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은빛 감옥: 보이지 않는 덫

​Ⅲ부 : 드디어 세상으로 — “태양과 바람의 첫 번째 초대”

by 산 사람


​벌집을 나선 조아의 날갯짓은 어제보다 훨씬 당당했다. 뒷다리에 큼직한 꽃가루 경단을 달고 돌아왔을 때의 그 짜릿한 기분! 조아는 빨리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 안달이 났다.


​"조아, 같이 가! 뭐가 그렇게 급해?"


​뒤에서 벨라가 숨을 헐떡이며 쫓아왔다. 조아는 공중에서 가볍게 한 바퀴 돌며 웃었다.


​"벨라, 어제 알리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보랏빛 제비꽃 군락지를 찾았거든! 거기 꿀이 정말 달콤할 것 같아."


​"조심해, 조아! 선생님이 너무 숲 깊은 곳은 위험하다고 하셨잖아. 개울물 소리 때문에 내 목소리도 잘 안 들릴 텐데!"


​하지만 조아의 귀에는 벨라의 걱정보다 싱그러운 봄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조아는 어제 보았던 그 '투명한 실'을 떠올렸지만, 눈부신 햇살 아래서 그런 불안감은 금세 녹아버렸다.


'흥, 내가 얼마나 빠른데! 위험하면 금방 날아가 버리면 그만이지.'


​조아는 울창한 덤불 사이로 난 좁은 통로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근처 개울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로 인해 벨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꽃향기가 가득한 꽃밭이었다. 조아의 겹눈이 제비꽃을 발견하고 반짝였다.


​"찾았다! 저기다!"


​조아는 날개를 더 힘차게 저어 꽃을 향해 돌진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치익-


​무언가 조아의 왼쪽 날개 끝을 아주 살짝 건드렸다. 아주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이었지만, 그 찰나의 접촉은 조아의 비행 궤도를 완전히 뒤틀어버렸다.


​"어? 이게 뭐야?"


​당황한 조아가 날개를 더 강하게 쳤지만, 몸은 앞으로 나가는 대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말았다. 조아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었지만, 그럴수록 몸을 휘감는 끈적한 점성은 더욱 단단해졌다. 거미줄의 끈적한 액체가 날개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비행 근육을 굳게 만들었다.


​"벨라! 티나! 도와줘!"


​조아가 비명을 질렀지만, 덤불 너머의 친구들에게는 조아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조아의 앞에는 햇빛조차 투과하지 못하는 빽빽한 나뭇잎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발을 버둥거릴수록 투명한 실들이 조아의 솜털 하나하나를 옥죄어 왔다. 꿀벌의 강력한 날개조차 거미줄의 질긴 인장 강도 앞에서는 무력했다.


​"제발... 제발 떨어져!"


​조아가 울먹이며 뒷다리에 힘을 주었을 때였다. 등 뒤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소름 끼치도록 규칙적인 진동이 전해져 왔다.


​툭. 툭. 툭.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아니었다. 먹잇감이 걸려들었음을 감지한 사냥꾼의 발걸음이었다. 조아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려 했지만, 이미 머리 근처까지 실에 감겨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윽고, 조아의 시야 가장자리에 여덟 개의 길고 검은 다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마다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털들이 조아의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안 돼... 오지 마!"


​거미는 서두르지 않았다. 놈은 조아의 주위를 천천히 돌며, 입가에 달린 날카로운 이빨을 비비고 있었다.


조아의 심장은 1초에 수백 번 진동하는 날개보다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에스더 할머니의 해진 날개, 알리다 선생님의 매서운 경고... 그 모든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미가 거대한 몸을 숙여 조아의 가슴팍으로 다가왔다. 놈의 차가운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 조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알리다 선생님... 벨라... 나 여기서 차가운 먹잇감이 되고 싶지 않아!'


​바로 그때, 조아의 머릿속에 알리다 선생님이 훈련 중에 무심코 던졌던 한마디가 번개처럼 스쳤다.


​"조아, 만약 보이지 않는 함정에 날개가 묶인다면 무작정 힘을 쓰지 마라. 가슴의 모든 근육을 한 곳으로 응축했다가 찰나에 터뜨려라!"


​조아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가슴 근육을 조이기 시작했다. 거미의 날카로운 이빨이 조아의 껍질에 닿기 직전이었다.


​"지금이야!"


​조아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슴 근육을 터질 듯이 응축했다. 알리다 선생님이 말한 대로, 억눌렀던 에너지를 찰나에 폭발시키며 온몸을 뒤틀었다.


파르르르!


​조아의 가슴에서 시작된 강력한 진동이 거미줄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잠시나마 날개를 붙들고 있던 끈적한 액체가 진동에 밀려나며 틈이 생기는 듯했다. '됐다! 벗어날 수 있어!' 조아의 눈에 희망의 빛이 스쳤다. ​하지만 희망은 눈 깜짝할 사이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응축된 힘을 터뜨리는 순간, 조아의 몸을 지탱하던 실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더 많은 거미줄이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조아의 몸 위로 덮쳐왔다. 가슴 근육의 진동이 오히려 거미줄의 탄성을 이용해 조아를 더 깊은 함정 속으로 끌어들인 꼴이 되었다.


​"아...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조아는 비명을 내질렀으나, 날개는 이제 몸통에 완전히 밀착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근육을 쥐어짜던 마지막 힘마저 빠져나가자, 가슴팍에서는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만이 밀려왔다. 거미줄은 조아의 발버둥을 비웃기라도 하듯,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솜털 사이사이를 더 촘촘하게 메워버렸다.

알리다 선생님의 지혜도, 첫 비행의 자신감도, 이 끈적이고 질긴 은빛 감옥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서걱, 서걱.


​거미의 발걸음 소리가 바로 귀밑에서 멈췄다. 거미는 조아의 필사적인 저항이 끝났음을 확인한 듯, 차갑고 날카로운 앞다리 하나를 조아의 머리 위로 천천히 올렸다. 거미의 턱에 달린 이빨이 부딪치며 내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조아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조아는 이제 더듬이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눈앞을 가린 거미의 거대한 그림자 사이로, 저 멀리 덤불 밖에서 친구들이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였다.


​'벨라... 루나... 나 정말 여기서 끝인 거야?'


​조아는 마지막 남은 기운을 모아 눈을 감았다. 숲의 향기도, 따스한 햇살도 이제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둠이 조아의 의식을 덮쳐왔고, 거미의 서늘한 이빨이 조아의 가슴 껍질을 파고들기 위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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