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nugeun Jul 12. 2017

쓸모 있고 싶은 욕구 (오버워치를 하는 이유)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

난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내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싶고,

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내가 사는 이 사회를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

이걸 한 문장으로 줄이면


난 쓸모 있고 싶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본다.

학창 시절에 쓸모란 크게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 운동, 언변.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친구 주변엔 더 배우고자 하는 친구들이 모인다.

재치 있게 말을 잘하는 친구 주변엔 더 웃고 싶은 친구들이 모인다.

운동을 잘하는 친구 주변엔 게임에서 이기고 싶은 친구들이 모인다. 


그럼 나는?

난 일단 말솜씨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공부와 운동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는데 이것들도 뛰어나다고 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다가가야 했다. 


다행히 학창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처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실력을 갖추고 인기 있는 아이들은 반 정원의 10%도 안됐으니깐.

그 당시 잘하는 친구들과 놀다가도 우리는 또 우리들끼리 잘 놀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는 사회와 다르다.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100% 끌어내며 

학교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학교니깐, 다녀야 한다니깐, 의무감에 시키는 공부나 좀 하면서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대부분 기댈 곳이 있다. 희망이 있다.  


그런데 사회는 그와는 다르다.

희망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 손에 쥐어진 인생의 선택지에서 선택 가능항목이 하나씩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그냥 살지 않는다. 

다들 각성한 상태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100%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취업이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6+3+3+4=16, 무려 16년 동안 배웠는데도 그게 쉽지 않았다.

난 학점 때문에 추가학기를 한 학기 더 다녔으니 16.5년이다. 


6개월

난 대학 졸업 후 6개월 동안 백수로 살았다.

그때 내 모든 욕구를 한 가지 욕구가 덮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쓸모 있고 싶은 욕구.


물론 기본적인 3대 욕구는 참는다고 완전히 참아지는 건 아니더라.

하지만 대학생 때보다는 현저히 줄어들었었다.


우선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생각이 줄어들었다. 

그냥 공부하는데 필요한 칼로리만 섭취하면 된다는 식으로 변했다.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줄어들었다.

학창 시절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여대와 미팅을 해보겠다며 줄기차게 만나고 다녔는데,

백수가 된 뒤론 원래 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누굴 새로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잠도 줄었다. 아침에 눈이 그냥 떠지더라. 


그때 하고 싶은 건 딱 하나였다. 

일 하고 싶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현재 백수는 아니다. 


생생하다. 

채용사이트에서 최종 합격 화면이 모니터에 뜨던 그날.

이 날은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날이다.


23개

내가 2년 반에 걸쳐 지원했던 기업의 개수다.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떨어졌던 첫 번째 면접의 풍경이 기억난다.

몇 차례 이어진 공격적인 질문 

- 면접 자리에서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다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 

에 결국 입이 얼어붙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머리가 멍해지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난 방 오른쪽에 있는 나가는 문을 왼쪽 벽에 가서 손으로 더듬거리며 찾았다.

문득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면접관들의 시선을 느꼈고, 

오른쪽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고 나왔다.

나 같아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을 지원자였다. 


난 그때 그 기업의 인턴을 수료한 상태였다.

당시 그 인턴 프로그램의 수료자는 면접 가서 욕만 안 하면 붙는다고 했었다. 

하지만 난 욕을 안 했지만 떨어졌다.


같이 인턴 했던 친구들은 현재 내 직장 선배로 근무 중이시다.


그렇다. 

그 뒤로 그 기업에 두 번이나 다시 지원해서 결국 붙었다.

마지막 면접 때 면접관이 이렇게 물어보더라.

3번이나 지원하셨는데 왜 그렇게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으세요?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 안 난다.

하지만 내 대답에 면접관이 미소를 띤 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때 세상이 밝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회사에 합격했던 채용 시즌에 5개의 다른 기업의 최종 면접까지 갈 수 있었다.

그 중 2개는 일정 상 최종 면접장에 가질 못했고, 나머지 3개는 최종 합격까지 했다. 


