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by 이은희

글쓰기의 시작은 언제나 억지스러웠다.


글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본격적인 시작은 대부분 그렇듯 ‘일기장’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 해야 했던 숙제, 바로 일기쓰기.


지금 생각해도 너무 하기 싫다.


하루를 되짚으며 “오늘은 누구랑 놀았고, 아빠랑 뭘 했고, 저녁엔 뭘 먹었다. 재밌었다.” 이런 식의 사건 기록만 가득 채우는게 전부.


그럼에도 한 가지 작은 재미는 있었다.

다음 날 다시 돌려받은 일기장에 적힌 선생님의 빨간 펜 코멘트.


맞춤법을 고쳐주기도 하고, 짤막한 칭찬이나 농담을 남겨주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 글을 누군가가 읽고 반응한다”는 걸 느꼈다.


고등학교 2학년, 진짜 글쓰기가 시작되다


중·고등학교 때,

현충일, 어버이날, 개교기념일 같은 특정 기념일 주제에 맞춰 원고지에 글을 써 제출해야 했다.

크고 두꺼운 원고지가 나눠지고, 선생님이 던진 주제에 맞춰 글을 써야 했던 기억이 난다.


대충 쓰던 친구들 틈에서, 나는 조금 더 신경 썼다.

덕분에 개교기념일과 현충일엔 입상도 했다.


그저 ‘그나마 열심히 쓴 사람’에게 주어지는 작은 보상이었겠지만, 그때 처음 “조금 더 쓰면 결과가 달라지는구나”라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자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고2 때였다.

메가스터디나 비타에듀 같은 학원에서 나눠준 학습 캘린더 뒤쪽, 일일 피드백란에 하루하루의 생각과 힘듦을 짧게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내 속 깊은 생각과 감정들을 종이에 쏟아냈다.

너무 화가 날 땐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적나라하게 써 내려가고,

그 종이를 더 이상 찢어지지 않을 때까지 갈기갈기 찢었다.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이제 이 감정은 휘발된 거야.”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공감 능력이 부족했던 아이


나는 어릴 때부터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

친구가 왜 우는지, 왜 화가 났는지, 내가 지금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에게 “넌 철이 없어”, “넌 애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정도로 그냥 해맑은 아이였다.


어쩌면, 정말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내 세상 안에서만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가 내 선생님이 되다


그렇게 사람의 감정을 잘 모르던 나를 가르쳐준 건 영화였다.


영화 속엔 각기 다른 인물, 인종, 배경, 상황이 있었다.

그걸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조금씩 배웠다.


“세상엔 이런 사람이 있구나.”

“여자 주인공이 여기서 이런 눈빛을 보낸 건 슬픔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기 때문이구나.”


그때부터 영화는 나에게 단순한 재미가 아니었다.

감정을 배우는 교과서였다.


아직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감정을 배운다.

가능하면 여러 번 돌려본다.


여자 주인공 입장에서, 남자 주인공 입장에서, 주변 인물 입장에서…여러 관점으로 보며 해석한다.

때론 대본집을 함께 읽으면서 지문과 텍스트를 보고, 이 감정이 어떤 의도로 연출됐는지 분석한다.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느꼈을까”를 생각하며 나만의 시선으로 글로 남긴다.

여러 관점을 나의 관점으로.

이것이 지금 내가 하는 영화 글쓰기다.


글은 결국 기록이다.

같은 작품이라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봤는지에 따라 관점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그걸 ‘역사’라고 부르고 싶다.


20대 초반에 봤던 작품을 30대 초반인 지금 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고, 더 많은 경험이 쌓인 후에 다시 본다면 또 다를 것이다.

그 변화가 곧 내 공감 능력과 분석 능력의 성장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영화를 보고, 기록한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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