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가의 나라 Aug 11. 2022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7번 읽고

마지막 인물이 장연학이었다니!!

  "장연학이 둑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 토지 21권 마지막문장 -


  내가 토지 책을 처음 접한 건, 1998년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아버지는 그해 수술을 하셔서 집에 계셨고, 어머니는 낮에 인근 식당에 일하러 가셨다. 그 해는 나를 어릴 때부터 어머니만큼 길러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많던 언니들은(2살 터울의 막내 언니 마저) 모두 외지로 떠났다. 9명의 대가족이 3명의 가족으로 줄어들었고, 방들은 텅텅 비었다. 그렇게 나는 1998년 겨울, 언니들과 할머니가 떠난 그 방들 중, 가장 작은 방에서 토지를 읽었다. 한 달간을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고, 오로지 책을 읽고 아버지와 밥을 먹었다. 도서관에 있던 대하소설은  토지뿐만 아니라 모두 읽었던 한 해였다. 엄마는 아픈 아버지를 위해 매일 고기반찬을 만드셨고, 모든 게 허기졌던 나는 책을 읽고, 또 읽고 아버지와 밥을 먹고 또 먹었다. 


  그것이 나와 토지와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토지를 읽었던 시점을 반추해보면 늘 어둡고 쓸쓸했다. 물론 모든 인생이 그리 밝지는 않지만, 그 책은 내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나의 동무가 되어주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책 뒤편에 쓰는 습관을 가진 덕분에 토지 전 권(21권)에 나의 감정은 생생히 살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토지를 읽을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그 어려운 길을 잘 이겨내서 기특하다고, 나는 토지를 읽으며 나와 다른 여러 등장인물을 보며 위안을 얻고, 삶의 길을 찾았는지 모른다. 

  때문에 내게 있어 토지는 슬픔이고 위로고 길잡이였다.

  처음에 나는 구천이의 어두운 정열을 좋아했다. 그가 나 같았고, 나는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구천이의 어두운 정열은 어린 내게는 매우 큰 숙제였다. 이기지도 못한 술을 마신 느낌이랄까?? 묘한 매력의 사나이는 내게 너무 큰 짐을 준 것이다. 그래서 내 젊은 시절은 고독과 열정이 가득한 날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험생이 되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 과정에 내게는 늘 토지가 있었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1998년을 제외하고, 책에 쓰인 후기를 미루어 짐작하여 1998, 2002, 2008, 2013, 2015, 2019, 2022년, 대략 3~4년에 한 번씩 읽었음을 알 수 있고 토지의 긴 장 수를 생각해보면 시작에서 끝까지 약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서희를, 봉순이를, 길상이를, 해도사를, 강쇠를, 임이네를, 조병수를, 장연학을, 만났고 젊은 시절 독해 보이던 서희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엄마를 찾아오라는" 그녀의 울부짖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7번째 토지를 읽은 그 시간, 내 인생에 가장 침잠한 기간이었다.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웠고, 인내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나는 다시 토지를 들었다. 다만 전의 6번과 지금의 다른 점은 그전에 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더 이해가 되었으며 슬픔보다는 편안함이, 낙망보다는 희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세월을 스스로 청산했으며,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나는 침잠한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슬프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부여잡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지루한 부분이 있으면 다른 책을 슬쩍 보기도 했으며, 책을 보는 아침, 책을 보지 않고 다른 잡다한 흥미 있는 것을 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7번째 토지에서 만난 나의 인물은 "장연학"이었다. 그는 많은 배움은 없었지만 사리에 밝았고 세태를 냉정하게 바라봤으며,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았다. 또한 나라를 사랑할 줄 알았고, 사람을 위로할 줄 알았다. 말없이 주변의 어려움을 살피고 소리 없이 그들의 손을 잡아줬다. 서희와 세상을 잇는 끈이었으며 서희를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평사리의 많은 사람들이 장연학의 손을 잡았으며 그를 의지했다. 토지 마지막 장, 지리산에 몰려든 사람 중 독립을 머리로 이론으로 배운 사람들과 몸과 마음으로 익힌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의견 충돌에 누구보다 침착하게 그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현실을 가장 잘 조망해주었다. 

  박경리 선생님이 가장 사랑한 인물은 길상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마지막엔 장연학에게 빠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박경리 선생님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독립을 장연학과 함께 맞이했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홀가분하다. 어두웠던 구천이도, 선망했던 서희도 슬펐던 봉순이도 아니고 가장 현실적인 장연학과 함께 여서 말이다. 이는 내 감정의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토지를 덮으면서 크게 생각나지 않았던 장연학이 지금 내게 들어온 것은, 그의 지혜로움으로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토지를 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토지로부터  배울 것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겠지만, 그것을 알더라도 토지와 함께한 원치 않던 그 시간을 이제는 정리하고 싶다.  다만, 혹여나 다시 읽을 날이 온다면 기쁨으로 기꺼이 수많은 그들을 맞이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런 좋은 글을 써 주신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의 인생을 응원하는 2022년의 7번째 토지 후기 중

   


  


  

  

                    

작가의 이전글 기록하였지만 기록되지 않은 기록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