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한 Nov 23. 2023

독서, 그 부질없는 행위에 대하여

 

연말이 되면 온갖 스토어에서 올해의 회원등급을 정산하는 행위를 한다. 일 년 동안 얼마나 고객님께서 우리 가게에서 돈을 지르셨는지를 판단하는 정기 행사 인 셈인데, 올해의 나는 (만년필 구매내역 없이) 교보문고에서 역대급 지름을 선보여 2년 연속 교보문고의 2시간 무료 주차권을 얻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나 많은 책을 사고 - 읽었지만 아직도 나는 독서가 나에게 주는 이득을 잘 모르겠다. 독서는 나에게 빼어난 글 실력을 주지도 않았고 사실상 인생 사는데 쓸데없는 지식들만 모아주었다. 어디 가서 쓸데가 전혀 없다. 유럽과 일본의 근대사, 고대 철학과 근현대 철학 등등 내가 주로 습득하는 지식은 술자리에서 술안주조차 되지 못한다. 심지어 돈도 많이 든다. 나는 이런 쓸데없는 행위를 왜 하고 있는 건가... 연말이 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SNS나 어디선가는 글을 많이 읽는 행위를 자랑하던데 사실 나는 그 행위가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막말로 누가 나에게 글을 읽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길게 보면 글 읽는다는 행위는 동양에서 특히나 존경받는 행위였지 고대로부터 서양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칼질 잘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 승자였다.  훌륭한 칼질 능력과 용기는 매우 중요한 미덕이었다. 그에 비해 글 읽고 말하는 게 주된 업무였던 사람들은 말을 잘못해서 모가지가 잘려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키케로를 생각해 봐라). 아니면 신학 전투로 모가지가 잘려나가거나. 어쨌든 그 끝은 모자지가 잘려나가는 일인데 동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글 읽는다는 행위가 양반의 행위로 존경받게 되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오는 것을 보면 독서라는 것은 사실 내가 양반이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행위인 건가..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뭐 사실 양반이 하는 행위는 맞다. 시간은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들고, 이득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행위이다. 비슷하게 돈 많이 들고 시간 많이 들고 이득은 눈에 보이지 않는 행위로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화가가 있는데 차라리 이는 독서를 하는 사람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 적어도 아웃풋이 보이기는 하니까. 독서는 비루투오소처럼 끝내주는 선율의 아웃풋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독서는 돈 많고 한가하는 것의 가장 끝장판인 행위일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남들에게 그렇게 독서를 잘 권유하는 편은 아니다. 누군가 지식을 찾거나 할 때 그와 관련된 괜찮은 책을 추천하는 경우는 있어도 독서라는 행위를 올려치기(?) 하면서 캬 독서하는 사람은 유식한 사람이라는 그런 프레임을 권유하지 않는다. 아. 내가 소설책은 그렇게 많이 안 읽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소설책은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형태를 나타내기 때문에 감정 공감 능력을 키워줄 수는 있겠다. 시는 마음의 위로가 되거나. 그렇게 치면 내가 하는 인문 위주의 독서는 정말로 쓸모없는 행위이다. 여러분 독서는 쓸모없는 행위입니다. 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 보세요!



나같이 독서에 회의가 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출판업계는 고사할 것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SNS에 올리는 것 말고. 사람들은 왜 독서를 할까? 실컷 비꼬고 있지만 이 말라죽어가는 취미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으면 깊은 성찰이 가능하고, 시공을 뛰어넘는 공감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는 한도 끝도 없이 생각의 깊이를 파고들 수 있다. 생각을 파고드는 행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이자 특기이다. 사물에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되어준다.

두 번째로는 내 감정들이 - 내가 이 겪는 모든 것들이 사실 예로부터 아주 오래된 것이고 나만 겪은 것이 아니라는 위로. 쇼펜하우어의 책이 요새 서점가에 베스트셀러인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그냥 염세주의자이기만 했던 그가 최근에 엄청나게 각광받는 이유는 바로 시공을 뛰어넘는 위로에 있을 것이다. 야 어차피 어느 시대든 삶은 겁나 힘들고, 뭐 같은 거야. 걱정하지 마.라는 위로. 그런 위로를 나는 철학자들과 역사에서 얻는다. 그렇기에 인문은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많이 들고 시간 많이 드는 행위임에는 변함없기에 딱히 큰 즐거움을 안겨주는 게 아니라면 독서를 하는 행위를 계속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글 깨나 읽었다고 유식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캣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