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스쳐가는 흔한 월급이 아니길

by 바라

첫 월급을 받았다. 세후 209만원.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다고 하기도 애매한 돈. 그래도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는 순간 잠시나마 뿌듯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일일지 몰라도, 학생 티를 벗고 사회의 첫 계단에 발을 디딘 나에게는 그 숫자가 꽤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으로 한 일은 아이패드를 샀다.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지만 미뤄두던 물건. ‘그래, 이 정도는 나한테 주는 선물이야’라는 핑계를 대며 결제를 눌렀다. 택배 알림을 볼 때만큼은 “나도 어른이 됐구나” 하는 착각 같은 기쁨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기쁨은 길게 가지 않았다.
월세 이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어른'이라는 단어가 다시 현실적인 무게로 떨어졌다.
학자금대출 상환, 휴대폰 요금, 보험료, 교통비, 식비… 차례로 빠져나가는 금액들을 보고 있자니, 어른이 된다는 건 멋있어지는 일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이름의 청구서를 매달 맞이하는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장에 남은 금액은 40만원.


이걸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웃기지만, 이미 빡센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다.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밥값을 줄일까, 난방을 줄일까, 교통비가 더 들까” 같은 고민을 하는 순간, 사회인이 된 자부심은 빠르게 휘발되고 현실 계산기만 남는다.

문득 8살 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 나이에 나는 어른을 멋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원하면 뭐든 살 수 있고, 힘들어도 뚝심 있게 살아가는, 뭔가 강하고 멋있는 사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멋지다기보다는 겨우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월세 걱정하고, 대출 갚고, 내시간을 돈과 맞바꾸며 반복되는 하루를 버티는 어른.


그런 의미에서, 가끔은 8살의 나에게 미안하다.
멋있는 어른이 되겠다고 말했는데, 정작 지금의 나는 멋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애초에 어른이라는 게 멋질 수 있었던 적이 있었나?
우리가 어른을 멋지다고 믿었던 건, 어른들의 고단함을 몰랐기 때문 아닐까.
어릴 땐 어른이 되고 싶은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다시 어린 시절이 그립다. 웃긴 구조다.

어쩌면 어른이란 존재는 멋진 사람이 아니라,
견디는 사람, 책임지고 사는 사람, 그리고 때때로 버티는 게 전부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걸 너무 일찍 깨달았다고 해서 좋아질 것도 없고,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해서 쉬워지는 것도 없다. 그냥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다짐은 남는다.
월세에 쫓기고, 청구서에 시달리고, 하루하루를 버티면서도 —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고.
언젠가 조금이라도 덜 휘둘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의 첫 월급은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아주 정확하게 ‘어른’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정의 속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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