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러고 싶지 않더라도
2021.7.14
“1534년에 영국 하커스트의 더글래스 와인가르가 할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장미를 줬어요. 직접 장미를 꺾어서 할머니에게 가져다줬죠. 할머니는 행복해하고… 145점을 받았어요. 2009년, 메릴랜드 스캑스빌의 더그 유잉도 할머니에게 장미 12송이를 선물했는데 4점을 잃었어요. 왜? 노동력 착취 공장에서 제조한 휴대폰으로 주문했거든요. 유해한 살충제를 뿌리며 기른 꽃을 학대 받은 노동자들이 꺾어 엄청난 탄소 발자국을 남기면서 몇천 킬로미터를 배달했죠. 그 돈은 인종주의자인 억만장자 CEO에게 갔고요. 여성 직원들에게 성기 사진을 보내는 인간이에요!” _ 드라마 <굿 플레이스> 중에서
그 비를 맞고도 채식을 하지 않고,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챙겨 다니지 않는 게 화가 났다. 인종차별적 사진을 찍은 학생들을 “그럴 의도가 없었다”며 변호하는 모습에 치를 떨었다. 식당이 10시에 닫는다는 말을 10시부터 공원에 다닥다닥 앉아 술을 마시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한 대씩 갈기고 싶었다. 2020년 여름, 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영향력을 알기를 바랐다.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지구는 거주 불능이 되고, 타 인종이 모욕감과 위협을 느끼며, 마스크를 벗을 날이 또다시 미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들은 늘 비눗방울 안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의 행동이 타인에게, 다른 생명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영향력을 아주 모르는 것 같진 않았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비눗방울 밖으로 손을 뻗어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공격했다. 점원에게 각종 폭언을 일삼을 때도, 웹툰과 배달음식점의 별점을 깎을 때도 그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것을 활용했다. 그리고 비눗방울이 터지지 않은 양 굴었다.
그러나 우리는 비눗방울 안에 있지 않다. 영향력은 선택적으로 발휘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편리한 마음가짐과 생활을 위해 가상의 비눗방울을 만들고 착취의 현장을 그 밖으로 밀어냈다. 수도권 밖에만 도살장을 짓고, 다른 나라 땅에 헌 옷을 산더미처럼 쌓고, 국내 거주 외국인이 250만 명이 넘어도 한국인은 단일 민족이라고 믿었다. 타자를 못 본 척하고 착취를 외주하는 상황이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영향은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언젠가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외국인이 되든, 채소 값이 오르든 수재민이 되든 감염병에 걸리든 간에.
하지만 우리는 분명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한다. 창작자와 서비스업 종사자를 향한 피드백이 그들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면, 반대로 긍정적인 피드백은 생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만 채식을 해도 환경을 유의미하게 보호할 수 있다. 나 하나가 아니라 정부, 강대국이 잘해야 세상이 나아진다는 회의적인 사고도 충분히 논리적이다. 하지만 구조의 변화 또한 시민의 요구가 그 동기를 부여하기에, 한 명의 시민이 변화하는 건 영향력이 꽤 크다. 그리고 당신이 누구든지 간에 자기 자신 한 명만큼은 확실히 변화시킬 수 있다.
초반에 등장한 인용구를 쓴 작가는 할머니에게 장미를 선물했을 뿐인데 점수가 깎이다니 점수(도덕)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미가 생산·유통되면서 벌어진 모든 비도덕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지 않더라도 그 악영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눗방울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착취의 결과물을 목격할 때마다 나 또한 스스로를 고립시키려고 한다. 장마가 오지 않는 곳으로 가면, 약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손절하면 이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나는 이 역겨운 세상과 서로 지독하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저 그 영향이 최대한 긍정적이길 바라고 또 노력할 뿐이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