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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Aug 31. 2017

남에게는 엄격하게 나에게는 관대하게

내로남불처럼 마음을 써도 될까

오래되었지만 사랑을 모티브로 한 광고 중에 기억에 남는 광고가 하나 있다.

차태현과 김민희가 연인 역할로 등장했던 2000년대 TV 광고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한 통신사의 광고였다. 


광고 중 한 컷이다. 구글에서 퍼왔는데 문제시 알려주면 삭제하겠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바람피우는 김민희를 목격한 차태현이 달려가 화를 낸다.

그러자 김민희가 "내가 네 거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라고 받아친다. 

이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카피 문구가 들리며 마무리되는 광고다.

  

당시 저 광고 문구를 접했을 때 반감이 매우 컸다.


움직이는 게 대체 무슨 사랑이란 말인가 


연인에 대한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내 업에 대한 사랑은 베토벤이나 고흐처럼,

물건 하나를 사도 신중하게 골라 애지중지,

한 번 내린 결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밀고 나가는,

이런 게 멋진 삶이고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마음속 도덕의 기준을 세워놓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공격했다. 


연인에 대한 사랑이 움직인 사람,

선택한 직업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린 사람,

과거에 뱉은 말을 뒤집은 사람,

물건을 사놓고 금방 질려버린 사람.


대놓고 면전에 쏟아내던 조용히 마음속으로만 뱉던

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사람들을 욕하고 비웃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난 전혀 그렇게 살지 않았다.

내 사랑은 늘 변해왔다. 


없으면 죽고 못 살 거 같았던 첫 여자 친구에 대한 사랑은

혹한기 행군 길에 내뱉은 입김과 함께 사라졌다. 


반짝이는 에펠탑과 함께 싹틔웠던 사랑은

치열한 취업전쟁의 포연 속에 사라졌다. 


입사 후 홀로 키워왔던 짝사랑도

야근과 주말출근으로 점철된 지방 파견을 거치며 다른 대상으로 옮겨갔다. 


어린 시절 몇 날 며칠을 졸라 선물 받았던 자전거는

어떤 색이 었는지도 이젠 기억나지도 않고,

 

입사 후 몇 달을 용돈 모아 구입했던 손목시계는

아직 멀쩡히 작동함에도 중고장터에 올려졌다.


너무나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밤을 새우며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합겼했던 회사는

술자리에서 틈만 나면 나에게 씹히고 있으며,


정말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업무상 내 단점을 너무나도 잘 커버해주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내 사랑은 시기마다 변해갔다.

내 판단은 쉬이 번복됐다. 


그런데 난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자만했다.


난 마치 아닐 것처럼 남을 비난하고 공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고 민망하다.

비난을 받았던 사람이 지금의 날 보면 얼마나 같잖을까.

공격을 지켜봤던 사람이 지금의 날 보면 얼마나 우스을까. 


누군가를 아무 양심적 가책 없이 욕하기 위해선

오랜 기간 한결같을 수 있어야 한다.


오랜 기간 한결같기 위해선 처음부터 방향 설정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나이를 먹으며 경험을 통해 나에겐 그 정도의 통찰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게 한결같다는 건

고집과 아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뜻이었다.

미련과 후회가 곧 닥칠 거라는 뜻도 되었다. 


이런 결론이 내려지니 내 결정의 번복이 스스로 이해가 되었다.

맞지 않는 길이니 방향을 바꾸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다면 그동안 남을 욕했던 나 자신은 도대체 어떠한가 생각하게 되었다.

내로 남불.

난 내가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할 땐 다 이유가 있고 남이 할 땐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


이렇게 생각이 발전되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난 누군가를 비난해도 되는가 안되는가 

난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내 마음을 써야 할 것인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8월 2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 때문이었다. 


나는 석촌호숫가의 작은 빌라 3층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멀지 않으면서 둘이 살기엔 부족함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첫째를 가지면서 조금 더 넓은 집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아기에게 기어 다닐 수 있는 집 안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출산 2달 전쯤 우리는 직장에선 멀어지지만 조금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다시 1년 후 둘째를 갖게 되면서 좀 더 넓은 집에 대한 욕구가 다시 올라왔다.

밤새 울어대는 아기들을 서로 떼어놔서 조금이라도 덜 울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밤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었다.

또 산후조리와 육아를 도와주러 부산에서 상경하신 장모님과 같이 살게 되면서

서로를 위해 공간이 좀 더 여유로워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정해진 예산 내에 서울 시내엔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고,

평생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드디어 서울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옮겨왔던 세 거처는 모두 전세였다.

아내와 같이 둘이 열심히 벌었지만 내 집 마련은 쉽지 않았다. 


물론 길은 있었다.

턱끝까지 대출을 받으면 어찌어찌 원하는 지역에 내 집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범하지 못한 성격 탓도 있었고,

턱끝까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건 과열되는 부동산 시장에 일조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렇다. 

