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첫 비행의 설렘, 초봄의 꿀지도

​Ⅲ부 : 드디어 세상으로 — “태양과 바람의 첫 번째 초대”

by 산 사람


​벌집의 새벽은 언제나처럼 분주했지만, 오늘 조아와 친구들의 날갯짓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드디어 외역벌이 되어 첫 비행을 나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초봄의 공기는 아직 쌀쌀했지만, 벌집 안은 훈훈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초봄은 우리 꿀벌들에게 정말 중요한 계절이란다.”


​알리다 선생님이 벌집 입구에서 조아와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겹눈은 따뜻했지만, 목소리에는 단단한 가르침이 실려 있었다.


​“기나긴 겨울 동안 우리는 모두 꿀과 꽃가루를 아껴야 했지. 지금처럼 춥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덥지도 않은 이 초봄이야말로 겨우내 잠자던 여왕벌이 알을 낳고, 아기 벌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주 짧고 소중한 시간이야.”


​“그럼 지금 빨리 나가서 꿀이랑 꽃가루를 많이 가져와야겠네요!”


​벨라가 신이 나서 날개를 파닥였다. 알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시기에 얼마나 많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느냐에 따라, 우리 벌집의 한 해 생존이 달린 셈이지. 특히 초봄에 피어나는 풀꽃들은 우리에게 첫 번째 희망을 선물해 준단다.”


​“어떤 풀꽃이요?”


​조아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알리다를 올려다봤다.


​“가장 먼저 너희를 반겨줄 꽃은 개나리와 진달래일 거야. 노랗고 분홍색으로 산을 물들이는 그 꽃들은 멀리서도 잘 보이지. 그리고 땅을 자세히 보면, 작은 보랏빛 제비꽃이나 하얀 냉이꽃 같은 것들도 고개를 내밀고 있을 거야.”


​알리다는 더듬이를 이용해 숲의 지도를 그려주듯 설명했다.


​“이 초봄 꽃들은 꿀보다는 꽃가루를 많이 가지고 있어. 꽃가루는 어린 애벌레들의 훌륭한 단백질 식량이 된단다. 어제 에스더 할머니가 가져온 물로 애벌레들이 꿀을 잘 먹을 수 있게 됐으니, 이제 우리는 튼튼한 꽃가루를 가져와서 애벌레들을 힘껏 키워야 해.”


​“꽃가루는 어떻게 가져와요?”


​미나가 날개에 붙은 작은 털들을 톡톡 쳤다.


​“너희 뒷다리에 있는 꽃가루 바구니(Pollen Basket) 기억나니? 꽃가루는 끈적해서 몸에 잘 붙거든. 그걸 다리 사이의 특별한 털로 싹싹 긁어모아 공처럼 동그랗게 뭉쳐서 가져오는 거야.”


​“와, 신기하다!”


​조아와 친구들은 눈을 반짝였다. 알리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숲 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겹눈에는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꽃이 우리에게 친절한 것은 아니란다. 너희는 꽃과 꿀벌의 ‘상호 관계’를 이해해야 해.”


​“상호 관계요?”

​티나가 되물었다.


​“그래. 우리는 꽃에게 꿀과 꽃가루를 얻는 대신, 꽃가루를 다른 꽃에 옮겨줘서 꽃들이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아주 중요한 약속이야.”


​알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너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꿀과 꽃가루를 주는 꽃들을 잘 찾아야 해. 향기가 진하고, 꽃잎에 꿀 길(Nectar Guide)이라는 무늬가 있는 꽃들이 대부분 좋은 꽃들이란다. 하지만…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 꽃들도 있어.”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꽃이요?”


​조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제 알리다 선생님이 말했던 '세상의 위험'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예를 들어, 투구꽃이나 은방울꽃처럼 독이 있는 식물도 있단다. 우리 벌들은 본능적으로 독이 있는 꽃을 피하려 하지만, 혹시라도 너무 예쁘다고 다가갔다가는 큰일 날 수 있어. 그리고 이미 다른 벌들이 다녀가서 꿀이 없는 꽃들도 있지. 그런 꽃에 괜히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단다.”


​“그럼 어떻게 꿀이 있는 꽃인지 알 수 있어요?”


​미나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음… 그건 아주 오랜 비행 경험과 우리 벌들만이 가진 특별한 재주가 필요해. 어떤 꽃은 우리가 다녀가면 아주 미세한 전기 신호가 변하기도 한단다. 그걸 느끼고 꽃에 꿀이 남아있는지 알아채기도 하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희의 관찰력과 기억력이야. 꿀이 많은 꽃을 기억하고, 다음에도 그곳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훌륭한 외역벌의 첫걸음이지.”


​알리다의 설명에 조아와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제 만났던 에스더 할머니의 지혜와 겹쳐지는 듯했다.


​“자, 이제 출발해도 좋다. 초봄의 푸른 숲으로! 하지만 명심해라. 이 비행은 너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벌집의 모든 생명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리다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조아는 가슴 가득 뜨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다섯 친구는 일제히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솟구쳤다. 어제와는 다른, 희망과 임무가 가득한 첫 비행이었다.


​향기로운 꽃밭에 도착한 조아는 알리다 선생님의 말대로 개나리와 진달래, 제비꽃들을 찾아 날아다녔다. 꽃가루는 조아의 몸에 부드럽게 달라붙었고, 뒷다리의 꽃가루 바구니는 노란색 알갱이들로 점점 채워져 갔다. 꿀주머니도 달콤한 꿀로 무거워졌다.


​“해냈어! 첫 수확이야!”


조아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 소중한 것을 벌집에 가져갈 수 있다는 기쁨에 벅차올랐다. 에스더 할머니가 시린 물가에서 길어 올린 생명수 덕분에 피어난 꽃들. 그 꽃들이 준 선물을 다시 벌집으로 가져간다는 생각에 조아의 날갯짓은 더욱 힘찼다.

​무사히 벌집으로 돌아오던 길, 조아는 문득 꿀향기 가득한 익숙한 길 한쪽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아주 가늘고 투명한 실을 발견했다. 너무나 섬세해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지만, 조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것은 대체 무엇일까? 알리다 선생님이 말했던 '세상의 위험' 중 하나일까?



​무사히 벌집으로 돌아온 조아는 노란 꽃가루 뭉치를 들고 자랑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벌집 내부는 분주한 일벌들로 가득했다. 조아는 선배 일벌들이 시키는 대로, 가져온 꽃가루를 조심스럽게 벌집의 한 칸에 저장했다. 그곳은 온통 알록달록한 꽃가루로 채워진 화분 저장 공간이었다.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 다양한 색깔의 꽃가루가 조화롭게 쌓여 있는 모습은 마치 벌집 속 작은 보물창고 같았다.


​조아는 자신의 첫 꽃가루 뭉치가 그 보물창고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이 작은 노란 알갱이들이 어린 애벌레들의 튼튼한 날개가 되고, 언젠가 자신처럼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갈 힘이 된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조아는 이제 막 시작된 자신의 항해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아까 숲에서 본 투명한 실의 섬뜩한 감각이 잊히지 않았다. 다음 비행에서는 저 실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저 실은 무엇이며, 왜 그곳에 있었을까?


[실제 사진 네이바출처]

* 다리에 노란 꽃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