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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잡기

#이상과현실

by 또랑쎄


문득 졸업을 앞두고 원하는 회사에 합격 통보를 받은 그 시절이 떠올랐다. 연구실 전공을 살려서 일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교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던 회사에 합격한 나는 그곳에서 번듯하고 멋있게 일하고 있는 이상적인 직장인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현재도 아직 그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나는 꽤 자주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오늘 내가 뭘 입고 나왔지 하고 겉옷 안을 들여다본다.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야근에 절여있는 후줄근한 내 모습이 현실이었다. 이렇듯 모두의 이상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


이상과 현실이 엇갈리는 경우가 다수이지만 이상이라는 것은 현실 속에서만 가늠하고 상상할 수 있는 형상이다. 내가 현실에서 10까지만 알고 있다면, 내 이상은 10이 된다. 즉 내가 알고 있고 떠올릴 수 있는 범위의 현실 속에서 이상을 떠올리게 된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없지만 또한 둘은 멀어질 수도 없는 관계인 것이다. 이 둘의 관계가 참 묘하고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럼 사람들은 왜 이상을 꿈꿀까. 나는 이 원인이 사람의 본능적인 욕심에 의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흔히 이상적인 육아와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비교해 놓은 영상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육아를 잘 하려고 하다 보니 이상적인 육아를 내 마음대로 형상화 시키고, 그것과 대비되는 것이 현실일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는 형상이 아닌 이데아에 반응하고, 현상 세계의 모든 것의 본질이 바로 이데아라고 말했다. 이데아론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진 않지만, 정말 형상이 아닌 이데아에 집중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냥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잘 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집착하며 그와 대비되는 현실로부터 스스로 상처를 입고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잡을 수 없는 꼬리를 계속 잡아 쫓으면서 이상을 현실에 대입시키려고 하다 보면 결국 불행감만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육아를 남 보이게 번지르르하고 깔끔하게 잘 하려는 게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식을 키우는 것과 그 존재 자체가 목적이지 않을까. 내가 연애 시절 남편에게 하얀 장미 꽃다발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던 건, 내가 하얀색 꽃을 좋아해서가 아닌 그저 마음 어린 선물을 받았기에 좋았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엔 너무 좋아 보이는 것이 많고 그만큼 욕심이 나는 게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능인 건 인정한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면 더 이상 잡히지 않는 꼬리잡기 놀이에 우울감을 느끼는 일은 많이 없지 않을까 싶다.


#이상과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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