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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순 Aug 24. 2022

비상문 _ 최진영

세 번째 필사도 최진영의 책이다. 비상문을 읽었다. 길지 않은 책이라 다들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page. 9


 내 동생 최신우는 3년 전에 열여덟 살이었고 지금도 열여덟 살이다.


  내 동생은 자살했다.

  이렇게 말하기는 싫다.

  내 동생은 죽었다.

  이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내 동생은 없다.

  정말 없나? 없다고 할 수 있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보고싶다 최신우.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최신우. 이 나쁜 자식.



page. 11


 동생 마음을 매일 생각한다. 이건 내가 동생을 이해하려는 첫 시도이자 마지막 시도가 될 것이다. 내 동생은 누군가의 이해를 요구하는 그런 애가 아니었다. 살면서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말이다. 가족과 친구들, 선생들 중에 최신우의 자살에 이유를 댈 수 있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건 그만큼 동생이 외로웠다는 말 아닌가. 하지만 동생이 내게 얘기했다면, 뭐가 힘든지 어째서 살고 싶지 않은지 말했다면, 내가 위로를······· 했을까? 내가 그런 걸 할 줄 아는 인간인가? 화를 내지는 않았을까?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고 면박을 줬을지도 모른다. 가장 끔찍한 경우는, 듣고도 들은 줄 몰랐을 가능성. 동생의 말을 무시했을 가능성. 그랬을 것이다. 함께 자라면서 숱하게 그랬으니까. 어쩌면 내게 신호를 보냈는데 내가 알아먹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걸 수도 있다. 동생은 외로웠고 나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 또한 외롭다.



page. 21


 반지와 친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지금 친구라고 남아서 날 찾는 사람은 반지뿐이다. 동생이 죽은 뒤 안개가 걷히듯 친구들은 조용히 사라져 버렸고, 나는 사람과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특별한, 소중한, 친한, 아끼는, 사랑하는······ 그런 존재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page. 24


 반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중얼거린다고 한다.

  사람 되게 쉽게 죽어. 반지가 말했다.

  쉽게 죽지. 나는 반지 말을 따라 했다.

  살리는 건 되게 힘든데. 태어날 때도 힘들게 태어나고.

  힘들게 태어나고.

  반지와 나는 자주 같은 말을 반복한다. 핑퐁하듯 같은 말을 주고받다 보면 끔찍한 말도 점점 공허해진다. 의미는 사라지고 껍데기와 울림만 남는다. 모든 말을 죽은 단어로 만들 수 있다.

 


page. 27


 그러다가 깼는데 신우가 생각났어.

 왜?

 몰라. 그냥 생각났어. 나는 꿈에서도 죽는 걸 무서워하는구나 싶어서 그랬나.

 우리는 말없이 정면만 응시했다. 신호등 색깔이 바뀌자 사람들은 약속을 지켰다. 다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반지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살 이유가 없었던 건지도 몰라.

 나는 두 문장의 의미를 생각했다.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생각했다.

 이유가 필요해? 넌 이유가 있어서 살아?

 반지에게 물었다.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유가 중요한 사람들.



page. 46


 ······누구를 죽일 수 없어서 결국 자기를 죽이는 사람도 있어.

 반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신우를 생각했다. 누구를 죽이고 싶었던 건가 생각했다. 반지는 나와 표현이 달랐다. 나는 부정적이라고 했고 반지는 신중하다고 했다. 신중한 사람이 자살을 하나. 너무 신중하면 그럴 수 있나. 신우는 과도하게 생각이 많았다. 쓸데없이 머리가 좋았다. 반지는 어째서 신중하다고 표현하는 거지. 그래서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거지.

 너는······ 그런 편견을 버려. 신중한 사람은 그럴 리 없다는 편견 같은 거. 그러지 않으면 평생 이해 못할 수도 있어.

 반지가 말했다.



page. 47


  그럼 너는 이해한다는 거야? 신우를?

  반지에게 물었다. 공격하듯 물었다.

  ······이해가 아니라.

  반지는 말을 골랐다.

  ······그게 아니라 이해는 아닌데.

  손거스러미를 잡아 뜯으며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나도 죽고 싶을 때가 있고.

  손톱 밑에 빨간 피가 맺혔다.

  그렇지만 무서워하는 거야. 근데 신우는 그걸 했잖아.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뭐였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 근데 나는 죽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더 아픈 거야. 왜냐면 나는 아직 사는 게 좋고 살아 있어서 좋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신우는 왜 그랬을까 그 생각을 하면.



page. 48


 별일 아니다.

 어쨌든 죽는다. 부모님도 나도 죽는다. 신우는 조금 일찍 죽었을 뿐이다.

