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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만 Mar 06. 2021

음식을 먹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 의식하면서 먹기


"내가 먹는 것이 나다"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사람이니까.

다만, 내가 먹는 것으로 나의 몸이 바뀌고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다.


지난해 나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고 내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뤘다.

예술가로서 소명을 찾았고 내 인생은 나의 선택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반면, 외적인 것에는 지나치게 소원했으니

그 결과가 지금의 내 몸으로 나타났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사랑하겠다 다짐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름다워 보이고 싶다.

아직도 누군가에겐 설레는 존재이고 싶다.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고 나니,

글로써 만이 아니라 내 몸으로써도 표현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내 몸은 분명히 그것에 최적인 상태는 아니다.


어느 사십 대 발레리노의 공연 사진을 보았다.

춤을 직접 보지 않아도 그가 엄청난 무용수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멋지게 또 열정적으로 살아왔는지

그의 다부진 몸이 말해줬다.

나이가 들수록 한 사람의 몸의 형태는

그 사람의 생활 태도를 고스란히 비추는 것 같다.


펄쩍 날아오고 가볍게 웅크리며

내 신체를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진다.

내 삶을 내가 굳건히 받치고 있다는 느낌으로 꿋꿋하고 단단하게 서있고 싶다.


하지만 내 몸은 지독히도 무겁다.

나 혼자 온 지구의 중력을 받아내고 있는 것처럼 바닥으로 바닥으로 몸이 굽는다.

내 몸 하나 움직이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힘겹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음식 일기를 써보려 한다.

내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최소한 내가 무엇을 먹는지는 의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그리하여 내 몸을 내 마음이 시키는 데로 움직이게 하고 싶다.

이 일기의 최종 목표는 자유롭게 춤추듯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일단은 내가 하루 먹는 것과

그것들을 먹을 때 떠올리는 생각들을 기록함으로써 그 삶의 첫 발자국을 내디뎌 보려 한다.






아침 식사


오전 9시 30분. 맥도널드. 베이컨 에그 맥머핀과 카페라테


- 스무 살, 생애 처음 카페란 곳을 가보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회기역 1번 출구 어느 프랜차이즈 카페. 막 상경한 대학 새내기의 눈에는 메뉴판 속 음료 가격이 황당할 정도로 비쌌다. 그 당시 나는 아메리카노와 라테의 차이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고심 끝 선택한 것이 에스프레소. 그나마 가장 싸고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내가 주문한 인생 최초의 커피는 에스프레소가 되었다. 손가락 하나 겨우 넣을 수 있는 조그만 잔과 그 잔에 담긴 한 모금 양의 커피를 보며 서울은 눈 뜨고도 코 베이는 곳이란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캔커피 한 잔 마시지 않았던 내게 서울의 커피는 지나치게 썼고, 지방 중산층 자녀에게 그 가격은 빈부격차를 떠올리게 할 만큼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오늘 아침 맥머핀을 받아 든 내 마음이 십 수년을 넘어 그때로 돌아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조그만 맥머핀이 에스프레소를 처음 받았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싼 맛에 먹는 거지, 하며 곧 기분 좋게 아침식사를 했다. 생각해보니 그때 에스프레소의 가격이 지금 맥머핀 세트의 가격과 비슷했던 것 같다. 이제는 6천 원이 넘는 음료에도 (흠칫 한 번 하고) 쉽게 카드를 내미니, 조금 어른이 된 느낌이다. 그래서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뿌듯하다.    



모닝티


오전 10시. 흑당 생강차 한 잔


- 흑당 생강차 한 잔을 대접받았다. 흑당이 생강차의 영역까지 침범했구나 싶었다. 생강의 알싸함이 단 맛에 침식당했다. 아쉬웠다.



점심 식사


오후 1시. 스타벅스. 크림치즈를 바른 감자 베이글과 허니자몽블랙티


- 분명 '티 tea'라고 적혀있는데 나는 왜 탄산을 기대했을까. 하지만 물이라서 다행이다. 얼음을 많이 넣었다고 서운할 이유도, 얼음이 녹는다고 급해질 필요도 없다. 인기 메뉴라고 해서 허니자몽블랙티에 도전했지만 의외로 첫맛이 좋진 않았다. 그래도 첫 모금보단 두 번째, 세 번째 모금이 더 맛있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많이 마시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달콤함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달콤함지루하다.  



저녁 식사


오후 5시. 아보카도 주스 한 병, 석류즙 한 잔, 모닝빵 두 개


- '아보카도 좋아해요!'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닌 것 같다. 무슨 맛인지, 무슨 맛으로 먹는지 당최 모르겠다. 다만 왠지 아보카도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고는 싶다. 블루베리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한국 사회에 나타나 쿨하고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의 아이콘이 된 듯 하다. 강요된 취향이랄까. 가끔은 나도 아보카도 주스 말고 초코 바나나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외치고 싶다.

-  빵이 맛있으면 잼은 사족이다. 어제 고려당에서 사 온 모닝빵이 그러하다.



2021.3.5 음식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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