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파도의 리듬: 시련을 리듬으로 바꾸는 기술
[부제: 나가는 물을 잡으려 애쓰지 마라]
등대 아래의 해안선은 하루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사내는 이제 바다를 ‘풍경’으로 보지 않았다. 바다는 매일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하나의 거대한 몸처럼 느껴졌다. 어떤 날은 숨이 차오른 사람처럼 바위 끝까지 물을 밀어 올리며 거칠게 몰아쳤고, 또 어떤 날은 깊은숨을 내쉬듯 모든 것을 비워내며 물러났다.
그 변화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바다는 늘 자기 리듬대로 움직였고, 그 리듬은 인간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정확했다.
사내는 어느새 해언이 시키지 않아도 매일 아침 해안가로 내려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썰물이 지난 자리를 걷는 동안, 그는 바다가 남기고 간 것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조개껍데기, 해초, 바위에 남은 물자국, 그리고 빠져나가지 못해 갇힌 작은 웅덩이들. 웅덩이 속에는 미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사내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노인장… 오늘은 물이 너무 많이 빠졌습니다.”
말을 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바다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다가 텅 빈 것처럼 보이네요. 괜히… 허전합니다.”
해언은 등대 앞 평상에 앉아 낡은 낚싯줄을 손질하고 있었다. 손놀림은 느렸고, 매듭 하나하나를 지나치게 꼼꼼히 확인했다. 마치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처럼.
“허전해 보이는 건, 자네가 늘 차 있는 것만 봐왔기 때문이지.”
해언은 줄을 끊지 않은 채 말했다.
“물이 나간 자리를 보고 상실이라 부르지 말게. 썰물은 바다가 숨을 내뱉는 시간이야. 안으로만 들이마시다 보면, 그 바다도 결국 질식하게 되지.”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들이마시는 법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더 벌어야 했고, 더 쌓아야 했고, 더 넓혀야 했다. 성과는 항상 ‘증가’의 방향을 향해야 했고, 멈춤이나 감소는 곧 실패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밀물만을 정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조금이라도 물이 빠질 기미가 보이면,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댐을 쌓았다.
돈으로, 사람으로, 명분으로.
빠져나가는 물을 붙잡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끌어당겼고,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나 결국, 그 댐은 무너졌다.
그리고 그는 텅 빈자리 앞에 홀로 서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저는요…”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늘 밀물인 상태만을 원했습니다. 잔고는 늘어야 했고, 성과는 쌓여야 했으며, 관계는 확장되어야만 했죠. 조금이라도 물이 빠지는 것 같으면, 그걸 ‘위기’라고 불렀습니다.”
해언은 낚싯바늘을 빛에 비춰보며 말했다.
“위기는 썰물이 와서가 아니네. 썰물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생기는 거지.”
사내는 발밑의 갯벌을 내려다보았다.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 있었다.
깨진 조개껍데기, 오래된 쓰레기, 물때가 낀 바위들. 밀물 때에는 그 모든 것이 물아래에 가려져 있었다.
“인생도 그렇다네.”
해언이 말을 이었다.
“물이 빠져야 바닥이 보이지. 밀물에 가려진 채로는 자네 인생의 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었는지 알 수 없어. 썰물은 벌이 아니라, 점검이야.”
사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파산 직전의 시간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무너진 것은 전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썰물 덕분에 그동안 감춰져 있던 것들이 드러났던 것이다.
허황된 욕망.
이름만 남은 관계.
성과로 위장한 공허함.
“그땐…”
사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땐 그게 재앙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저 거대한 썰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썰물은 자네를 가난하게 만들기 위해 오는 게 아니야. 자네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오지.”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가볍다’는 말이 이렇게 따뜻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썰물의 시간을 부끄러워한다네. 그래서 숨기지. 실패를, 상실을, 비워진 자리를. 하지만 바다는 숨기지 않아. 나가는 물을 붙잡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내주지.”
해언은 손에 들고 있던 낚싯줄을 내려놓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밀물일 때는 항해를 즐기게나. 썰물일 때는 바닥을 청소하고. 조수 간만의 차가 있기에 바다는 썩지 않고, 늘 새로워질 수 있는 거야.”
사내는 등대 난간을 잡고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다시 파도가 흰 거품을 일으키며 해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성급하지 않았고, 약속을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다만, 때가 되었음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비어 있는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럼… 지금 제 삶은 썰물의 시간인 겁니까?”
사내가 물었다.
해언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참 후에야, 아주 조용히 말했다.
“아직 모르지. 다만 확실한 건, 자네가 지금 나가는 물을 원망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네. 그건 이미 리듬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지.”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그는, 물이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붙잡지 않았다.
그저 보내주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잘 가라. 다시 올 때까지, 나는 이 바닥을 정리하고 있겠다.
그 순간, 사내는 알았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차오름과 비어 있음이 번갈아 찾아오는 하나의 리듬이라는 것을.
그 리듬을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파도의 박자를 들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등대 위에서는 여전히 불빛이 회전하고 있었다.
밀물과 썰물을 가리지 않고,
차오를 때도, 비어 있을 때도
같은 간격으로, 같은 빛으로.
사내는 처음으로 그 빛이
자신의 삶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