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선후배 간 소통

by 검둥새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실무 부서 배치를 받은 직후, 첫 회식 자리가 열렸다. 나는 아직 낯선 분위기와 서먹한 관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술이 약한 편이라 두세 잔을 마신 후부터는 속이 부대끼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만은 간신히 붙잡고 있었지만, 솔직히 한순간이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날은 단순히 즐겁자고 마련된 술자리가 아니라, 신입으로서 분위기에 적응하고 ‘조직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통과의례 같은 자리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남은 건 만취한 부장님 한 분, 그리고 대리 급의 선배 한 명이었다. 상황은 난감했다. 나는 눈치껏 인사를 하고 얼른 자리를 뜨려 했는데, 그 순간 선배가 내 팔을 붙잡았다. “어디 가. 상사 이렇게 놔두고 그냥 가면 되냐.” 술기운이 거의 없어 보이는 또렷한 눈빛이었고, 그 앞에서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부장님을 부축해 택시에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걸 확인한 뒤에야 자리를 정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선배는 나를 붙잡아 세워두고, “신입이 상사도 못 챙기고 냅다 가려 하면 어떡하냐”라며 한참 동안 훈계를 늘어놓았다. 속은 이미 한계에 달했는데, 30분 가까이 이어진 말이 억울하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그 선배가 커피를 건네며 “너도 꽤나 취했었는데,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라고 사과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 사과가 곧장 내 마음을 풀어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를 ‘개념 없는 후배’ 정도로 보는 듯한 시선이 남아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저 억울했다. 나도 겨우겨우 버티던 자리였고, 신입이라고 해서 부장님의 귀가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게 당연한 일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선배의 훈계는 단순히 불합리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몇 달 뒤, 선배가 나를 바라보는 인식이 조금 개선되는 일이 생겼다. 선배가 오지 못한 또 다른 회식 자리에서, 이번에는 내가 만취한 부장님을 챙기게 된 것이다. 주변에서는 “알아서 들어가시겠지. 그냥 보내드려.”라며 만류했다. 나에게 딱히 그런 수고를 강요하는 사람이 없는 자리였다. 나 역시 굳이 남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농담을 던졌다. “그냥 가면 홍 선배한테 혼나서요.” 순간 사람들이 웃었고,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끝내 부장님을 집까지 배웅했다. 힘들긴 했지만, 사실 억울하다거나 하는 별 생각은 없었다.

그 일 이후로 선배의 태도가 달라졌다. 다음날 바로 "홍 대리가 후배도 아주 잘 가르쳤어." 같은 느낌의 칭찬을 들었던 것이다. 선배도 그렇고 다른 동료들도 나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이전보다는 그래도 개념찬 후배 정도로 바라봐주는 느낌이었다. 억울했던 훈계가 결국은 내 평가를 바꾸는 계기가 된 셈이었다.

그 일이 벌써 십 년 전이다. 지금은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회식 자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고, 설령 그런 상황이 생겨도 후배에게 떠넘기지 않고 경험 많은 사람들이 챙기는 편이다. 신입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불필요한 강요가 없어지고 각자의 자유와 건강이 존중되는 건 분명 좋은 변화다. 다만 돌아보면, 그 시절에는 억압처럼 느껴졌던 장면들 속에서도 관계를 배우는 기회가 있긴 했다. 분위기를 풀어내는 법,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 요령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은 이런 배움이 개인의 성격이나 선택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넉살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은 그냥 모른 채 지나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이 훨씬 건강한 시대지만, 과거의 전통 속에서 우연히 배우게 되던 삶의 태도가 있었다는 점은 남는다.

이 대목에서 아렌트의 생각이 겹쳐진다. 그녀는 인간 사회를 오랫동안 지탱해 온 기둥으로 전통과 권위를 꼽았다. 하지만 그녀가 강조한 건 “이것들이 여전히 강력하다”가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진단이었다.

전통은 단순히 옛날 것을 고집하는 게 아니다. 아렌트가 말하는 전통은 앞 세대의 경험과 판단이 뒤로 사라지지 않고, 현재 세대가 참고할 수 있게 이어주는 다리다. 전통이 있을 때 사람들은 매번 처음부터 기준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왔으니 이번에도 이렇게 해보자”라는 기준이 있어서 길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낡은 관행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곤 했다. 그래서 전통은 미화의 대상이 아니라, 배우되 비판적으로 걸러야 하는 유산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권위도 비슷하다. 흔히 우리는 권위를 “윗사람의 말은 무조건 따르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아렌트가 말한 권위는 억압과 다르다. 권위는 설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존중받는 힘이다. 경험과 신뢰에서 비롯되는 무게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윗사람의 말이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억누르는 순간,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단순한 폭력일 뿐이다.

아렌트의 핵심은 이렇다. 예전에는 전통과 권위가 자동으로 작동했다. 사람들이 크게 따져 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그 끈이 끊어졌다. 사람들은 이제 “왜 그래야 하죠?”라고 묻기 시작했고, 전통은 더 이상 당연한 길잡이가 되지 못했다. 권위도 무조건적인 존중을 얻지 못하고, 억압과 혼동되며 힘을 잃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선배와 후배의 관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답은 단순하다. 전통과 권위는 이제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선배의 말이 권위로 받아들여지려면, 강요가 아니라 경험과 신뢰에서 근거를 찾아야 한다. 전통도 무조건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혜는 남기고 어떤 관행은 버려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선배와 후배의 관계는 억지 훈계가 아니라, 서로 눈치껏 배우고 전하는 과정 속에서 살아 있는 권위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모습이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신입 시절의 억울했던 훈계도 시간이 지나며 배움으로 남았다. 그때는 불합리하다고만 느꼈지만, 결국 그 경험 속에서 내가 공동체 속에서 인정받는 방식을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문화가 달라졌고, 과거처럼 자동으로 굴러가는 전통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과 권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인정받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준이 훨씬 높아졌다고 보는 게 맞다.

예전에는 그저 윗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권위가 인정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후배가 보기에 설득력 있고,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가 담겨 있을 때만 권위가 힘을 얻는다. 전통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이렇게 해왔으니 따라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대신 후배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더 나은 의미와 가치가 담긴 전통만이 이어진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선배의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검증을 거쳐야 하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나에게도 책임을 남긴다. 후배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전통을 물려주고 싶다면, 나 스스로 먼저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억지로 훈계한다고 해서 통하는 시대가 아니니, 내가 어떤 태도로 일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지가 곧 전통이 되고 권위가 된다. 후배들이 선배와의 소통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면, 선배인 내가 먼저 그 소통을 열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결국 선배와의 소통은 과거의 흔적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기준 속에서 새롭게 전통을 세우고, 권위를 다시 구성해 가는 과정이다. 나는 더 이상 신입이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선배의 자리에 서 있다. 그렇다면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전통을 경험하고, 더 건강한 권위를 마주할 수 있도록, 나부터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선배로서 후배와 소통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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