난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살 것도 아니면서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갭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나,

내 기준엔 감당도 못할 정도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 비정상에 일조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때문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경멸했고 비난했다. 


그러던 차에 나보다 더 빠릿빠릿하게 분양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아내가

적당한 규모의 대출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분양정보를 알려주었다.

대출 규모가 줄어든 만큼 출퇴근 시간은 지금의 두 배가 되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출퇴근하는 게 영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시간은 촉박했다. 

분양신청기간은 순위별로 하루씩 밖에 안되었고,

아내가 분양정보를 알아온 건 분양신청기간 하루 전이었다.

주위 환경을 보러 갈 시간도, 모델하우스를 찾아갈 시간도 없었다. 

급히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알아본 뒤 다음날 모바일로 분양신청을 완료했다. 


그리고 며칠 뒤, KB은행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 축! 당첨 - KB 국민은행> ********(당첨 지구 아파트명) < 당첨 계좌 재사용불가>

인터넷으로 확인하니 당첨된 동과 층의 위치도 괜찮았다.

약 2년 반 뒤에 드디어 난 내 명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 집 마련은 불현듯 다가왔다.


기뻤다. 

주위에서 축하도 해주었다.

좋은 동호수에 당첨되는 게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다는 말도 들었다.


며칠 동안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인테리어 고민을 시작했고, 나도 사고 싶었던 의자를 검색했다. 

그 주 주말, 기쁜 마음을 안고 모델하우스를 보러 갔다.

모델하우스가 단지 건설 부지 근처에 마련되어 있어서 겸사겸사 주위 환경도 둘러보기로 했다. 


모델하우스엔 사람이 많았다.

단지 조감도 앞엔 자신이 당첨된 동 호수가 어딘지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여서 제대로 보기 힘들었고,

안내데스크엔 궁금한 사항을 묻고 싶은 사람들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고 있었다. 


최대한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아파트 실내 모델로 들어가 보니

방이며 주방이며 화장실이며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제법 뛰어다닐 수 있게 자란 첫째는 어느새 안방 침대로 뛰어 올라가 눕다가

안내원의 제지를 받고 아내에게 끌려내려와야 했다. 

사람이 많아 제대로 보기 힘들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이게 곧 내 집이 될 거라는 생각에 흐뭇했다.

입주하는 날로 시계를 얼른 돌리고 싶었다. 


그렇게 구경하고 나와서 다시 차에 올라 예정된 대로 단지 근처로 움직였다.

공사 부지로 들어가는 길은 차 한 대 없이 비어있어서 차창으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운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단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생각보다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둘째가 생기며 이사 왔던 집은 굉장히 큰 대단지로 조성된 신도시였다.

국내에서 유명하다는 건설사들은 모두 브랜드를 걸고 단지 하나씩을 올리고 있었으며,

LH와 중소 건설사들도 여러 단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학교가 올라가 있었고,

덕분에 우리 집에서 초중고등학교까지 가는 길에 왕복 2차선을 넘는 차도가 없었다.

아파트 단지 앞에 조성된 상가 주택단지엔 벌써 블로그에 올라가는 맛집이 생겨났고,

상가에 유명한 학원이 들어섰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런데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엔 그런 주위 환경이 갖춰지기 힘들어 보였다.

이미 지구계획 상 우리 단지에서 모든 학교는 왕복 10차선이 넘는 도로를 두세 번 건너야 도착할 수 있었다.

모니터 화면으론 와 닿지 않았던 10차선이 직접 보니 한강 같이 넓게 느껴졌다.

상가단지가 조성되긴 하지만 내가 당첨된 단지에선 거리가 꽤 됐고 크기도 작아 보였다.

신청할 땐 수긍할 만하던 출퇴근 거리도 새삼 다시 와 닿았다. 


어느새 난 내 능력을 넘어선 환경에 적응해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당첨됐을 때의 기쁨이 사라져 버린 걸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살면서 항상 학교가 가깝고, 유명한 맛집이 주변에 있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었다.

결혼 후 생활하였던 첫 번째, 두 번째 거처도 그런 환경은 아니었다.

그런데 약 1년 남짓 그런 곳에서 살아보니 내 아이들은 꼭 그런 곳에서 기르고 싶었다.

나 역시 그런 곳에서 쭉 살고 싶어 졌다. 


바로 그때 내 욕심과 욕망이 가치관을 흔들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선 벌써 당첨된 곳을 전월세로 넘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굳이 이 곳으로 이주하지 않고 전월세로 돌리다 집값이 오르면 팔아버리고 

내가 사는 이 지역에 집을 마련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던 채로 날짜가 얼마나 흘렀을까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가 솔솔 들려왔고,

드디어 8월 2일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다.

연합뉴스 이미지가 내겐 가장 잘 이해되는 설명이어서 퍼왔다.

예상대로 강력하다는 평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하나하나 효과적인 내용인 것 같았다.

