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의 형태: 겨울의 6번 국도

영혼을 위한 강원도 모터사이클 여행

by 고이지

겨울은 정적이 형태를 얻는 시간이고, 겨울 풍경은 형태를 얻은 정적들의 풍경이다. 겨울에는 나무도, 산도, 들도, 빛도, 사람도 물성과 육감을 내려놓고 조용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의 풍경은 나무의 정적, 산의 정적, 들의 정적, 빛의 정적, 사람의 정적들로 만들어진다.


정적들로 이루어진 풍경에서 사물들은 배경 위에 얹히지 않고 배경 속으로 스며든다. 겨울 풍경에서 사물들은 도드라지지 않는다. 겨울에는 전경도 배경이 되고, 사물도 배경이 된다. 겨울 풍경은 그래서 배경만으로 이루어지는 풍경이다. 이런 풍경은 넓고도 깊다.


겨울의 빛은 아침에도 잔조다. 겨울 해는 낮게 떠서 눈높이에 걸리고, 비스듬한 빛은 인적 없는 길 위에 옅게 고인다. 이 빛은 봄 여름 가을의 양명함과 찬란함을 통과한 뒤에 남은 빛이다. 빛이 지나간 자리의 빛이고, 빛이 비쳤던 자리에 남은 여운 같은 빛이다. 빛의 그림자 같고 빛의 안개 같은 잔조는 사물을 비추지 않고 감싸 안으면서 풍경에 섞인다.


길가의 나무들이 등으로 아침 해를 받는다. 나무들은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겨울의 나무는 색의 매혹과 잎의 볼륨을 내려놓았고, 겨울 해는 기세를 풀어 낮고 비스듬하다. 비스듬한 안개 빛은 성긴 가지의 나무를 스미듯 지나치고, 자신을 통과한 빛과 섞인 나무의 그림자는 그림자의 흔적 같은 제모습을 길 위에 남긴다. 겨울의 그림자는 빛을 막아 낸 그늘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가 섞인 나무의 잔영이다. 겨울의 나무 그림자는 빛의 흔적인 듯, 그림자의 흔적인 듯 옅고 길다.


돌아 나가는 길을 따라 안으로 굽은 산발치에 동네가 있다. 동네를 안은 산도, 그 산의 소나무도, 마을의 집들도 눈에 덮여 있다. 몇몇 집에서 아침 연기가 오르고, 곧게 오른 연기는 박푸른 하늘 속으로 풀어진다. 풍경 속에서 한 점 사람이 나와 눈을 쓴다. 눈을 쓰는 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람인지 풍경인지, 정적 속의 다만 한 점일 뿐인지 알 수가 없다. 언제인지 모르게 눈은 그쳤는데, 동네 앞길에는 아직 눈을 밟은 흔적이 없다.


겨울 강에 갈대가 가득하다. 갈대는 겨울의 풀이다. 다른 나무와 풀들이 성기어지는 겨울에 갈대는 오히려 무성해진다. 이 무성함은 생장의 결과가 아니라 비움과 가벼움의 결과다. 줄기가 비고 잎이 가벼운 갈대는 줄기를 비울 수록, 잎을 가벼이 할수록 부풀고 빽빽해진다. 비움과 가벼움으로 그득해지는 갈대는 비우면서 본모습을 내보이는 겨울에 나직한 절정을 보인다.


갈대 사이로 몸이 작은 새 한 마리가 보인다. 갈대숲에 새들이 깃드는 건 필연에 가깝다. 갈대가 그렇듯 새들도 비움과 가벼움으로 제모습을 드러낸다. 새의 뼈는 속이 비어 있고 새의 털은 바람처럼 가볍다. 나는 것이 새의 본모습이라면 뼈를 비우고 털을 가벼이 할수록 새는 제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겨울 강가에서는 갈대는 땅에서 선 새라는 걸, 새는 하늘을 나는 갈대라는 걸 알게 된다.


해 질 무렵, 눈 덮인 겨울 들은 적막하다. 빈 들 위로 납빛 하늘이 낮게 내려앉고, 그 사이로 먼 산들이 들을 둘러선다. 마지막 빛이 스러지고 어둠이 서서히 짙어지면, 들과 하늘과 산은 차례로 어둠 속에 자신을 묻는다. 사물은 물러나고, 공간만 남는다. 그럴 때, 들은 땅의 형태를 취한 정적이 되고, 하늘은 허공의 형태를 얻은 정적이 되며, 산은 겹겹의 그림자로 더욱 깊어지는 정적이 된다.


밤이 깊어지면 먼 산의 검은 그림자 아래로 하나둘 노란 등이 켜진다. 불빛은 정적을 밀어내지 않고, 그 안에 조용히 머문다. 가까운 산 밑을 지나는 길 위로는 빨간 등을 켠 자동차들이 이따금 지나간다. 오가는 그 움직임도 이 풍경에서는 소란이 되지 않는다. 빈 들에서는 파르라니 흰 눈이 야광빛으로 어른거린다. 밤의 눈은 빛을 발하지도 흡수하지도 않은 채 고요히 빛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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