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부 : 드디어 세상으로 — “태양과 바람의 첫 번째 초대”
벌집의 새벽은 언제나처럼 분주했지만, 오늘 조아와 친구들의 날갯짓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드디어 외역벌이 되어 첫 비행을 나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초봄의 공기는 아직 쌀쌀했지만, 벌집 안은 훈훈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초봄은 우리 꿀벌들에게 정말 중요한 계절이란다.”
알리다 선생님이 벌집 입구에서 조아와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겹눈은 따뜻했지만, 목소리에는 단단한 가르침이 실려 있었다.
“기나긴 겨울 동안 우리는 모두 꿀과 꽃가루를 아껴야 했지. 지금처럼 춥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덥지도 않은 이 초봄이야말로 겨우내 잠자던 여왕벌이 알을 낳고, 아기 벌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주 짧고 소중한 시간이야.”
“그럼 지금 빨리 나가서 꿀이랑 꽃가루를 많이 가져와야겠네요!”
벨라가 신이 나서 날개를 파닥였다. 알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시기에 얼마나 많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느냐에 따라, 우리 벌집의 한 해 생존이 달린 셈이지. 특히 초봄에 피어나는 풀꽃들은 우리에게 첫 번째 희망을 선물해 준단다.”
“어떤 풀꽃이요?”
조아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알리다를 올려다봤다.
“가장 먼저 너희를 반겨줄 꽃은 개나리와 진달래일 거야. 노랗고 분홍색으로 산을 물들이는 그 꽃들은 멀리서도 잘 보이지. 그리고 땅을 자세히 보면, 작은 보랏빛 제비꽃이나 하얀 냉이꽃 같은 것들도 고개를 내밀고 있을 거야.”
알리다는 더듬이를 이용해 숲의 지도를 그려주듯 설명했다.
“이 초봄 꽃들은 꿀보다는 꽃가루를 많이 가지고 있어. 꽃가루는 어린 애벌레들의 훌륭한 단백질 식량이 된단다. 어제 에스더 할머니가 가져온 물로 애벌레들이 꿀을 잘 먹을 수 있게 됐으니, 이제 우리는 튼튼한 꽃가루를 가져와서 애벌레들을 힘껏 키워야 해.”
“꽃가루는 어떻게 가져와요?”
미나가 날개에 붙은 작은 털들을 톡톡 쳤다.
“너희 뒷다리에 있는 꽃가루 바구니(Pollen Basket) 기억나니? 꽃가루는 끈적해서 몸에 잘 붙거든. 그걸 다리 사이의 특별한 털로 싹싹 긁어모아 공처럼 동그랗게 뭉쳐서 가져오는 거야.”
“와, 신기하다!”
조아와 친구들은 눈을 반짝였다. 알리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숲 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겹눈에는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꽃이 우리에게 친절한 것은 아니란다. 너희는 꽃과 꿀벌의 ‘상호 관계’를 이해해야 해.”
“상호 관계요?”
티나가 되물었다.
“그래. 우리는 꽃에게 꿀과 꽃가루를 얻는 대신, 꽃가루를 다른 꽃에 옮겨줘서 꽃들이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아주 중요한 약속이야.”
알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너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꿀과 꽃가루를 주는 꽃들을 잘 찾아야 해. 향기가 진하고, 꽃잎에 꿀 길(Nectar Guide)이라는 무늬가 있는 꽃들이 대부분 좋은 꽃들이란다. 하지만…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 꽃들도 있어.”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꽃이요?”
조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제 알리다 선생님이 말했던 '세상의 위험'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예를 들어, 투구꽃이나 은방울꽃처럼 독이 있는 식물도 있단다. 우리 벌들은 본능적으로 독이 있는 꽃을 피하려 하지만, 혹시라도 너무 예쁘다고 다가갔다가는 큰일 날 수 있어. 그리고 이미 다른 벌들이 다녀가서 꿀이 없는 꽃들도 있지. 그런 꽃에 괜히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단다.”
“그럼 어떻게 꿀이 있는 꽃인지 알 수 있어요?”
미나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음… 그건 아주 오랜 비행 경험과 우리 벌들만이 가진 특별한 재주가 필요해. 어떤 꽃은 우리가 다녀가면 아주 미세한 전기 신호가 변하기도 한단다. 그걸 느끼고 꽃에 꿀이 남아있는지 알아채기도 하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희의 관찰력과 기억력이야. 꿀이 많은 꽃을 기억하고, 다음에도 그곳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훌륭한 외역벌의 첫걸음이지.”
알리다의 설명에 조아와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제 만났던 에스더 할머니의 지혜와 겹쳐지는 듯했다.
“자, 이제 출발해도 좋다. 초봄의 푸른 숲으로! 하지만 명심해라. 이 비행은 너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벌집의 모든 생명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리다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조아는 가슴 가득 뜨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다섯 친구는 일제히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솟구쳤다. 어제와는 다른, 희망과 임무가 가득한 첫 비행이었다.
향기로운 꽃밭에 도착한 조아는 알리다 선생님의 말대로 개나리와 진달래, 제비꽃들을 찾아 날아다녔다. 꽃가루는 조아의 몸에 부드럽게 달라붙었고, 뒷다리의 꽃가루 바구니는 노란색 알갱이들로 점점 채워져 갔다. 꿀주머니도 달콤한 꿀로 무거워졌다.
“해냈어! 첫 수확이야!”
조아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 소중한 것을 벌집에 가져갈 수 있다는 기쁨에 벅차올랐다. 에스더 할머니가 시린 물가에서 길어 올린 생명수 덕분에 피어난 꽃들. 그 꽃들이 준 선물을 다시 벌집으로 가져간다는 생각에 조아의 날갯짓은 더욱 힘찼다.
무사히 벌집으로 돌아오던 길, 조아는 문득 꿀향기 가득한 익숙한 길 한쪽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아주 가늘고 투명한 실을 발견했다. 너무나 섬세해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지만, 조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것은 대체 무엇일까? 알리다 선생님이 말했던 '세상의 위험' 중 하나일까?
무사히 벌집으로 돌아온 조아는 노란 꽃가루 뭉치를 들고 자랑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벌집 내부는 분주한 일벌들로 가득했다. 조아는 선배 일벌들이 시키는 대로, 가져온 꽃가루를 조심스럽게 벌집의 한 칸에 저장했다. 그곳은 온통 알록달록한 꽃가루로 채워진 화분 저장 공간이었다.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 다양한 색깔의 꽃가루가 조화롭게 쌓여 있는 모습은 마치 벌집 속 작은 보물창고 같았다.
조아는 자신의 첫 꽃가루 뭉치가 그 보물창고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이 작은 노란 알갱이들이 어린 애벌레들의 튼튼한 날개가 되고, 언젠가 자신처럼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갈 힘이 된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조아는 이제 막 시작된 자신의 항해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아까 숲에서 본 투명한 실의 섬뜩한 감각이 잊히지 않았다. 다음 비행에서는 저 실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저 실은 무엇이며, 왜 그곳에 있었을까?
[실제 사진 네이바출처]
* 다리에 노란 꽃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