사실 조금 더 강력했으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일단 마음에 들었다.

이 규제를 통해 그동안 불나방처럼 부동산 과열에 일조한 사람들이 

전부 피해를 봤으면 좋겠다는 공격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흡족하게 규제 내용을 살펴보다 아래 내용을 발견했다.


비과세 실거주 요건 강화(2017.8.3 이후)
2년 이상 보유, 양도가액 9억 원 이하 + 2년 이상 거주


찬찬히 읽어보니 바로 내가 규제 대상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분양받은 아파트 가격이 오를지 안 오를지도 모르고

비과세 조건 미달 시 내야 될 세금이 얼만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답답해졌다. 

괜히 발목 잡힌 기분이 들었다.

이성적으론 부동산 과열을 잡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었지만

정작 나는 적용받고 싶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 한편에 묻혀있던 가치관이 드디어 저항하기 시작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네가 그동안 경멸하며 욕했던 사람과 네가 다를게 무어냐.

네가 답답하게 느낀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부동산 규제이지 않느냐

그렇게 남들은 쉬이 비판했으면서 정작 네가 적용받을 대상이 되니 이렇게 나오는 거냐

전월세로 돌리다 가격 올리면 팔아버리겠다는 마음가짐도 이미 글러먹은 마음가짐 아니냐

그렇게 싫어했던 부동산 과열에 합류해 돈 좀 벌어보겠다는 속셈 아니냐


결국 나도 욕심에 눈이 흐려지는 그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내 행동을 합리화해서 일을 진행하고 싶었다.


이렇게 내 마음과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있을 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반적으로 수긍하는 모든 도덕적 규범과 이상을 

각자 자발적으로 지키며 산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 


강제성을 갖고 있는 법 조차 

모든 상황에서 모두가 지키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특정인에게 직접적으로 큰 피해가 있지 않는 법 위반 사례를 

모두 고발해가며 처벌받게 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법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부동산 과열 조장 행동을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만 막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지다가 오늘 글을 쓰게 된 의문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그럼 나도 지키기 힘들 것 같은 도덕적 규범을 누군가 어기는 것을 보았을 때,

그때 난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는 것인가. 


위에서 언급했듯, 내가 살아오면서 강하게 남을 비판했던 많은 일들은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사실 나조차 지키지 못할 일들이었다. 

남이 어려운 건 사실 나도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못하는 걸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말처럼,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나도 결국 지키지 못할 걸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일절 비판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너무 무질서해질 것 같았다.

서로서로 본인이 잘못할 것을 염두에 두고 남의 잘못에 무관심해져 버리면,

우리 사회 안전망의 뿌리가 흔들릴 것 같았다. 


누구나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무단횡단을 할 것이기에

무단 횡단하는 사람을 모두가 용인해버리면 도로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릴 것이기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면 온 도시가 쓰레기장이 될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얄미운 누군가를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기에

누군가를 때린 사람을 묵인하면 우리나라는 폭력 국가가 될 것이다.


일단 우리는 우리가 정한 도덕적 윤리적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지키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흔들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누구도 완벽해질 순 없을 것이다. 

언젠간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고, 

잘못된 판단임을 알면서도 욕심에 잠시 눈이 멀어 행동에 옮기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의 한계를 무시하고 스스로 완벽한 사람만이 욕하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욕하지 못할 것이고 사회는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최악으로 치닫게 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 각자가 최소한 내로남불의 자세라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누군가 잘못하려고 할 때 관심을 갖고 욕 해줄 누군가가 나타나고,

욕을 듣고 부끄러워 행동을 멈추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혹 욕만으론 사람들을 멈추게 하기 힘든 문제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번처럼 서로서로 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 여론이 형성되면서,

지난 8월 2일과 같이 정부에서 규제 대책을 마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잘 못된 행동을 자발적으로 멈추긴 힘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멈추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질서는 유지될 것이다.  


이렇게 여러 도덕적 규범과 이상을 각자 자발적으로 지키며 사는 건 불가능하지만,

서로 함께 힘을 모아 지키는 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의 마지막 내용이 머리에 떠올랐다.

책 표지를 퍼왔다. 스스로 개인주의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서 서로의 아이를 지켜준다는 말의 해석을 

부동산 문제로 확장한다면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선,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 내 집 마련을 할 때쯤,

적어도 지금 우리 처럼 힘들게 내 집 마련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부동산 과열을 조장하는 서로서로를 견제하며

우리 아이가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마련해줌으로써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이 말은 부동산을 벗어나 다른 사회적 문제로 확장해도 될 것이다.


오늘 내 생각은 이렇게 결론 내려졌다.


사실 나 혼자선 셀프컨트롤조차 힘들다. 

따라서 우린 서로서로에게 

그것이 친절과 배려든 견제와 질책이든 

끊임없이 마음을 써야 한다.

나는 그게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을, 

나아가 우리 사회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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