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나도 암이라니

갑상선암 판정을 받다.

by 정그믐

사회생활 6년차, 29살의 나는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부모님이 두 분 다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점?

그래서 항상 건강염려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러나 회사에, 하루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건강에 관한 걱정은 점점 저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직 젊었으니까!


내 나이는 3개다.

1998년 1월생, 흔히 말하는 '빠른 년생'. 대학생 때까진 빠른 98로, 사회에 나오니 그냥 98로, 병원에 가면 만 나이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니 대충 28세~30세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30살이 되면 체력이 꺾인다더니 정말 26년도 새해에는 야근을 하면 다음날 출근이 힘들었다. 그냥 나이 들어서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2026년도 새해가 밝았으니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회사 공지가 떴다.

원래 연말 돼서야 시간 쫓기듯 받았는데, 이번엔 미리 좀 받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4월 초로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마지막 건강검진이 2024년 11월인가 였는데, 그때 갑상선에 0.5cm 정도의 결절이 보인다고 했었다. 당시 건강검진을 받았던 센터에서 전화도 오고 문자도 왔었다. '갑상선외과 전문의와 상의하세요.' 였나. 그럼에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디 아픈 것도 아니었고, 갑상선은 가족력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조심할 건 자궁 쪽이나 대장 쪽이었다. 그래서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건강검진에서 또 갑상선 초음파를 선택하자니, 또 똑같은 결과지를 받을 것 같은 거다. 그럴 바엔 의문을 해소하자(?) 싶었다. 그래서 건강검진 이전에 갑상선 외과를 가봐야지 하고 있던 중 회사 가는 길에 여의사가 진료하는 갑상선외과 광고가 보였다. 그래서 빠른 일자로 예약을 했고, 오전 반차를 쓴 채 병원에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냥 초음파로 보고 바로 출근하면 되겠지~' 했다.


"오른쪽은 괜찮은데 왼쪽에 모양이 안 좋은 게 있어요. 이건 조직검사 해봐야 돼요."


엥? 싶었다. 그래도 큰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의사는 조직검사를 확실하게 해봐야 겠다며 꽤 굵고 긴 바늘로 내 목을 찔렀다. 마취 후 진행한 거라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혈관과 붙어있는 결절이라 피가 많이 흘러 한동안 누워서 얼음찜질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출근 걱정을 했다.


"1시까지 학동 가야 하는데..."

"그 전엔 가실 수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회사는 학동, 병원은 논현이었다.)


나는 한동안 누워있다가 결제를 하고 실비 서류도 챙기고(초음파와 조직검사가 비급여였다.) 병원을 나왔다. 오전에 갑자기 35만원을 일시불로 긁고 목은 조직검사로 뻐근한 상태로 거즈를 붙이고 출근하자 너무 피곤했다. 조직검사 결과는 다음주쯤에 나온다고 했다. 신경이 쓰였지만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날 근무했던 것 같다. 그날은 팀장님과 월 정기 면담이 있었다. 팀장님은 내 검사 얘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갑상선은 진짜 별 일 없을 거에요. 걱정마세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뻐근한 목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금요일이었다. 우리 회사는 주중에 2시간 초과근무를 하면 금요일에 조기 퇴근이 가능한 시차출퇴근제를 도입 중이었다. 저녁이 돼 가자, 회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빠지고 꽤나 한산한 상태가 되었다. 병원에서 전화가 온 건 그때였다.


"지금 원장님 전화 연결 해드릴 테니까 끊지 말고 계세요."

"네."

"어,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안 좋아."

(의사선생님은 내가 어린 편이라 그런지 말을 거의 놓고 계셨다.)

"많이 안 좋아요?"

"어, 갑상선암 같아요."

"아..."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죠? 우리가 병원 예약까지 해서 알려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죠?"

"네..."