신중한 비교 끝에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네 전성기는 언제냐고 묻는다면 난 그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쓸모가 넘쳐나는 기분이었으니깐. 


물론 진작에 날 붙여주지 않은 그들이 잠깐 원망스러웠지만, 

곧 날 원하는 곳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하늘을 날 듯 기뻤다.

이제 무언가 대단한 걸 시작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사 후 첫 해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회사는 학교와 달리 내가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완벽한 매뉴얼을 주지 않았다.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난, 한동안 방향을 잃고 헤매었다.


그다음 해부터 차차 적응되기 시작했고 

긴장과 두려움에 뿌옇던 시야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느꼈다.

그곳엔 무언가 대단한 건 없었다.

대단한 게 없다는 걸 느끼자마자 다시 마음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신입사원 때는 뭐라도 보이면 삶이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대로 있으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내가 어떻게 될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자 

두렵기 시작했다.


뻔했다.

옆자리 차장님 저 뒷자리 부장님. 

다들 그 긴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오셨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한동안 그렇게 좌절감에 빠져 지냈다.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러다 여러 우연이 잘 겹쳐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삶의 큰 변화가 찾아오자 좌절감은 잠시 한편에 묻어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좌절감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쯤,


첫 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결혼도 삶의 큰 변화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아이를 갖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10년 20년 뒤에 내 모습 같은 건 

1분만 눈을 떼도 저세상으로 갈 거 같은 아이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가는 

인생을 이렇게 잘게 쪼개서 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일감을 던져주었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날 무렵, 그 일들이 묘하게 기분 좋은 보람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아무 초점도 없던 아가는 나랑 눈을 맞추기 시작했고,

알 수 없는 옹알이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며 집 탐방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어떤 건지 드디어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라고 주위에 말하고 다녔던 나는

이듬 해에 둘째를 품에 안게 되었다.


아이 둘을 기르는 건 아이 하나를 기르는 것보다 딱 두 배 힘들진 않다.

한 네 배 정도 힘들다.


그냥 이렇기만 하면 너무 힘들기만 한 일이겠지.

그래서 다행히 반대도 성립한다.

아직 서로 대화도 안 되는 아이 둘이 마주 앉아 서로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볼 때면

기쁨도 보람도 네 배 정도 찾아온다.


그렇게 애 둘을 키우는 삶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인생의 깊은 고민은 

삶에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먹는 텀이 길어지고

밤에 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렇게 내 시간이 생겨나자

저 깊은 곳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다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난 불안하다.

내가 언젠가 쓸모가 없어져서

다시 백수 시절로 돌아가 그때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될까 봐 너무 불안하다. 

이제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3명이나 생겨 더욱 불안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안주한다.

어찌 됐든 지금 다들 굶고 있진 않으니깐.


새로운 무언갈 배우려고 하는 다짐은 

집에 가서 애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면 

몰려오는 피곤함에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그 피곤한 와중에도 오버 워치는 켜서 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오늘 오버워치가 나에게 주는 확실한 재미의 실체를,

피곤한 와중에도 켜서 하게 되는 동력이 무언지를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오버워치는 6:6 팀전으로 진행된다.

믿고 즐기는 블리자드 게임답게 게임 밸런스를 굉장히 잘 맞춰놓았다.

팀원 하나라도 실력이 부족하면 게임에서 지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팀원 하나하나가 다 제각기의 쓸모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오버워치를 하는 순간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비록 가상의 게임 속이지만 

내가 해야 하는 확실한 역할이 있고 주위에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들이 있다.

이기면 무언가 이뤄냈다는 기쁨을 맛보고,

설사 게임에서 지더라도 

이 정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한몫했기 때문이라는 쓸모의 기쁨을 느낀다. 


결론은 이렇다.

여보, 애들 자는데 나 오버워치 한 판만 하고 잘게.

걱정 마, 애들 대학까진 어떻게든 책임지고 보낼 테니깐.


석양은 지고, 

하늘에서 정의는 빗발친다.


목표가 포착되어도,

영웅은 죽지 않는다.


류승룡 기모찌,

제대로 한 번 놀아보자.


유유왓아이테이큐크라이

.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