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고립의 축복: 세상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절벽

​제2부. 등대지기의 일과: 멈춤 속에서 빛을 닦는 시간

by 산 사람

​[부제: 홀로 있을 때 비로소 들리는 내면의 성소]


​등대로 들어온 지도 어느덧 열흘이 넘었다.

사내는 이제 정확한 날짜를 세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니, 정확히는 날짜를 세어야 할 필요성을 상실했다는 것이 맞았다. 도시에서의 날짜란 마감 기한이었고, 이자 상환일이었으며,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은 숫자로 쪼개지지 않았다. 해가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고 다시 아래로 침잠하는 것, 바람의 습도가 바뀌며 비린내가 짙어지는 것, 그리고 밤이면 어김없이 절벽을 때리는 파도의 숨결이 거칠어지는 것만이 시간을 가늠하는 유일한 척도였다.


​사내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주머니가 가볍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대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는 수시로 바지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안에 쥐어지는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체, 즉 스마트폰이 없다는 사실이 그를 공포로 몰아넣곤 했다. 처음 사흘간은 지독한 금단현상에 시달렸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환청처럼 메신저 알림음이 들려 움찔거렸고, 손가락은 습관적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화면을 스와이프 하는 시늉을 했다. 세상의 소식으로부터 차단되었다는 사실은 곧 자신이 죽어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누군가 나를 찾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버리면 어떡하지? 나만 빼고 모두가 성공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내를 괴롭히던 것은 고독이 아니라 '뒤처짐'에 대한 공포였다. 도시에서의 그는 늘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연결이라기보다 결속에 가까웠고, 결속이라기보다는 포박에 가까웠다. 단 5분만 연락이 닿지 않아도 관계에 균열이 생길 것처럼 초조해했고, 타인의 화려한 일상이 담긴 사진을 보며 자신의 남루함을 자책했다. 그 모든 감정의 출처는 언제나 ‘나’가 아니라 ‘남’이었다. 그는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정의했고, 타인의 박수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곳 등대에는 소식이 없었다.

비교할 대상도, 평가할 잣대도 없었다. 파도는 그가 어제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졌는지 묻지 않았고, 바람은 그의 과거 경력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처음 며칠 동안 사내는 그 거대한 침묵이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 마치 투명 인간이 되어 세상에서 완전히 소거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자신의 육체조차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사내는 해언의 뒷모습을 보았다. 노인은 등대 벽면의 갈라진 틈을 살피고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딘 돌벽은 여기저기 석회가 부서져 내리고 실금이 가 있었다. 해언은 낡은 양동이에 석회 가루와 물을 붓고 흙손으로 천천히 개기 시작했다. 반죽이 적당한 찰기를 띨 때까지 노인은 서두르지 않았다. 반죽을 한 움큼 떠서 벽의 틈새에 밀어 넣고 다독이는 그의 손놀림은 마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의사의 손길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했다.


​“노인장.”


​사내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외딴곳이고, 저는 지금 철저히 버려진 기분인데…. 왜 제 마음은 도시 한복판에서 수천 명에 둘러싸여 있을 때보다 더 꽉 차 있는 기분이 들까요? 이 막막한 적막이 왜 가끔은 안락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해언은 흙손을 내려놓고 벽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건 말이지, 자네를 괴롭히던 ‘타인의 목소리’가 이곳의 파도에 씻겨 내려갔기 때문이네.”


​노인의 말은 담백했지만 사내의 가슴속에 묵직한 파동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고립을 두려워하지. 혼자가 되면 자신이 사라질 것 같거든. 하지만 고립은 사라짐이 아니라, 소란에 가려져 있던 진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라네. 그 길을 통과하려면 비싼 통행료를 치러야 하지. 지독한 외로움, 뼈를 깎는 불안, 그리고 거울 없이 자신의 민낯을 마주해야 하는 그 불편함 말이야. 자네는 지금 그 통행료를 지불하고 있는 중이라네.”


​사내는 등대 창가에 서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백 척의 배를 집어삼켰을 법한 시퍼런 바다가 하얀 포말을 토해내며 절벽을 들이받고 있었다. 그 소리는 웅장했고, 동시에 지극히 단순했다. 도시의 소음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기만, 그리고 욕망이 섞여 불쾌한 불협화음을 냈지만, 바다의 소리는 정직했다. 파도는 명령하지 않았고, 판단하지 않았으며, 누군가와 비교하여 사내를 멸시하지도 않았다. 바다는 그저 '있음' 그 자체로 사내를 압도했다.

​그는 문득 자신이 도망치려 했던 '고립'의 본질을 생각했다.


