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남긴 자리에
먼지가 내려앉는다
마르는 건 마음만이 아니다
연필 끝에 매달린 한숨
적히지 못한 종이의 속살도
조금씩 바래진다
무더운 날 하늘은 금 가고
마음도 조용히 깨진다
무엇을 쓰려했는지
어떻게 써야 할지
문장은 흩어지고
생각은 손 안에서 부서진다
글을 쓴다는 건
마르기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속을 꺼내 바람 앞에 두고
말보다 얇은 무언가를 건네는 일
글쟁이의 마음은
썼다 지우고
또 지우며
가장 약한 곳에 닿아간다
그래도..
마른 연필 하나 쥐고
텅 빈 하늘 아래
조용히 앉아 있다
혹시 이 침묵도
문장이 될 수 있을까
아무 말도 없는 이 종이 위에
마음이 젖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