그렇게 조직검사를 한 갑상선외과에서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초진 예약을 잡아주고 서류를 받으러 오라는 전화를 다시 받았다. 나는 그 길로 바로 퇴근을 찍고 친한 후배한테만 암이라는 소식을 던져준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 후배한테는 말하면서도 웃었다. 아니, 상황이 웃기지 않은가. 그냥 건강검진 전에 찝찝한 걸 해소할 겸 해서 갔던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했을 뿐인데, 다음날 당장 연락와서 암이라고 하니 말이다. 갑상성외과에 다시 방문하자 데스트 직원분들이 서류를 챙겨주며 원장님 진료를 보고 갈 건지를 물었다. 나는 잠깐만 보고 가겠다고 했다. 내 상황이 너무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원장님은 굉장히 나를 안심시켜주려고 애쓰셨다. 수술만 하면 괜찮은 거라고, 갑상선 유두암은 갑상선암 중에서 가장 착한 암이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갑상선암 중에서 '갑상선 유두암'이었다.


큰 병원으로 간 건 그 다음날, 즉 토요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목요일에 조직검사를 받고 금요일에 암이라는 결과를 들은 뒤, 토요일에 큰 병원 초진을 잡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최대한 빠르게 초진을 받을 수 있게끔 병원을 연결해준 갑상선외과가 고맙다. 아무튼, 전날 암이라는 사실을 듣고 나는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래도 큰 병원은 보호자와 함께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소위 말하는 '멘붕'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휴대폰 너머 언니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암'이라고 간신히 말했다. 언니는 다행히 올라오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화를 끊고 회사 복도에 앉아 고속버스 표를 끊으며 울었다고 했다. 엄마도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빠도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동생까지 암이라니! 언니 속도 뒤집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토요일이 밝고 언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아, 연결된 큰 병원은 참고로 보라매병원이다. 약간의 대기 시간을 견딘 뒤 만난 의사는 굉장히... 침착하고 잔잔해서 마치 내 병이 큰 게 아닌 것 같았다.


"크기가 그렇게 크진 않은데, 성대랑 기도랑 붙어있어서 이건 수술해서 갑상선 한쪽 잘라내야 해요. 수술 방식은 목에 절개하는 게 있고 로봇 수술이 있는데 뭐로 하시겠어요?"


망설임 없이 로봇 수술을 선택했다. 아직 시집도 못 갔는데 목에 흉터가 남는 건 싫었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5월 수술 일정을 정하고 4월 초 CT와 초음파 검사 일정도 잡았다. 더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언니랑 신림에서 놀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언니 카드 찬스로 아웃백에서 고기도 먹고 서점에서 책 구경도 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언니는 그날 군말없이 날 위해 돈을 써줬고, 다음날 오전 버스로 내려갔다. (언니는 직장이 세종이다.)


그 뒤로 내 마음 속은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몇 번 갑상선암을 검색한 덕분에 알고리즘은 암환자의 투병일기로 가득찼고,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숨죽여 울었다. 내가 암이라니, 아니, 나'도' 암이라니! 우리 가족 해봐야 4명인데, 그 중에 2명이 이미 암으로 떠났는데 나까지 암에 걸리다니 너무 억울했다. 그러면서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갑상선에 암이 생길 정도면, 몸 다른 곳에도 암세포가 생긴 것 아닐까? 하필 대장내시경을 받은지 4년차가 돼 가고 있었다. 대장에 나도 모르는 새 암 덩어리가 생겼으면 어떡하지? 나도 아빠처럼 되면 어떡하지? 하루는 알고리즘에 자궁경부암에 걸린 사람의 릴스가 떴다. 그때부턴 자궁을 걱정했다. 나도 엄마처럼 자궁에 암이 생겼으면 어떡하지? 나도 엄마처럼 되면 어떡하지?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챗지피티에게 물어보고,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회사 일에도 집중 못하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상당히 불안한 상태이다. 갑상선암 자체보다, 이미 내 몸 속에 암세포가 퍼졌을까봐 걱정하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했다. 원래 4월 초였던 건강검진을 3월달로 당겼다. 이 글은 당긴 건강검진을 3일 앞두고 쓰고 있다. 다음 글은 건강검진 후기가 될 것 같다.(아닐수도 있다!)


어떤 계기로 이 글을 보게 된 독자님들은 오늘도 무탈한 하루를 보내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