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한 강원도 모터사이클 여행
어둡다. 바람이 소슬하다. 어둠 속에 길을 나설 때, 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 차갑게 멈춰 있던 엔진을 조심스레 깨운다.
하늘이 낮게 깔렸다. 어두운 하늘 아래 검은 산들이 거대한 실루엣으로 드리웠다. 빨간 후미등을 매단 차들이 산의 실루엣 속으로 잇따라 사라져 간다. 설핏 열린 구름 틈으로 아침 빛이 비친다. 백로 두 마리가 잿빛 하늘에 빗금을 그으며 날아간다.
속결로 흐르는 잠잠한 강에 빛이 내린다. 성긴 대기를 통과한 다소곳한 빛이다. 억새에 바람이 스친다. 바람은 순순하고 억새는 윤기 있게 눕는다. 억새를 스친 바람에 잔물결이 인다. 잔물결 가득한 강에 부서지는 빛으로 가을의 강은 눈이 부시다.
사과밭의 사과가 새빨갛다. 말라가는 초목의 배경 속에서 충실해져 가는 사과의 빨강은 도드라진다. 길 둑의 산국이 샛노랗다. 잎을 떨군 숲 앞에서 서리를 견딘 산국의 노랑은 독존적으로 선명하다.
빈 들 끝으로 강이 흐르고, 들과 강은 먼 산들에 안겨 있다. 길은 산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들을 가로질러 사라져 간다. 먼 산능선으로 해가 진다. 산능선을 따라 주홍, 보라, 연푸름, 잿빛이 쌓인 석양이 내려앉는다. 산등성이에 선 나무들은 석양의 하늘에 실핏줄 같은 제 모습을 새긴다.
산속 성당 마을에 어둠이 내린다. 산중의 밤은 이르고 두텁게 찾아온다. 성당의 첨탑도, 탑보다 더 높이 선 두 그루의 느티나무도 제 모습을 지워간다. 밤바다에 뜬 섬들처럼 마을의 집들도 밤의 정적에 잠겨 지붕들만 어슴푸레하다. 하늘에는 파르라니 별들이 깃들었고, 밤하늘은 아득한 별들 너머 영원 속으로 멀어져 간다.
밤이 깊어진다. 호수는 숨결처럼 어른거리고, 산은 조용히 호수에 내려앉는다. 색과 빛을 거두어들인 호수와 산은 다만 한없는 존재의 형체로만 자리한다. 검고 깊은 호수와 산의 그림자는 무한의 공간을 만들고, 그 무한은 텅 빈 충만함으로 가득 찬다. 소리들이 멀어지고 잦아든다.
늦은 밤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가슴께에서 한 점 바알간 온기가 돋아 번져간다. 느슨하고 편안하고 아늑하다. 달아 오른 엔진 소리가 고르게, 넉넉하게 울린다.
늦가을 어느 날 모터사이클을 타고 6번 국도를 따라 달렸다. 아침과 오전에 덕소, 양수리, 양평, 풍수원, 섬강에 갔다가 오후와 밤에 그곳들을 되짚어 왔다.