 자살이 어때서. 자기를 죽이는 게 뭐 어때서. 다들 조금씩은 자기를 죽이면서 살지 않나? 자기 인격과 자존심과 진심을 파괴하고 때로는 없는 사람처럼, 죽은 사람처럼, 그러지 않나? 그렇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끔찍할 수 있다. 그럼 죽을 수 있지. 죽는 게 뭐 이상해. 자살이라고 달라?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자기를 위해 죽을 수도 있지.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뿐인 사람도 있지.



page. 53


 네가 죽으면 내가 너무 괴로워.

 나는 괴로워도 괜찮고?

 죽지 마. 아깝잖아. 너무 아까워.

 죽으면 어차피 없는 인생, 뭐가 아까워.

 너는 잘 살 수 있어.

 잘 사는 게 뭔데.

 너는 행복할 수 있어.

 다들 행복하려고 안달이지. 나는 그게 끔찍해.

 신우야, 죽지 마. 일단 살아. 그럼 다 잘될 거야.

 무책임한 소리. 형이 내 미래를 알아?

 너는 모르잖아. 모르는데 왜 죽어.

 난 알아.

 어떻게 알아. 뭘 알아. 네가 신이야?

 형은 보면서도 모르지. 인간 진짜 징그러워.

 수없이 상상한다. 상상 속에서 나는 늘 신우에게 진다. 신우를 설득하지 못한다. 신우는 확고하고, 내가 모르는 말을 한다. 죽고자 마음먹은 자에게 죽지 말라는 말이 무슨 소용 있는가.



page. 58


 난······ 친구를 잃었고 친구를 얻었지.

 반지가 말했다.

 신우는 자기한테 너무 엄격했던 것 같아. 때로는 자기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 같은 걸 문장으로 적어서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자세하게 기억하고 괴로워했지. 근데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들어. 그 정도로 자기를 세세하게 들여다볼 정도면 증오한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한 거 아닌가.

 반지는 내가 모르는 말을 했다. 나는 신우의 그런 면을 전혀 모른다.

 남들에게는 먼지인데 신우에게는 바위인 일들이 신우 마음에 가득 쌓여 있던건 것 아닐까······. 그런 게 늘 신우를 휘감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 거?

 반지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수치심 같은 거. 모르겠어. 더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어. 장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단어가 떠올랐고 계속 따라다녀. 신우 아니었더라면 내가 그 단어를 어떤 식으로 만났을까. 예방 주사처럼 그 단어를 미리 놔주고 간 것 같아, 신우가.



page. 60


 둘이 사귀었다고?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신우도 알았어?

 뭘?

 네가 좋아하는 거.

 모르겠어.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갑자기 화가 났다. 우리는 어째서 모르는 것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온통 짐작뿐이란 말인가. 최신우 없이 우리만 남아 이게 다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모르지. 아무도. 신우 마음을 어떻게 알아. 신우라고 자기 마음을 다 알았을 것 같아? 넌 그래? 네 마음을 다 알아?

 모른다. 모르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죽고 싶지는 않다. 신우는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살한 거 아닌가? 그런 확신도 없이 어떻게 자기를 죽일 수 있지?

 신우한테 말 안 했어?

 뭘?

 좋아한다고.

······

 어쨌든 죽었어. 죽겠다는 마음을 바꿀 수 없었던 거야. 너도, 나도, 가족들, 친구들, 신우의 모두. 아무도 없었던 거야. 그 사실보다 중요한 게 있어?

 말했어야지. 좋아한다고. 죽지 말라고.

 나는 마치 반지가 고백하지 않아서 신우가 죽었다는 듯이 말했다. 반지를 원망했다.

 야, 이 미친놈아.

 반지가 어이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욛했다.

 내가 알았어? 죽을 줄 알고도 가만있었어? 내가 말했다고 신우가 안 그랬을 것 같아? 내가 뭔데. 내가 걔한테 뭔데.

 우린 서로 나쁜 말을 주고받았다.

······

 짐을 내려놓고 싶은데 짐이 자꾸 더해진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눈처럼 쌓인다. 얼어서 녹지도 않고 우리를 조심하게 하고, 너무 조심하느라 서로를 보지 못하게 하고, 자기 발끝만 보다가 길을 잃게 만든다.



page. 68


 신우는 절대 운동화를 꺾어 신지 않았다. 신우는 입이 더러워진다고 욕도 하지 않았다. 신우가 울 때는 파도 소리가 났다. 신우가 웃을 때는 여름 나무 같았다. 그런 신우는 없어졌다. 하지만 우주에서 완벽하게 없어지는 건 불가능하다. 어른 아니라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빛 같은 것? 빗물 같은 것? 신우는 다른 것이 되고 싶었나? 빛과 빗물은 무수하고 최신우는 하나뿐인데 어째서? 태양과 달은 낮과 밤에만 보이지만 한 공간에 있다. 행복도 불행도 한 공간에 있고 그것이 유난히 잘 보이더라도, 우리는 굳이 그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것 아니라도 별은 무수히 많다. 세상은 점점 더러워지고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네가 어디 있고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도록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게 우주의 법칙이니까. 그런 세상을 같이 살면 좋았잖아. 네가 거기 있어서 내가 여기 있다고 서로의 방향을 헤아려 주면 좋았잖아. 너를 보면서 나를 확인할 수 있으면, 같이 비를 맞았으면 좋았을 거잖아.




page. 69


 형, 단풍이 빨갛게 물드는 거 왜 그런지 알아?

