한다잖아. 우주선이 찍어서 보낸 화성이 꼭 이런 모습이더라. 물도 없고, 황량한 사막과 언덕뿐이더라. 화성에 왔다고 생각할까?

 음…. 화성이라….

 종인이와 나. 비상하려 했으나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우리. 사막에서 비로소 내가 남긴 게 노폐물뿐이라는 자각이 일었다. 종인이도 그런 모양이었다. 피가 얼굴로 몰리며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차에서 배낭을 꺼냈다.

 가자.

 종인이와 나는 더 깊은 사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갈 수 있는 만큼 가 보고 싶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심전심이었다. 마지막 남은 생수를 마신 밤에 나는 접이식 야전삽을 꺼냈다. 모래는 생각보다 딱딱했다.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미친 듯이 우리를 닮은 모래를 퍼냈다.

 마침맞은 구덩이를 완성하고 하늘을 보니 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옥토끼가 비스듬히 몸을 기울인 채 종인이와 나를 내려다보았다. 옥토끼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종인이 셔츠와 바지를 벗었다. 달빛 아래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짙은 흉터들. 종인의 몸에는 칼자국이 여기저기 있었다.

 나도 옷을 벗었다. 내 몸을 휘감았던 천 조각들은 아무 미련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속옷과 양말까지 모두 벗었다. 벌거벗은 몸에 달빛이 스며들었다. 손바닥을 펴서 종인의 흉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내가 지켜줄게. 너를 영원히 책임져 줄게.

 종인은 대답 대신 벗어둔 바지 주머니를 뒤져 알약을 꺼냈다. 종인이 밤마다 먹던 약이었다. 내 손바닥 위에 약을 모두 쏟아부었다. 종인과 나는 반씩 나눠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등에 닿는 모래가 까슬까슬했다. 한기가 피부를 뚫고 몸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몸이 조금씩 떨렸다. 나는 종인이를 꼭 껴안았다. 손바닥으로 종인의 등을 쓸어보았다. 모래 알갱이가 바스락거렸다. 종인의 엉덩이에도 모래가 붙어 있었다. 젖은 몸에 들러붙는 밤공기가 차가웠다.

 M 말이야. 

 M이 뭐.

 어쩐지 내가 M에게 이긴 것 같아. M은 결코 화성에 가지 못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패배자가 되어 완전히 잊힐지도 모르지.

 뜨거운 커피가 마시고 싶어. 

 커피라니……. 씨발. 한심하기는. 

 한심하지, 한심했지.

 종인이와 나는 동시에 키득키득 웃었다.

 하룻밤, 이틀 밤. 몇 밤이 지나야 사막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모르지 뭐. 언젠가는 되겠지.

 편안했다.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고 하면 믿어 줄까? 

 별을 한 번 더 볼까?

 아니. 

 눈을 감아 봐. 별들의 노랫소리가 들릴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위이잉 위이잉. 점점 가까워지는 으르렁거림이 블랙홀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별들이 다가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어떤 소리이든 상관없었다. 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제10회경북일보청송객주문학대전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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