도시에서 고립은 곧 사회적 사형 선고였다. 연락처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모임에 초대받지 못하며, 정보의 흐름에서 소외되는 것. 그는 그런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영혼을 갉아먹으며 바쁘게 움직였다.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기울였고, 의미 없는 단톡방의 알림에 성실히 응답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조차 되지 못하고 버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세상은 그가 없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돌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사내는 비로소 자신의 '숨'을 발견했다. 타인의 리듬에 맞춰 헐떡이던 숨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폐부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리는 고유한 호흡 말이다.

​사내는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처음에는 과거의 망령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배신했던 동료의 비열한 미소, 실패한 계약서의 활자들, 가족들의 실망한 눈빛…. 그는 그 기억들에 매몰되어 울부짖거나 벽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도망칠 곳 없는 절벽 위 등대에서 그는 결국 그 망령들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고립은 도망칠 곳이 아니라,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외통수였다.


​“도망치지 말게.”


​해언은 사내가 괴로워할 때마다 짧게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그 기억들이 자네를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야. 자네가 외면했던 자네의 일부들이 이제야 말을 걸어오는 거라네.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그 작은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겠지. 지금 이 정적은 그 목소리들을 듣기 위해 마련된 성소(聖所)와 같은 것이네.”


​어느 날 밤, 사내는 등대 하층부의 딱딱한 침대에서 잠을 자다 문득 눈을 떴다.

바람 소리가 유난히 거셌지만, 등대 안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파도가 절벽을 때리는 주기적인 진동이 바닥을 타고 몸으로 전해졌다. 사내는 숨을 멈추고 자신의 가슴속에 귀를 기울였다.


​‘두근, 두근, 두근….’


​그것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으면서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소리. 너무나 규칙적이고, 너무나 정직해서 오히려 낯설고 두려운 소리였다. 사내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비명을 지르던 자신의 심장이, 이 고립된 정적 속에서 비로소 제 속도를 찾아 평온하게 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내 소리였구나.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타인의 좋아요가 아니라, 바로 이 고독한 박동이었구나.


​다음 날 아침, 사내가 마주한 해언의 눈빛은 이전보다 깊어져 있었다. 노인은 사내가 밤새 무엇을 겪었는지 다 안다는 듯, 평소보다 더 진한 차를 내밀었다.


​“이제 좀 들리는가?”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립은 형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훼손되고 오염된 영혼을 수선하기 위해 마련된 비밀스러운 작업실이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진공 상태에서만 들리는 영혼의 미세한 균열 소리. 그 소리를 듣지 못하면 사람은 결코 치유될 수 없다. 사내는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립은 달콤한 안식만을 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위로인 동시에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남의 뒤통수만 보고 달렸는가. 이 폭풍은 왜 나를 이곳으로 밀어 넣었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사내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 답은 다시 화려한 도시로 돌아가 검색창에 두드려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지독한 침묵의 터널을 끝까지 걸어가 자신의 바닥을 완전히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답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내는 등대 꼭대기에 올라 거대한 렌즈를 통과해 나가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빛은 안정적이었고, 강인했다. 예전에는 그 빛이 배들을 안내하는 수단으로만 보였다면, 이제는 그 빛이 자신 안의 어둠을 낱낱이 비추는 탐조등처럼 느껴졌다. 고립은 그를 세상에서 떼어놓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가장 정확하고 정직하게 데려다 놓았다.

​사내는 더 이상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세상의 소식보다 더 중요한 뉴스가 자신의 내면에서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도, 누군가의 실패도 이제는 그의 평온을 깨뜨리지 못했다. 그는 오직 이곳, 절벽 위의 등대라는 작은 점 위에서 우주와 맞닿은 채 홀로 서 있는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감각했다.


​그날 밤, 사내는 처음으로 혼자 있는 것이 외롭지 않았다.

등대 밖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바다는 포효하고 있었지만, 등대 안의 사내는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빛 속에 머물고 있었다. 고립이라는 이름의 축복이 그의 해진 영혼을 한 땀 한 땀 기워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이 긴 고요가 끝나고 다시 세상의 소음 속으로 던져질 때, 그는 예전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세워진 이 단단한 성소를 기억하는 한, 어떤 소음도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가리지 못할 것임을 확신했다.

​사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파도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고, 등대의 불빛은 사내의 눈꺼풀 너머로 따스한 온기를 전했다. 고립은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가장 위대한 여행은 타인에게로 가는 길이 아니라, 가장 먼 곳에 있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을.

​사내는 그 길 위에서, 처음으로 깊고 평온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