 가을이잖아.

 노폐물이야.

 뭔 소리야.

 노폐물이라고.

 뭐라는 거야.

 나무가 죽어 가면서 배출하는 오물을 보고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관광하고 사진 찍고 그러는 거라고.

 야, 너는 좀.

 한창 살아 있을 때, 푸를 때는 왜 아름답다고 하지 않지?

 말을 알아듣게 해.

 푸를 때는 왜 덥다고 짜증만 내냐고.

 여름은 덥고 더우면 짜증나지. 당연하잖아.

 다 푸르니까 모르지 사람들은. 살아 있는 그 함성을. 시끄럽다고.

 야, 최신우, 너도 그래.

 내가 뭐.

 시끄럽다고.

 ······.

 너도 푸르고.

 ······.

 아름답고.

 ······.

 하루만 더 살아 줘.

 뭐 달라진다고.

 제발, 하루만.

 다를 게 뭐냐고.

 어떻게든 찾아볼게, 내가.

 뭘 해, 형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너한테 꼭 필요하다면.




 [비상문]의 이야기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나?

<그만 살고 싶다>는 바람에 걸려 넘어질 때가 있다.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않아 한참을 울어야 일어날 수 있다. 나이 들면 괜찮아질까 덜 넘어질까 기대했는데, 나이 들수록 더 깊이 넘어지고 일어날 때마다 겸연쩍다. 삶과 죽음 말고 다른 것은 없는가 중얼거리면서 시스템 종료 대신 다시 시작을 누르는 순간들. 매일 생각한다. 매우 사랑하면서도 겁내는 것이다. 이 삶을.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중심은 어디인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아직 모르겠다는 것. 하지만, 그래서, 당신이 살아 있으면 좋겠다는 것.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끼니를 챙기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돌보며 같이 찾아보자는 것.






바깥에 비가 온다.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소정이와 함께 빗 속에서 정신없이 뛰어놀던 그 밤, 빗물 고인 바닥에 떨어진 낙엽, 신경숙의 깊은 슬픔, 내가 좋아하는 그림(그것도 빗 속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책상에 앉아 바라보는 바깥 풍경, 회색 도시, 산 위로 퍼진 물안개, 비비큐 황금올리브. 비를 좋아해서 비가 올 때 생각나는 것 또한 하나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 뿐이다.


 회사에서 도통 할 일이 없어 보려고 마음만 먹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이제서야 다 봤고,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멍을 때리다 옥상에 올라갔다. 비가 꽤 많이 내리길래 패딩 모자를 뒤집어 쓰고 태양광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하며 하늘을 올려다 봤다. 비는 이렇게나 많이 쏟아지는데 이상하게 주위가 훤하길래 보니 저 멀리 하늘은 푸른 하늘이고 내 바로 위에 있는 하늘에만 먹구름이 피어있었다. 하늘이 아무리 푸르더래도 내 머리 위에 먹구름 있으면 비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인가 보다. 혹시 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만 기다리면 내 머리 위 먹구름은 지나가고, 저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이 당신의 머리 위로 넘어올 것이다.


 적당히 비 좀 보다가 사무실로 돌아와 이 필사를 올린다. 아마 앞으로 비가 오면 비상문도 함께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비가 언제까지 내릴지 모르겠다. 이 비가 그치면 무조건 엄청난 추위가 몰려올 것 같다. 지금도 추운데 더 추워지면 어떡하란 건지. 다가오는 계절을 막을 방법이 없어 그냥 히트텍과 패딩, 목도리 등등 나를 감싸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해 내 몸을 따듯하게 만들 작정이다. 그래도 비가 오는 건 좋다. 이 비가 그치고 내일 당장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더래도 지금 내리는 이 비는 무지하게 반갑다는 말이다.


 그럼 다들 오늘 하루도 무탈히 잘 보내시고 얼마 남지 않은 단풍 구경 열심히 하길 바란다. 신우는 단풍을 보고 나무의 노폐물이라며, 왜 푸릇푸릇할 때는 덥다고 불평만 했으면서 죽어가는 이제서야 아름답다고 하는 거냐고 했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죽어가는 순간까지 저렇게 찬란하다면 우린 박수치며 이제라도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면 그만이다. 어떤 아름다움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이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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