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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공삼 Sep 07. 2022

'네가 없으면 입시를 하지 않을 거야'

4년 동안 일한 미술 학원에서 아무 통보 없이 잘렸다.

'쓸모'에서 '무쓸모'로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그래. 이제부터 강사로 학원을 다니면 되겠다. 학원에서 봐요 00 선생님."


나는 대학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입시를 하던 미술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미술 학원 강사가 된다는 건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동경하던 선생님들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스로 돈도 벌 수 있다니! 짜릿한 일이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심지어 어느 시점에서는 '학원강사를 직업으로 삼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원강사로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학원 수업 스케줄과 겹치는 학과 행사는 거의 불참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졸업과 취업을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


"선생님 저 이제 학원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전공 공부도 제대로 하고 싶고.. 과제도 너무 많아요."

"그렇지만, 난 네가 없으면 입시를 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그래 내가 없으면 이 학원은 안되는구나.'

'내가 있어야 아이들이 대학에 갈 수 있겠구나.'

그래서 무리해가며 1년을 더 일했다.



그런데 마지막 강사 생활하는 1년 동안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가르치던 과목으로 아이들을 뽑는 학교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다음 해 내가 없으면 입시를 하지 않겠다던 원장은 아무 통보 없이 나를 잘랐다.






'무쓸모'에서 '쓸모'로



학원에서 무통보로 잘린 충격은 꽤 오래갔다.

(잠수 이별은 당해본적 없지만, 대략 이런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처음엔 부정했다. '곧 수업에 불러주시겠지'

다음엔 걱정했다.'학원에 무슨 일이 생겼나? 재정상황이 악화되었나?'

마지막은 분노했다.'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자른다고? 무슨 말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라던가, 다른 적임자를 찾았다라던가.. 어떤 말이라도 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결국 마지막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였다. 내가 무쓸모 해진 것이었다.


'무쓸모.'

마치 그것이 내 이름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내 존재 가치가 깎여버린 듯한 기분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2년 뒤 조건이 나쁘지 않은 회사에 입사를 했고, 나름 인정을 받으며 회사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음 스텝을 위해서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이사가 내게 말했다.


'00 씨 일 진짜 잘하는데, 퇴사하는 거 다시 한번만 생각해봐요. 00 씨 아니면 안 되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몇 년 전 원장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난 네가 없으면 입시를 하지 않을 거야'

어쩌면 나는 무쓸모 한 사람에서 다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 내 선택은 달랐다.



'아뇨 저 퇴사하겠습니다.'




'나의 쓸모'와 '내 존재의 가치'



나의 쓸모는 원장에게 다르고, 이사에게 달랐다.

학원에서 잘리고, 또 다른 회사에서 퇴사를 하면서 깨달은 건 과거의 누가 나를 무쓸모 하게 생각한다고, 

앞으로도 무쓸모 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또 타인이 내리는 '나의 쓸모에 대한 평가'가' 내 존재 가치에 점수를 매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나의 쓸모는 나의 상황을 인지하고, 보완할 수 있는 지침서 정도는 될 수 있으나, 내 존재 자체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에게 받는 상처를 조금이나마 줄이고, 나를 지키면서 앞으로의 한 발자국을 더 자신감 있게 내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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