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길 잃은 날개, 낯선 집의 그림자

​Ⅲ부 : 드디어 세상으로 — “태양과 바람의 첫 번째 초대”

by 산 사람


​“일어나, 조아! 어서!”


​벨라의 활기찬 날개 진동이 조아의 잠을 흔들었다. 어제 처음으로 맛본 바깥세상의 찬란한 햇살은 어린 친구들을 자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더 멀리 가볼 거야. 저기 큰 떡갈나무까지 말이야. 내 머릿속 지도는 이미 완벽하다고!”


​벨라의 장담에 조아도 몸을 일으켰다. 출아 후 20일이 지난 시점. 벌집 안의 고된 노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외역벌이 되기 위한 ‘낮놀이(Orientation Flight)’ 둘째 날이었다. 조아와 네 친구—루나, 벨라, 티나, 미나—는 다시 문턱에 나란히 섰다. 정오의 태양은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고, 조아의 머릿속 중추 복합체(지형 인지 기관)는 낯선 풍경을 부지런히 데이터로 변환하며 텅 빈 지도 위에 첫 번째 이정표들을 새겨 넣었다.


​“출발!”


​루나의 신호와 함께 다섯 친구는 일제히 태양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벌집 근처의 익숙한 풍경을 벗어나자, 곧 눈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수백 년의 시간을 버텨온 거대 떡갈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조아의 겹눈 속에서 떡갈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었다. 수만 장의 잎사귀가 햇살을 받아 에메랄드빛 파도처럼 일렁였고, 깊게 파인 나무껍질의 짜기마다 짙은 생명의 이끼가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친구들은 그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어 잠시 날갯짓을 잊을 뻔했다.


​“우와, 저것 봐! 세상에 저렇게 큰 생명체가 있다니!”


​다섯 친구는 떡갈나무 주변을 선회하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빛의 기둥(Lichtblick)을 통과할 때마다 날개 끝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공중 곡예를 칭찬하며, 이제 세상 모든 비밀을 다 알아버린 항해사가 된 듯한 승리감에 도취했다. 루나가 벨라의 날개를 가볍게 툭 치며 웃었고, 조아는 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완벽한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자연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환희에 찬 웃음소리가 공중을 채우던 순간, 평화롭던 대기가 갑자기 비틀리기 시작했다. 숲 사이 골짜기에서 압축된 공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듯, 거대한 기류의 파도가 방심하고 있던 다섯 친구를 덮쳤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수만 배나 무거운 공기의 벽이 통째로 이동하며, 방금 전까지 기쁨을 나누던 일행을 집어삼킬 듯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냈다.


​1초에 200번 이상 진동하며 공기를 움켜쥐던 조아의 날개는 난기류 속에서 갈 길을 잃었다. 날개 끝에 걸리던 팽팽한 저항이 순식간에 진공처럼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에는 거대한 망치처럼 등 뒤를 후려쳤다.


​“흩어지지 마! 위치를 놓치지 마!”


​루나의 필사적인 외침이 들렸지만, 이미 조아의 몸은 비행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날개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공기를 젓고 있었으나, 몸체는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한쪽으로 밀려 나갔다. 슬립(Slip, 기체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현상)이었다. 조아는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했고, 유일한 나침반이었던 태양마저 검은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조아는 완전히 낯선 숲 한복판에 홀로 남겨졌다. 체력은 바닥났고 날개 근육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주위를 살피던 조아의 눈에 익숙한 형태의 벌집 입구가 들어왔다. 조아는 안도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힘을 쥐어짜 그곳으로 내려앉았지만, 발이 닿는 순간 온몸의 감각이 얼어붙었다. 입구의 밀랍 향기, 공중에 떠도는 신호(페로몬)의 주파수… 모든 것이 틀렸다. 이곳은 조아의 벌집이 아니었다.


​“침입자다! 어디서 온 방랑자냐!”


​험악한 진동음과 함께 건장한 경비벌 두 마리가 앞을 막아섰다. 페로몬 주파수로 식구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자, 그들은 날카로운 턱을 벌려 조아를 물어뜯을 듯 위협했다. 타 군집의 벌집은 침입자에게 즉각적인 처단이 내려지는 사형장과 같았다. 특히 꿀 한 방울조차 소지하지 못한 ‘가진 것 없는 방랑자’에게 자비란 없었다. 조아는 차마 혀를 내밀어 구걸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입구 귀퉁이에 갇혀 더듬이를 힘없이 늘어뜨렸다.


​그때였다. 숲의 고요를 깨는 다섯 개의 낯익은 주파수,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거대하고 웅장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노을빛을 등지고 기적처럼 나타난 것은 친구들과 그들을 이끄는 알리다였다.

​알리다는 공중에서 급강하하며 경비벌들 사이를 위협적으로 가로질렀다. 그녀가 만들어낸 강력한 기류에 경비벌들이 주춤하며 뒤로 밀려났다. 알리다는 조아의 곁에 거칠게 내려앉으며 차가운 겹눈으로 조아를 훑었다.


​“정신 차려라, 조아. 여기서 날개를 접는 순간 너는 더 이상 우리 식구가 아니라 한 조각 단백질 덩어리로 분해될 뿐이다.”


​알리다의 목소리는 다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서늘했다. 그녀는 조아 옆에서 우리 군집 고유의 페로몬을 강하게 내뿜으며 경비벌들의 기세를 억눌렀다.


​“하나라도 낙오하면 우리는 전체를 잃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지면을 박차라. 이것은 명령이다!”


​알리다의 서슬 퍼런 명령에 조아는 마침내 날개를 세웠다. 다섯 자매와 알리다는 경비벌의 추격을 뿌리치고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노을이 피처럼 붉게 물든 하늘 위로, 알리다의 거대한 날갯짓을 따라 다섯 개의 작은 점이 하나의 선이 되어 집을 향해 달렸다.


​간신히 본래의 벌집 문턱에 도착했을 때, 조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하지만 알리다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조아의 앞을 막아섰다.


​“조아, 네 날개 하나에는 우리 벌집 수만 형제들의 생존이 걸려 있다. 오늘의 무모함은 용기가 아니라 무책임한 어리석음이었다.”


​알리다가 조아의 더듬이를 강하게 치며 말을 이었다. 진동은 머릿속까지 울릴 정도로 강렬했다.


​“자연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늘 네가 살아 돌아온 건 네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동료들이 제 목숨을 걸고 항로를 역추적했기 때문이야. 비행사는 태양을 볼 줄 알아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동료의 무게를 견딜 줄 알아야 한다. 알겠느냐?”


​조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가슴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알리다의 뼈 있는 한마디는 그보다 더 아프게 조아의 가슴에 박혔다.


​조아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벌집의 어두운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 구석,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체온을 나누고 있는 어둡고 단단한 껍질의 늙은 벌들이 조아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조아는 그들의 찢어진 날개와 묵직한 존재감을 바라보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지 비로소 실감했다.


​오늘 조아는 비행 기술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와 ‘동료애’라는 지도의 소중함을 배웠다. 낮놀이의 혹독한 시련은 조아를 철부지 어린 벌에서, 세상을 경외할 줄 아는 진짜 항해사로 탈바꿈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