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움의 시간

by 검둥새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린다. 매사에 의욕이 없다. 이런 날들이 종종 있다. 때로는 그 기간이 제법 길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태를 슬럼프라고 불렀다.

이전에는 발버둥을 좀 쳤던 것 같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뭔가를 더 해보려 했다. 당연히 잘 되지 않았다. 그러면 더 무기력해졌다. 다시 한번 마음을 잡고 시도했다가 또 안 되니 더 의기소침해졌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했다. 인위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르라는 것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겨울이 오면 잎이 지듯, 모든 것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다.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가진 조화를 존중한다.

내 몸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다. 이제는 이런 시기를 슬럼프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이다. 휴식이 필요한 상태이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아야 한다. 자연의 이치처럼, 잠시 쉬어가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연의 순리처럼, 쉼과 움직임의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함을 느낀 것이다.

이는 컨디션 저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관계, 경력, 자아 성찰에 이르기까지 삶의 영역 전반에 적용된다. 관계가 소원해질 때, 무리하게 회복하려 애쓰기보다 자연스러운 거리를 인정하고 때를 기다린다. 직장에서 성과가 잘 나오지 않을 때, 더 오래 일하기보다 잠시 물러서서 전체 그림을 바라본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것. 이 두 가지 모두가 삶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빈 컵에만 물을 채울 수 있듯, 비워진 마음에만 새로운 영감이 찾아온다. 슬럼프라 여겼던 그 시간들은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비움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